격세지감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51.6%로 대통령이 된 순간이래, 장미 대선이라는 조기 대선이 이루어지는 날이 돌아오기 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사람들은 절망했고, 그 절망에 찬물이라도 끼얹는듯 정권은 사람들을 목조르고 세상은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져만 갔다. '희망'이란 말이 무색하던 시절, 하지만 그 완고하던 권력이 '최순실'이라는 비선 실세를 통해 누수가 되며, 광장의 촛불이 켜졌다. 모두들 숨죽이고 포기하고 살았던 것만 같던 시절, 그 촛불의 저력은 어디로부터 시작되었을까? 되돌아보니, 사람들은 일찌기 '불가능'의 시대에 그 불가능을 돌파할 '희망'을 꿈꾸었던듯 하다. 2016년 <시그널>에서 <태양의 후예>, 다시 2017년으로 이어진 <낭만 닥터>, <피고인>, <김과장>까지 높은 시청률과 함께 화제가 되었던 작품들 중 다수가 그 불가능를 피어올린 주인공들이었다. 이들 드라마는 '시대정신'을 대변하며 시청률과 화제성이란 쌍글이에 성공했던 것이다. 




시작은 <시그널>이었다. 
그 이전 영화 <살인의 추억>, 그리고 드라마 <갑동이>와 동일하게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시그널>, 하지만 드라마가 촛점을 맞춘 것은 바로 그 불가능했던 과거의 사건을 풀어내고자 하는 '과거'와 '현재'의 인간들이었다. 1989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진 당시의 형사 이재한(조진웅 분)과 그 시절 목격자이자 희생자였던 소년에서 이제 경찰대 출신의 프로파일러가 된 박해영(이제훈 분),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을 집요한 사건 추적이라는 목적의식으로 승화시킨 형사 차수현(김혜수 분)이 그 주인공들이다. 

결국 이재한의 '실종'으로 마무리되어버린 1989년과 달라지지 않은, 아니 그 시절 사건의 결탁자들이 그것을 빌미로 권력을 공고화시킨 현재는 우리 현대사의 '권력'의 태생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폭로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여전히 전근대적인 시대를 상징한 채 씁쓸한 패배로 남았던 화성 연쇄 살인을 과거와 현재 인물들의 '의지'를 통해 '환타지'적으로 해결해 낸다. 그리고 그 사건의 해결은 몇 십년을 통해 공고해진 현대사의 적폐들을 무너뜨리는 과정이었다. 



그 '의지'를 이어받은 건 <태양의 후예>다. 
<태양의 후예>는 20일 방통위 방송대상을 수상한데 이어, 한국 피디대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2016년의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로맨스 드라마의 대가인 김은숙 작가와 김원석 작가가 함께 한 이 드라마는 '군인'이 나오는 드라마는 인기가 없다는 전례를 불식시키며 38.8%의 압도적 시청률로 작품성과 인기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전대통령조차 애청자였다는 아이러니한 인기를 구가했던 <태양의 후예>가 인기를 끈 가장 큰 요인은 흔히 '정권'의 수호자였던 '군인'이 '여자와 어린이'라는 대사로 상징되듯, '국민 일반'을 위한 보편적 정의의 수호자로 거듭났다는 점에 있다.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지정학적 공간을 탈피하여 이국의 전장터를 배경으로 삼은 '환타지적' 배경과, 총을 맞고도 다음 장면에서 바로 '불사'의 존재로 적과 대치하는 주인공의 '슈퍼맨'을 능가하는 능력치는 '로맨틱 드라마'의 가장 유효한 장치로 작동했지만, 그런 '로맨스'의 줄기를 타고 곳곳에서 두 주인공을 통해 드러나는 정의와 휴머니즘을 고뇌하는 청춘의 모습은 정의로운 시대를 갈구하는 대중들의 염원을 드러내며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전장의 정의는 이어서 <낭만 닥터> 속 의료 현실의 정의로 새롭게 구현된다. 
도라지 위스키가 나오는 옛날 다방에나 어울릴법한 한물 간 '낭만'이라는 단어가 경쟁과 성공시대에  '인간다움'이란 의미로 재해석되며 27.6%의 화려한 성적으로 2017년을 열었다. 

한때 거대 병원에서 가장 잘 나가던 의사, 외과계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신의 손 부용주(한석규 분), 그렇게 잘 나가던 그가 자신의 이름을 빌어 대리수술을 자행했던, 하지만 그 피해를 고스란히 그에에 덮어씌운 병원 측의 모함을 뒤로 한 채 사라졌다. 그런 그가 나타난 곳은 강원도 인근의 돌담 병원. 카지노로 주변의 교차하는 고속도로로 응급 환자가 범람하는 곳, 하지만 '영리'라는 조건에서 보면 한없이 방치된 이곳에, 그는 '김사부'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그 이름답게 저 마다의 상처를 지닌 젊은 의사들과 함께 '인간적인 의술'을 구현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한다. 

환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필요한 의술 대신, 돈이 되는 기계와 그럴 듯한 외관으로 환자를 유혹하는 시대, 낭만적인(?) 낡은 병원,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그곳에서 김사부와 때론 그를 의심하면서도, 그럼에도 그가 보이는 기적같은 의술을 따라 어느 틈에 자신도 '낭만적'이 되어가는 젊은 의사들은 의술이 곧 돈이고 사업인 시대에 '인간적인 의술', 그를 위한 돌담 프로젝트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다. 오로지 그들의 '선의'로. 



다음엔 법이다. <피고인> 
3월 21일 역시나 28.3%로 박수를 받으며 떠난 <피고인>의 시작은 뜻밖에도 기억조차 잃은 채 살인범이 되어 감옥에 갇힌 검사 박정우(지성 분)였다. 재벌 앞에 당당했던 검사, 재벌가의 아들 차민호(엄기준 분)이 저지른 패륜적 범죄를 눈감아주지 않은 채 집요하게 그의 뒤를 쫓던 박정우에게 돌아온 것은 아내와 딸의 살인범이라는 무자비한 함정, 심지어 그는 그 충격으로 기억까지 잃었다. 

하지만 감옥도 박정우의 '의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한국판 <프리즌 브레이크>라 빗대어진 드라마는 이제 종영과 함께 미드를 지우며, 박정우를 기억에 남긴다. 검사로서의 출중했던 그의 능력은 기억을 잃은 그 상황 속에서도 차민호가 끊임없이 그를 향해 펼쳐대는 암울한 상황을 뚫고 재심 포기와 사형수라는 족쇄를 뚫고 탈옥과 검사로의 복귀라는 희대의 역전극을 펼친다. 드라마는 늘 박정우라는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고, 그를 '고난'에 빠뜨렸지만, 그는 그 어떤 순간에도 가족에 대한 사랑과 정의에 대한 의지로 그 모든 미션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가며 결국 재벌가의 망나니 연쇄 살인범 차민호를 법정에 세운다. <피고인>의 미덕은 재벌과 손잡은 검찰, 그리고 그 하수인이 된 교도 행정의 부도덕한 권력의 고리 아래에서,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오가면서도 결국 '법'의 심판이란 기본적 방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원칙'의 문제를 일깨워주었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권의 심판 과정과 맞물리며 의의가 배가된다. 



<김과장>의 사이다도 빠질 수 없다. 
아직 2회가 남은 <김과장>은 앞선 드라마들에 비하면 18회 17.0%로 상대적으로 아쉬운 성취이다. 하지만 매회 김과장을 통해 시청자들의 마음에 부어준 속시원한 사이다 한 잔으로 차자면 그 어떤 인기 드라마 못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착해서 당하기만 했던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아 '삥땅'이 능력이 된 김성룡(남궁민 분), 그런 그가 우연히 빙판에서 구해준 인연으로 자꾸만 '착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본의 아니게 자신의 전임자 부인을 도와주고, 더러워서 나가려다 택배 회사 정상화에 앞장서고, 구조 조정에 앞서며, '비리'의 귀재, 그가 '정의로운 인물'로 거듭나게 된다. 그만이 아니다. 그가 몸담게 된 경리부 늘 회사의 궃은 일을 처리하면서도 사무실에서 음식 냄새 피운다고 구박덩이였던 바람부는대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편한 삶의 방식이라 여겼던 '복지부동'이 삶의 모토였던 사람들이 김과장과 함께 '복마전' 재벌 TQ의 대항마가 되어간다. 우리 사회에서 이미 가진 자, 그래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구조와 질서 아래에서 나 하나 어찌 목숨을 보전하고, 내 가족을 먹여살리면 된다 생각했던 '보통 사람들'이 각자의 '도생'을 위해 힘을 모으기 시작하니, 불가능하리라 보였던 '불의'가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드라마 <김과장>은 가장 통쾌하게 그려낸다. 마치 하나 둘씩 피워내기 시작한 촛불이 광장을 덮고, 절대 권력을 이제 법 앞에 세우기에 이르른 것처럼. 

이렇게 <시그널>에서부터, <태양의 후예>, <낭만 닥터>, <피고인>, <김과장>까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시청자들이 열렬히 환호했던 드라마들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 시청자라 이름지워진 이 시대의 대중들이 갈구했던 것, 기원했던 것들이 드라마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들이 형사이건, 군인이건, 의사이건, 검사이건, 일개 회사원이건, 시청자들은 그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불의에 '복지부동'하는 대신, 싸워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영원할 것같은 재벌과 정치 권력과, 검찰 등 이 시대의 권력들의 '적폐'를 무너뜨려주기를 원했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 화려한 시청률은 이 시대의 '건강한 시민의식'의 또 다른 발현이요, 갈구였던 것이다. 

by meditator 2017. 3. 24.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