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다. 때가 되면 꽃봉오리가 맺히고, 나비가 날아들고, 꽃이 피고 이렇게 순리에 따라 흘러가는게 세상인 것 같은데 4월 중순이 되어서도 파카를 뒤집어써야 하는 날씨는 봄이되, 봄을 느낄 수 없게한다. 그런데 날씨만 이상기후가 된 건 아닌 듯하다. 인생의 봄인 젊은이들의 사랑 방식의 징후가 이상하다.

장기 불황을 견디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여행, 진급 등 삶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그 무엇을 거부한 채 그저 '별 일 없이 사'는 것에 만족한다는 외신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우리나라에도 얼마전 부터 '초식남'이 등장하더니, 이젠 '사랑'조차 부담스러워 외면하는 세대가 되었다고 한다. '사랑'이 싫은 게 아니다. 사랑으로 인해 스펙을 딸 시간조차 빼앗기는, 혹시나 삶의 스케줄이 변경될 지도 모르는 번거로움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연애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아이를 하나 더 낳으라는 시어머니에게 거액을 요구했다는 여자 연예인의 농반진반의 기사처럼, 사랑의 결실 결혼은 행복의 시작이 아니라, 엄청난 비용의 결혼 자금을 시작으로, 주택비용, 맞벌이로 인한 스트레스, 육아 부담까지, 끝을 알 수 없는 연옥의 시작이란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고 있으니 우리 시대의 사랑은 그저 마음가는대로 하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그 무엇이 되고 말았다.

 

<직장의 신> 4회 엔딩에 이어 5회를 연 장면, 벚꽃 비가 내리는 가운데 장규직(오지호 분)이 자신도 모르게 그 내리는 꽃비를 보며 미소를 짓는 미스김에게 입을 맞추고 만다. 그 일이 있은 이후 장규직은 그런 자신의 행동을 곱씹으며,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자꾸 신경쓰이는 미스김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그런 장규직의 행동에 대해 미스김은 단호하게 밀어낸다. 심지어, 파리가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간 거 수준이라면서 무시하려고 까지 한다. 혼자 집으로 돌아온 미스김은 뜻모를 표정으로 숙고하지만 곧 장규직의 명함을 휴지통에 집어넣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하고 만다.

이런 미스김의 태도는 후배 정주리등이 시시때때로 '선배님~'하며 다가오는 인간 관계 맺기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과 일관된 흐름이다. 계약직으로서 이 직장에 오래 머물 것이 아니기에, 업무와 관련된 일 이외에 그 이상의 어떤 관계도 거부한다는 취지인 것이다. 거기엔 신참 계약직 사원 정주리가 동료나 혹은 상사와의 관계를 '인간적(?)'으로 접근했다가 매번 상처입고 마는 그 계약직의 존재론적 한계에 대한 숙고가 담겨있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등장하는 미스김의 과거를 통해, 그런 '트라우마' 혹은 '고찰'이 생겨났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은 스포츠 조선 연예 에서 )

 

드라마 속에서 미스김이 정주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냉랭하다. 이제 막 피어나는 들풀처럼 여리여리한 정주리는 생긴 그대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을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상사의 호의는 늘 상사의 호의 이상, 이성의 설레임을 불러일으키고,동료의 친절은 '우정'으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녀가 해석하는 세상은 '순수 의지' 그 자체이지만, 막상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오해와 이용뿐이다. 그러기엔 늘 마지막에 크리스마스 트리의 수많은 전구 중 하나를 운운하게 되는 건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그녀일 뿐이다.

하지만 그녀가 단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어서가 아니다. 부장조차도 그녀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그저 을의 하나인 계약직인 그녀의 존재는 마치 신분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었던 근세 이전의 신분제 사회처럼 2013년의 새로운 신분제 사회 속 '을'일 뿐이다. 그런 자신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정주리의 천진난만한 행동이 늘 미스김을 찌푸리게 만들고, 그런 미스김이기에, 장규직의 호의 혹은 관심을 가차없이 '파리'취급할 수 있는 것이다.

 

<직장의 신>은 웃기다. 하지만 웃다보니 애닮다. 자신이 누군인지 모른 채 '호의'만을 가지고 다가서다 자꾸 밟히는 앳된 계약직 정주리도 안타깝지만, 쓸 자리가 없어서 러시아어 능력은 적어넣지도 못하는 능력 만땅에, 멘탈은 더 갑인 슈퍼 계약직 미스김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장규직의 순수한 호의조차도 '파리'로 몰아버리는, 혼자서 점심을 먹는 것이 가장 편하게 되어버린 당하고 싶지 않아 갑옷을 둘둘 만 그녀도 자꾸 보다보면 안쓰럽긴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게 그저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닌, 사람 사이의 정도, 사랑조차도 존재에 따라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는 이 시대의 '을'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by meditator 2013. 4. 16. 0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