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는 가장 트렌디한 장르이다. 당대 젊은이들의 로망을 담은 이 장르는 그래서 가장 당대적 편균 시선을 검증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기도 하다. 11월 11일 종영한 최고 시청률 18%를 기록하며 붐을 일으켰던 <그녀는 예뻤다>나, 시청률의 늪을 헤어나오지 못했던 kbs2의 월화 드라마의 부진을 극복하기 시작한 <오 마이 비너스>는 그런 면에서 2015년 의 평균 시선을 알아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두 드라마, 전혀 다른 배경의 전혀 다른 이야기임에도 기본 이야기의 구조 면에서 유사하다. 마치 이란성 쌍둥이처럼.  




얼굴도 안되고, 몸매도 안되는, 심지어 가진 것도 없는 여주인공들
두 드라마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첫 지점은 바로 '육체 미흡'의 여주인공들이다. <그녀는 예뻤다>의 여주인공 김혜진(황정음 분)은 강력한 곱슬 머리에 안면 홍조를 지닌 오래전 남자 친구에게 자신을 내보이기조차 미안해 하는 '얼굴'에 자신이 없는 인물이다. <오 마이 비너스>의 강주은은 77kg의 거구를 주체하지 못하는 '몸매'가 과다한 여성이다. 물론 초등학교에서 전교생의 주목을 받았거나, 대구에서 비너스라 날렸던 '한때'의 시절이 있지만, 그 시절을 뒤로 하고 이제는 남 앞에 선뜻 나서는 것에 자신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육체'만이 아니다. 입사 면접에서 씩씩하려고 하지만 번번히 낙방을 하고마는 만년 취준생이었거나, 겨우 취준생 딱지를 띤 인턴이며, 말이 변호사지 은행 융자때문에 로펌에서 눈칫밥을 먹는 명색만 변호사지, '을'의 처지이다. 이렇게 2015년 로코 속 그녀들은 2015년의 화두였던 부와 육체 모든 면에서 미흡한 '을'들이다. 그것은 곧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같은 처지의 '을'이라 생각하는 시청자들의 공감의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환타지'를 기반으로 한 이들 로코는 이런 '을'들의 인생 역전을 '사랑'을 매개로 이루어 나간다. 

트라우마에 갇힌 백마 탄 왕자들
그렇게 이쁘지도 않고 뚱뚱한 그녀들 앞에 '그'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녀 앞에 나타난 그는 참 번듯하다. 김혜진의 오랜 친구이자 첫사랑인 뚱보였던 지성준(박서준 분)은 이제 훤칠한 인물이 되어 그녀가 인턴으로 몸담은 '모스트'의 해와 파견 부편집장으로 금의환양했다. 그런가 하면 <오 마이 비너스>의 김영호(소지섭 분) 역시 만만치 않다. 골수암을 앓아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나서서 절을 하지도 못한 채 숨죽여 흐느껴야 했던 소년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알아주는 트레이너가 되었고, 이제 곧 그룹 가홍의 신임 이사장이 될 터이다. 

'그'들의 스텍은 잡지사 부편집장에, 트레이너에 그룹 이사장까지 화려하기 이를데 없다. 그런 그들에 비하면 일개 월급받는 변호사나 인턴 사원인 그들은 초라하기 그지 이를데 없다. 과연 이런 언밸런스한 스펙의 남녀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스펙의 남자들을 매료시킬 그녀들의 무기는 그녀들의 씩씩하면서도 소탈한 인간성이다. 그들은 번듯하지만 하지만 그 번듯함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에게는 각자 숨겨진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다. 김혜진과 같이 초등학교 다녔던 지성준은 그 시절 몹시 뚱뚱해서 학교 친구들의 놀림감이었고, 그런 '왕따'는 그가 이민을 간 미국에서도 이어졌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매달린 끈은 놀림받던 시절 유일하게 자신의 친구가 되준 김혜진이었지만, 김혜진네 집안 사정으로 그 마저도 끊어지게 되자, 생존하기 위해 혹독한 다이어트를 감행한 것이다. 김영호 역시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숨죽여 울어야 했던 소년, 그런 그를 나약하다며 외면했던 아버지로 인해 '단맛'을 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뒤로 하고, 역시나 살아남기 위해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지금의 '존킴'이 탄생되었다. 지금의 그들은 번듯하지만, 그 번듯함을 얻기 위해 그들은 '인생의 단맛'을 삼켜야만 했다. 

즉, 두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들은 사회적으로 그럴 듯한 스펙을 챙겼지만, 그 스펙을 얻기 위해 인간적으로 소중한 것들을 놓친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은 비록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외모와 몸매를 지녔음에도, 즉 자신들이 '희생'했던 그 요건을 비록 갖추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당당'한 그녀들에게 자신들도 모르게 빠져들어 간다. 즉, 그들은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스펙'을 얻기 위해 포기한 것들을, '그녀들로 부터 보상받게 된다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사랑 코드가 된다. 외적으론 그들이 가졌고, 그녀들이 갖지 못했지만, 사실은 그녀들이 가졌고, 그들은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그녀들로 인해 회복하거나 치유한다는 것이 두 드라마의 공통점이다. 그래서 공교롭게도 지성준, 김영호, 두 주인공은 '어머니를 상실'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육친으로서의 '어머니'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지성준이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신 비오는 날 운전을 못할 정도로 혼란에 빠지듯이 그로 인한 상실의 늪에 빠져있다. 그 늪에서 그들을 건져 올리는 것은, 바로 그 '어머니'같은 모성성을 지닌 그녀들이다. 



그녀들의 연적 혹은 잃어버린 친구'
그녀들이 건져올릴 것은 심지어 그들 뿐이 아니다. 두 드라마의 연적은 공교롭게도 그녀의 친구들이다. <그녀는 예뻤다>에서 김혜진과 한 집에 사는 오랜 친구 민하리(고준희 분)는 남자들이 줄줄 따르는, 거기에 직업 조차도 호텔리어다. <오 마이 비너스>의 오수진 역시 강주은의 대학 시절 친구에 서울 법대 수석 졸업 사시 조기 패스의 수재로 이젠 강주은이 일하는 법률 로펌의 부대표이다. 당연히 몸매도 얼굴도 이쁘다. 그런데 그녀들이 이 못나고, 뚱뚱한 여주인공들의 남자들을 못 뺐어서 안달이다. 

두 드라마는 이 두 연적들의 불량한 연애관에 대해, 정신병리학적으로 다가선다. 가정적으로 불우한 민하리의 라이프 스토리를 구구절절 설명하며, 그녀의 불완전한 자존감이 친구의 애인 앞에서 솔직하지 못한 그녀를 대변한다. 그런가 하면, 이제는 로펌의 부대표에 멋진 몸매를 지닌 오수진은 여전히 과체중의 그 시절 사랑받지 못해 상처받은 오수진의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자신들에게 따스한 말 한 마디를 던져준 친구의 남자 친구에게 부도덕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의리있는 친구 앞에 자신을 속인다. 아니 근본적으로, 두 사람 모두 그럴 듯한 스펙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스펙'은 여주인공에 비해 한참 딸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들, 그리고 연적들은 경쟁 사회가 요구하는 그럴 듯한 '스펙'을 가졌음에도, 동시에 그 '스펙'의 부작용들도 모조리 가지고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거의 자신을 지워낸 이들은, 동시에 자기 자신마저 '지워버렸던 것'이다. 그들이 그런데 비해, 여주인공들은 그들이 자신들을 지워가며 그럴 듯한 '스펙'을 갖춘 동안 이뻐지지도 못하고, 뚱뚱해 졌지만, 그들이 잃은 것 놓치지 않고 지켜냈다. 이렇게 2015년의 두 로코는 2015년을 살기 위해 자신을 내던져가며 사람들을에게 그렇지 않고서도 여전히 인간적인 면을 잃지 않는 그녀들의 환타지를 통해 위무한다. 그녀들의 사랑과 아름다움은 덤이다. 김혜진이 이뻐지자 급격하게 바람빠진 듯 되어버린 드라마가 그 증거이다. 마찬가지로 뚱뚱한 몸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주은이 매력적인 것이다. 비록 드라마는 겉으로는 백마탄 왕자가 가진 것 없고, 이제는 심지어 못 생기고 뚱뚱한 그녀를 구원하는 듯하지만, 기실, 구원을 받는 것은 그들이다. 못생기고, 뚱뚱한 그녀들이 '어머니'처럼 그들을 심지어 그녀들의 연적마저 사랑으로 '구원'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2. 9. 1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