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의 건국을, 그 기틀을 구축한 삼봉 정도전의 시각에서 그려내고 있는 kbs1의 대하 드라마 <정도전>이 조선 건국의 인큐베이팅에 들어섰다.


귀양을 내려가 만나게 되었던 백성 아니 도자기를 빚어야 살아갈 수 있는 부곡민 천복과 양지를 만나 막연했던 정치적 풍운아에서 고려의 실상, 그리고 나라의 중심이 누구여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된 정도전은, 이 두 사람의 죽음을 겪으며, 더 이상 고려라는 나라로는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결론과 함께, 정치의 중심에서 벗어나 유랑 생활을 거듭하던 그의 방랑도 끝을 향해 달려간다.


드라마 <정도전>은 정도전과, 천민 양지, 천복의 만남과 그들의 죽음을 목도하는 정도전을 상세히 그려냄으로써, 정치인 정도전의 목적이 일종의 '민본주의'임을 분명히 하고자 애쓴다. 중앙 정치가의 전횡으로 먹고 살기 힘든 그들의 생활, 외구의 침탈에도 보호막이 되어줄 수 없는 정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외구의 앞잡이가 되거나, 그게 아니라도, 결국은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힘없는 백성들을 제대로 돌보기 위한 정부여야 한다는 신념을 드라마는 삼봉을 통해 피력하고 또 피력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백성 중심 사상은 당연히 그 누가 왕권을 잡던 상관없이 그들을 제대로 따뜻하게 보살피기만 하면 된다는 역성 혁명의 사상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고려라는 왕조 국가를 거쳐,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를 만들어 낸 정도전의 진실된 면모에 대해서는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다. 고려 말 사회적 갈등의 가장 큰 부분이자, 고려 왕권을 허약하게 만들었던 가장 결정적 요인이 바로, 세금을 낼 백성들을 모조리 흡수해버린  일부 권문 세가의 농장과 사병이었다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그것을 지양한 새로운 체제라는 것이, 불가피하게 세금을 낼 수 있는 소농들이 중심이 된 이상적인 정도전이 구상한 토지 제도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 역시  조선 왕조 개국 후 불과 몇 명의 왕을 거치지도 못하고, 왕가와 또 다른 신흥 권문 세가들의 이해 관계에 의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 운명을 지닌 이상적(?)인 제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민본주의적 지향을 가졌음에도 정작 백성이 어쩔 수 없이 자기 삶의 기반을 잃거나 포기하고  권문 세가의 그늘이 된  '노비'에 대해서는 무신경한 한계를 드러내며 시대적 한계를 노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석의 여지와 상관없이 드라마 <정도전>의 지향은 분명하다. 한 나라의 존립 근거는 그 나라를 실질적으로 구성하는 백성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드라마의 시각, 그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정도전의 시각에 따라, 드라마 속 인물들은 혁명과 개혁의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새로운 나라를 만들 원대한 기획을 마친 정도전은 자신과 함께 할 인물로 고려를 넘어뜨릴 만한 무력을 가진 그 누군가를 원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레이더망에 잡힌 인물이 바로 최영이다. 주변에서 만나는 백성들에게 번번히 물어볼 때마다 답으로 돌아온 최영을 만나 새로운 국가를 도모하고자 했던 정도전은 그 말을  꺼내기 전에 발길을 돌린다. 먹고 살기 위해 법을 어긴 백성에게 무리한 벌을 내리는 최영을 보고, 그가 백성을 생각하기에 앞서, 그 뿌리에서부터 고려라는 왕조 국가의 사람이라는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다음 발길이 향한 곳은 최영만큼 전국민적 인지도(?)에 있어서는 떨어지지만 그 못지 않은 잠재적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성계이다.


(사진; 미디어펜)

정도전이 선택한 이성계는 미묘한 경계인으로 그려진다. 조선이라는 500년의 완고한 유교적 왕조 국가를 이끌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고려인이 되기 위해 애쓰는 이방인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국경이 분명하지 않은, 싸움 한번에 고려인이 되기도 혹은 오랑캐가 되기도 하는 경계에 자신의 존립 근거를 가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인이 되려 애쓰지만, 그래서 고려 조정의 견제 대상이 되는 위태로운 운명의 인물로 그려낸다. 또한 고려를 뒤엎을 만한 무력을 가졌음에도, 고려를 뒤엎은 후에 새로운 나라를 만들 능력이 없어 안타까운 무장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안타까움의 근간을 드라마는 전쟁터를 누비며 짐승처럼 살아온 그가 가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멈추고자 하는 그래서 더 이상 사람들이 죽어나가지 않게 만들고 싶은 덕장의 이미지로 설명해 낸다. 그렇게 하여, 백성을 생각하는 정도전과, 살생을 더 이상 피하고 싶은 이성계의 접점을 드라마는 그들이 만나기도 전에 이미 완성해 낸다. 

그리고 이제 드라마는 두 사람이 만나 혁명을 논하고, 그리고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 그런 과정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갈 것이다. 새로운 나라라는 불온한 담론 앞에서 인연도, 우정도, 보은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결국 기로에 서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는 과거를 논하지만, 결국 그 생각의 끝이 닿는 곳은, 현재이다. 2014년의 국영방송 <정도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국가가 되지 않는다면 혁명조차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는 가장 불온한 서사이다.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2014년의 대한민국이 던진 질문이다.  


by meditator 2014. 2. 23. 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