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의 <전체관람가> 일곱 번째 감독인 창감독의 필모는 소재나 주제 면에서 다양하다. 2008년 <고사; 피의 중간고사>를 시작으로 <표적(2014)>, <계춘할망(2015)>까지. 하지만 정작 <전체관람가>를 통해 창 감독은 말한다. '불감청이었으나 고소원'(감히 청하지는 못하지만 바라던 바)이었던 장르로 '판타지'를 내세운다. 특히 설화나 상상 혹 이야기를 현실로 옮기는 것에 관심이 많다 밝혔다. 하지만 '판타지'만으로도 발붙이기 힘든데, 설화라니, 당연히 창 감독의 '소원'은 유보될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다. 타임 슬립을 기반으로 한 한 엄마의 자식 구하기인 중국 합작 영화 <역시 영구(2017)>를 통해 풀어내려 한 바 있지만, 본격적인 그의 '로망' 그 시작은 jtbc <전체 관람가>의 단편 영화를 통해서가 된다. 그렇게, <전체 관람가>의 창 감독 편은 '자본'과 시대를 배경으로 선택되어지는 산업이 된 영화계에서 감독의 도전과 로망이라는 화두를 다시 한번 풀어낸다. 




창감독의 로망, 판타지 구미호, 그러나 쉽지 않은 화두 
판타지에 대한 자신의 로망을 풀어내기 위해 창 감독이 선택한 이야기는 '구미호'이다. 그가 선택한 주제는 '혼밥'이었는데, 그것을 창감독은 직설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평범할 수 없는 그러나 평범하고 싶은 '인간'에 대한 로망'을 지닌 구미호 소년을 통해 풀어가고자 한다. 

구미호만큼이나 우리 대중 문화에서 익숙하면서도 대접받기 힘든 존재도 드물다. 한때 우리 문화계에서 인기를 끌었던 중국의 '강시' 등과 같은 설화적 존재이면서도, 영미 문화권의 '좀비'가 샤머니즘적 성격을 승화해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재해석되거나, 일본의 <나루토>처럼 트렌디한 소재가 되지 못한 채, 구미호는 늘 <전설의 고향> 납량 특집 편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했다. 

구미호를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94년 당시 조명받던 여배우 고소영을 청춘 스타 정우성과 함께 내세운 <구미호>가 등장했지만 역대 가장 '허접하다'는 평가를 받고 기억 속으로 사라져갔다. 2006년작 <구미호 가족>은 이제는 스타가 된 하정우까지 등장시키고, 당시로는 도전인 뮤지컬의 형태로 구미호를 재해석해냈지만, 감독의 차기작을 기약할 수 없는 불운한 실험작으로 남게 되었다. tv라고 다를까, 김태희가 광고의 여신으로 거듭나던 2004년 구미호를 판타지 멜로로 탄생시킨 <구미호 외전>은 김태희를 비롯한 한예슬 등의 당대 청춘 스타들을 포진시켰지만, 역시나 구미호하면 흰머리에 소복, 여우눈에 피칠갑이라는 공식을 벗어난 이 도전적 시도는 안타깝게도 역시 당대의 조롱을 받으며 쓸쓸하게 퇴장했다. 

트렌드가 된 좀비와 구미호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어서였을까? 서인도 제도 부두교에서 등장한 특이한 설화적 소재였던 좀비는 현대 대중 문화에서 거대 자본 속에서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는' 파편화되고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자본주의 위기 속 개인들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수용하며 현대적 문화 코드로 재탄생되었다. 반면, 그간 우리나라에서 등장했던 대부분의 '구미호'들은 현대적 재해석을 내세웠지만, 아름다운 여배우를 내세운 <전설의 고향> 구미호 편의 해석을 뛰어넘지 못했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입장에서도 전설의 고향같은 구미호를 연상하고 요구하고 그에 이질적이면 불만을 표출하게 되는 것이 당연지사다. 



'혼밥'이 승화된 사회적 고독으로서의 구미호 
창 감독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앞서 구미호를 다룬 작품들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신이 자신이 선택한 주제 '혼밥'을 사회적 고립으로 확장하며, 거기에 평범한 사람들과 섞일 수 없는 구미호라는 캐릭터를 설정하며, 자신만의 판타지 월드를 구축해 낸다. 또한 구미호라면 당연히 여성이라는 고정 관념을 넘어서, 어머니 구미호를 등장시키지만, 거기서 탄생한 존재, 아니 어머니 구미호가 천년의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탈취 변형한 자식 구미호로 송재림이란 남성 배우를 내세우면 전설을 뒤튼다. 

장황했던 메이킹에 비해, 정작 본편의 단편은 간결하다. 작품이 끝난 뒤, 대번에 2편이 궁금하다, 2편을 내놓으란 말이 나오듯, 창 감독의 <숲속의 아이>는 그 자신이 말하듯 자신이 구상한 장편의 프리퀼같은 모양새를 띤다.
곧 다가올 아이의 출생을 행복하게 기다리는 평범한 부부, 그러나 그 행복은 급작스럽게 찾아온 산통으로 병원에 가던 중 실종된 아내, 아니 실종된 아내의 뱃속의 아이로 인해 비극이 된다. 그 충격적인 씬이후에 비로소 등장하는 제목 <숲 속의 아이>. 이어지는 다음 이 작품의 주제가 되는 '혼밥'을 하는 청년, 분식집에서 주변 사람들을 열심히 살피며 그들처럼 '간'을 집어먹지만, 익힌 간의 맛이 낯선지 곧 뱉어내고 만다. 그리고 들이닥친 경찰들, 청년을 밤거리에서 살인을 한 혐의로 체포하고, 그런 청년을 도와주려는 인권 변호사가 나타나지만, 그 '도움'은 그 인권 변호사는 물론, 경찰서의 피비린내 나는 살상으로 마무리된다. 

출생과 이어지는 청년의 난동이라는 이 불친절한 연결은, 하지만 다음 장면 엄마 구미호와 아들 구미호의 대화, 그리고 두 모자가 떠나는 도시, 새로이 자리잡은 숲속을 통해 모든 걸 설명한다. 나는 왜 이러냐며 평범하고 싶다는 아들, 평범한 게 무어냐고 반문하는 엄마,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다며, 살다보면 너도 평범해질 거라고 말하며 자신만큼 다 큰 아들을 보다듬는 엄마. 아름다운 여배우를 내세워 전설을 복기하지 않아도, 선우 선이라는 배우의 선굵은 분위기로 엄마 구미호와 배우의 재발견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아들 구미호를 열연한 송재림을 통해 고립된 존재 구미호를 설득해 낸다. 영화 관람 후 정윤철 감독이 빗댄 <렛미인>이나, 혹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늑대 아이>처럼 이종의 존재를 통해 오히려 인간을 돌아보게 되는 쓸쓸하고도 짙은 고독의 여운을 남기는데 프리퀼 <숲속의 아이>는 충분하다. 
by meditator 2017. 12. 4. 1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