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나면 알게 된다. 도발적이게도 이 영화는 이미 <인비저블 게스트>라는 제목을 통해 관객에게 모든 패를 다 보여주었다는 것을. 하지만, 오리올 파올로 감독이 보여준 그 반전의 패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이 영화 한 편의 종주는 필수적이다. 


스릴러 영화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평범한 한 시민이 뜻하지 않은 범죄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 비저블 게스트> 역시 그렇게 시작된다. 유망한 젊은 사업가 아드리안(마리오 카사스 분)은 고립된 호텔 방에서 살해당한 내연의 애인과 함께 발견되었다. 동절기 추위를 피하기 위해 아예 걸쇠를 제거한 창문들, 보조 잠금 장치까지 잠궈진 채 안으로 잠궈진 방, 그곳에 있었던 사람은 아드리안과 그의 연인 로라(바바라 레니 분)뿐, 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온 경찰은 아드리안을 로라의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 



밀실 범죄의 트릭 속에 갇힌 주인공
에니메이션의 고전이 된 <명탐정 코난>에서 부터 최신 트렌드 추리물 영드 <셜록>까지, 살인 사건이 난 장소가 '밀실'이라 하면, 마치 '게임이 끝났다'는 말처럼 가장 완전 범죄의 필요 조건이 갖추어 진다. 아드리안과 로라가 있던 밀실, 그곳의 살인 사건, 이렇게 시작된 영화는 아드리안에게 불리한 증인으로 인한 검찰 소환까지의 3시간이란 제한된 시간을 앞두고 승소 확률 100%의 변호사 버지니아와 아드리안의 숨막히는 '진실 찾기' 게임으로 뻗어나간다. 

승소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숨김없는 진실을 털어놓아야만 아드리안을 위한 승소의 계획을 짤 수 있다며 아드리안을 압박하는 은퇴를 앞둔 은발의 여 변호사 버지니아. 그녀의 다그침에 아드리안은 자신이 말려들어가 버린 이 범죄의 트릭에 대해 토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뜻밖의 또 하나의 범죄 아닌 범죄, 각자 아내와 남편이 있었던 두 사람은 은밀하게 만나 밀회를 즐기고 서둘러 돌아가던 중, 뛰어드는 사슴을 피하느라 핸들을 돌리고 그 과정에서 맞은 편에 오던 차가 사고를 당하게 된다. 황급히 사고 차량을 살펴보니 이미 운전자는 숨을 거두고, 그의 사고 신고를 하는 과정에서부터 아드리안과 로라의 이해 관계는 얽혀 들어간다. 

아드리안은 주장한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로라의 제지 때문이었다고. 신고를 하려던 자신을 제지하고, 자신들의 밀회와 사회적 위치를 보존하기 위해 아드리안에게 사고 차량과 운전자의 '수장'을 지시했으며, 이후 그들을 추적해오는 경찰과 협박범에 대한 모든 대응은 오로지 '팜므 파탈'같은 로라의 의도였다고. 

영화는 로라의 살인 사건 뒤에 숨겨진 또 하나의 뜻밖의 교통 사고와, 그 우연한 사고를 덮기 위해 아드리안과 로라가 벌이는 고군분투(?) 과정에서 빚어진 경찰과 존재를 알 수 없는 협박범과, 그리고 아드리안이 증거를 없애기 위해 수장시킨 사고 차량 운전자의 시신만이라도 알려달라 애걸하는 그 부모 가리도 씨 등과의 접점을 로라 살해범 아드리안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한 재구성 과정으로 다각도로 접근해 들어간다. 



'고통없는 구원은 없다'
그 '밀실'에 자신들 두 사람말고 그 누군가가 또 있었다고 주장하는 아드리안, 그 주장만큼 아드리안은 그 일련의 두 사건 사이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하지만, 버지니아는 그런 아드리안을 제한된 시간과 그가 내뱉는 진술의 헛점을 지적하며, '진실'을 파고든다. 

올해의 기업인 상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아드리안, 그는 자신은 그저 로라의 함정에 걸린 것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실을 말해야만 너를 도울 수 있다는 버지니아의 압력은 시간이 갈수록 결백했던 아드리안의 진술, 그 이면의 것들을 드러내도록 만든다. 

2017 전주 국제 영화제 초청 작품으로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국내 영화사를 통해 '리메이크'가 결정된 <인비저블 게스트>는 바람난 사업가와 그를 둘러싼 미스터리한 사건이라는 어찌보면 가장 통속적이며 대중적인 서사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통속적'인 이야기를 한 건의 실종 사건과 또 한 건의 밀실 살인 사건이라는 두 건의 사건과 그 사건과 사건 사이에 벌어진 모든 변수를 놓고 벌이는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피 말리는 두뇌 게임을 통해 마치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듯 추리의 향연을 벌인다. 



진실을 다그치는 변호사, 그 변호사의 다그침을 피해 어떻게든 자신이 피해를 입지 않은 채 두 개의 사건 사이를 피해 가보려던 아드리안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검찰의 소환과 '고통없는 구원은 없다'는 변호사의 압박 사이에서 자신에게 덜 피해가 가는 변수를 제시해 간다. 그리고 그 변수의 과정은 바로 우리가 이 영화가 제시한 두 개의 사건에 대해 '추리'해볼 수 있는 모든 변수들이다. 똑같은 사건이 '프레임'을 어떤 각도로 잡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한껏 내보인다. 그렇게 변수에 변수를 돌다리를 두드리듯 건너간 변호사와 관객들은 결국 그 어떤 가능성으로도 포장할 수 없는 어떤 진실의 지점에 도달하게 되고, 영화는  범죄의 늪에 빠진 주인공에게 '다시 좋아질 것이라는 확실한 희망' 대신, '반전'을 선사한다. 

그 '반전'은 관객으로 하여금 복기하도록 만든다. 애초에 자신이 밀실 살인 사건을 목도하고 했던 의심을, 아드리안의 최초 진술에 대한 의혹을, 그리고 애초에 감독이 그 모든 진실을 다 흘뿌려놓았음에도 아드리안의 그 초조한 '평범한 이의 억울한 누명'이라는 결정적 복선 앞에 가장 분명한 의심 대신 자신 역시 갈짓자를 걸었음을, 그리고 바로 이 갈짓자의 걸음이 바로 <인비저블 게스트>의 묘미였음을. 추리 소설의 진짜 묘미는 드러난 진실도 진실이지만, 그 진실을 글쓴이와 함께 고민하고 모색하고 추적해 가는 과정의 매력이다. 사건의 진실 만큼이나, 그 진실을 찾아가는 갈짓자 걸음의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그런 의미에서 <인비저블 게스트>는 밤을 세워 손에 땀을 쥐고 읽은 한 편의 추리 소설과도 같다. 
by meditator 2017. 9. 25. 1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