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 박성호, 김준현, 정태호, 양상국, 허경환 , 여섯 남자가 꾸려가는 쓰레기가 없는 일주일, 그런데 쓰레기는 둘째치고, 이 여섯 남자의 일상에서 빚어지는 푸근함이 일주일의 고단함을 싹 풀어버린다.

 

 

 

 

 

전에도 한번 말했다시피 <인간의 조건>은 이미 개그 콘서트를 통해 선후배 사이로 호흡을 맞췄던 여섯 남자들의 시너지가 빛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그 느낌이 우리가 흔히 사회 생활에서 선후배 관계에서 빚어지는 감정과 다른 빛깔을 낸다. 사회 생활에서 우리가 가장 크게 고통을 받는 부분이 바로 선후배가 갑과 을의 관계로 만나졌을 때이다. 사회 생활을 먼저 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참이라는 이유만으로 후배에게 갑이 되는 선배로 인해 받은 고통은 사회 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번 이상은 겪었을 일이니까.

그런데 웬걸, 개그 콘서트 최고참이라는 박성호를 비롯하여, 그 보다 한 살 어리지만 역시나 최고참인 김준호에게서는 그런 선배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

물론 전화가 울리면 후배가 냉큼 달려가 받긴 하지만, 그 외의 생활에서 선배랍시고, 혹은 선배라고 이런 게 없다. 오히려, 김준호는 들어올 때마다 집에서 기다리는 후배들을 위해 꼬박꼬박 먹을 걸 사들고 온다. 쓰레기 남긴 사람을 위한 벌칙도 잔머리를 써보고 앙탈도 부려보지만 준엄한 후배들과 가혹한 제작진 덕분에 제일 먼저 웃통을 벗고 찬 바닥에 무릎 끓고 '나는 쓰레기입니다'를 외쳐야 했다. 그리고 그걸 김준호는 노여워하지 않고, 아니 오히려 극적으로 만들어 가며 살려낸다.

<인간의 조건>에서 김준호의 컨셉은 좀 구질구질하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웬만하면 먹을 걸 사지 않고 후배가 먹는 걸 한 입씩 얻어 먹질 않나, 기껏 사놓은 숟가락은 내 먹을 건데 어때? 라며 씻지도 않고 쓰질 않나, 후배들은 '형, 제발~'을 외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서 당연히 따라붙은, 그에게는 개그 콘서트 최고참이라던가, 그곳에 모인 개그맨들의 소속사 사장이라는 권위 따위가 없다. 제 아무리 선배라도 좋은 개그를 위한 '배틀'에서 지면 개그 아이디어는 후배 몫이 되는 걸 당연지사로 받아들인다. 거기에 내가 선밴데~ 하는 위압적 언어나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개그맨들의 위계 질서가 엄격하다고 하는데, 이 여섯 남자들의 합숙에서는 그걸 찾아보기 힘들다. 애초에 권위와는 별 무관해 보이는 박성호에, 권위 자체가 생겨나기 힘든 김준호 덕분이다. 그래서 사회 생활 속 위계 질서에 지친 사람들에게 <인간의 조건>을 보는 건 그 자체로 힐링이다.

 

 

게다가 이미 개그 콘서트를 통해 인간적 친밀감을 쌓은 여섯 남자의 조우는 한 집에서 생활하기를 통해 이미 또 하나의 가족같은 분위기를 자연스레 형성해 나간다.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면, 서로 알아가느라 보내는 시간 대신에, 이들은 이미 익숙한 관계를 더욱 공고히 쌓아간다. 서로의 부모님을 뵈었을 때 자연스레 '허그'를 할 수 있는 친숙함이 있고, 말 한 마디면 서둘러 마트에 가서 고등어를 사다가 구워 동료의 부모님을 위한 상을 차리는 수고를 마다치 않는다.

박성호의 아들이 남긴 음식을 자연스레 김준현이 덥혀서 먹고, 뒤늦게 온 정태호가 동료들이 남긴 스파게티 면을 남은 갈비탕 국물에 말아먹는 모습에서 예전 어머님들이 하셨던 그 모습이 자연스레 오버랩 되면서, '쓰레기를 없애'는 게 아니라 '정을 쌓아'가는 인간의 조건을 체험하게 된다.

지렁이를 키워 음식물 쓰레기를 없앨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낸 양상국에게 동료들은 이제 네가 <인간의 조건>의 에이스구나 라며 감탄하고 칭찬을 하지 한번도 네가 우리보다 앞서나간다는 질시의 눈빛을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 중 가장 한가했던 양상국을 '양엄마'라 북돋아주며 그가 해낸 일을 으쌰으쌰 해주는 분위기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늘 익숙했던 다그침이나 경쟁이 <인간의 조건> 하우스에만 오면 스르르 풀려가는 김준현의 눈처럼 녹아 없어진다. 그저 밥만 먹으면 코 골고 자는 김준현도, 지렁이를 애완동물 다루듯하며 오는 사람마다 자랑하는 양상국도, 잔머리를 쓰다가도 뒤집어 쓰고 마는 김준호도 그저 원래 있었던 가족처럼 푸근하다.

'쓰레기'는 점점 없어져 가지만, 오히려 인간다움은 쌓여만 가는 힐링 하우스, 바로 여기 여섯 남자들의 공간이다.

by meditator 2013. 2. 3. 1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