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를 끌었던 <응답하라 1994>의 후속 드라마라는 부담을 안고 시작했던 <응급남녀>가

평균 시청륭 5%대로 선방하며 종영되었다. 


제목에서도 대번에 알 수 있듯이, <응급남녀>는 우리나라 의학 드라마의 전형대로, 응급실이라는 병원의 공간을 배경으로, 이혼을 했던 커플 오진희(송지효 분)와 오창민(최진혁 분)가 다시 조우하게 되어 벌이는 해프닝을 다룬다. 그리고 역시나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벗어나지 않고, <응급남녀>는 주인공 두 사람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이제는 tvn 드라마에서 로맨틱 멜로 장르의 특징이라도 되어가는 것처럼, 결론이 뻔한 스토리를 오글거리는 상황의 미장센으로 메꾸어가는 방식에서 <응급 남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처음 만나 서로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 대던 두 주인공은 어느새 다시 사랑을 하는 사이가 되어 낭만적인 장면을 마구 양산하며 행복한 결말에 이르른다.

이혼을 했던 이 두 사람이 결국 다시 이루어 지게 된 이유는 결국 '정'이다. 그들이 이전에 이혼을 했던 이유는 아직 미성숙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함께 하는 결혼을 책임지지 못했기 때문에 벌였던 잘못된 판단이라는 전제 하에, 응급실 인턴으로 만난 두 사람은, 그 이전의 자신들의 상황을 복기하며, 여전히 서로에게 미련이 남아있음을 매 해프닝을 통해 확인한다.

이혼 부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응급 남녀>의 문제 의식은 신선하다. 하지만, <세 번 결혼하는 여자>가 개연성을 차치하고, 자신과의 결혼이라는 세번 째 결혼으로 대미를 장식하며, 우리 사회 결혼의 문제를 차근차근 되짚어 보고자 했던 것과 달리,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 해피엔딩이라는 결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응급 남녀>는 오창석 아버지의 죽음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함께 살았던 정에 의지하며 두 주인공의 관계를 풀어나간다. 잡아죽일 듯이 굴었던 시어머니 역시 시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언제 그랬냐는 듯 며느리와의 앙금을 가라앉힌다. 그러고서는, 가장 쿨한 방식인 것처럼, 다시 결혼은 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는 식으로, 지금의 좋은 관계만으로도 행복하다며 마무리를 짓는다. 자신을 되돌아 보며 남발되던 나레이션은 행복의 감탄사형 종결 어미로 마무리된다.


’응급남녀’ 결혼, 이혼, 그리고 재회…사라져봐야 알수있는 것들
(사진; 뉴스24)

오히려 뻔한 두 주인공의 애정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응급남녀>를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사랑의 훼방꾼이면서, 동시에 두 사람의 멘토였던 국천수(이필모 분)였다. 

미성숙한 주인공이 여러 가지 의학적 사건들을 겪으며 제대로 된 의사가 되는 것은 의학 드라마의 전형적 클리셰이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바로 미성숙한 주인공에게 표본이 되는 멘토의 존재다. 그래서 <골든 타임>, <브레인> 등 인기를 끌었던 대부분의 의학 드라마에서 매력적인 멘토의 절대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기업이 되어가는 병원이라는 조직에서 인간적 냄새를 풍기며 생명을 살리는 의학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존재로 등장한다.
 
<응급 남녀>의 국천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덥수룩한 머리, 깍지 않은 수염에, 구멍난 양말을 신고, 하지만, 생명이 오고가는 응급실에서 그 어떤 사소한 실수로 용납하지 않는 절대 능력치의 의사로 등장한다. 또한 그러면서, 생명에 경각에 달린, 하지만 보호자가 없어 수술을 할 수 없는 환자의 보호자 란에 기꺼이 자신의 이름을 써넣으라고 말하는 휴머니즘의 구현체이기도 하다. 그런 허술해 보이는 외모에 숨겨진 완벽한 매력은 당연히 여주인공은 물론, 시청자들조차 매료시킨다. 

캐릭터의 본원적 매력에 덧붙여 그것을 상승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이필모의 연기다.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은 최진혁도 로맨틱 물의 주인공으로서 나쁘지 않았고, 그간 드라마를 통해 주로 사극 연기에 치중했던 송지효는 자신의 몸에 맡는 옷을 입은 듯 자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수준의 두 주인공의 연기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마치 국천수 그 자체처럼 보였던 이필모의 연기이다. 멘토이면서, 동시에 오진희를 사랑하는 연기에서, 선생이면서, 동시에 사랑에 눈뜨는 연기를 과장하지 않고, 하지만 국천수의 눈빛만 봐도 그의 감정이 전달될 수 있도록 깊게 이필모는 연기를 해냈다. 그런 이필모의 내공이 뻔한 로맨틱물로써의 <응급 남녀>를 독특한 맛으로 빚어낸다. 

<그레이 아나토미> 등 외국의 의학 드라마들이 멘토와 애인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것과 달리, 여전히 우리나라의 의학 드라마에서 멘토들은, 마지막까지 점잖게 멘토로서의 자기 선을 지키며 한 명의 수컷이기보다는 멋진 선생으로 남겨진다. 드라마의 중반까지 가장 설레이며 오진희에게 다가갔던, 그래서 예정된 커플 오진희-오창석보다, 현실적으로는 오진희-국천수가 더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던 국천수는, 오진희-오창석의 관계를 알면서 주춤거리고 그들의 멘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이혼이 잘못은 아니라면서도, 이혼을 했음에도 그 둘을 묶었던 관계는, 또 다른 사람의 침입을 용인할 틈을 주지 않은 채, 아니 국천수가 끼어들까봐 서둘러 두 사람의 해피엔딩을 향해 치달린다. 마지막 회에 가서야, 사실은 너를 좋아했었다고 고백할 수 있도록. 아니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한번의 결혼이 가진 관계가 낙인처럼 잔존한다는 것을 드라마는 은연중에 말한다. 또한 인간으로서의 멘토가 아니라, 인간 이상의 멘토를 그려내며 인간에 대한 환타지를 키워간다. 응급실 취프로서의 국천수도, 오진희를 사랑한 국천수도, 그래서 현실에서는 더욱 존재할 수 없다. 

<응급 남녀>의 무난한 성공은, 주말 저녁 8시 40분이라는 애매한 시간대에 안착한 tvn주말 드라마의 안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이어, 로맨틱 물 <응급 남녀>에 이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후일담을 다룬 장르물 <갑동이>까지, 주말이면 뻔한 가족드라마를 강요당하는데 지친드라마팬들에게는 주말의 선택이 풍성해졌다.


by meditator 2014. 4. 6. 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