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회 대장정의 막을 내릴 마지막 행보를 걷고 있는 <유나의 거리>, 대장정의 마무리답게 그간 유나와 함께 살던 거리 속 사람들의 이별이 잦다. 엄마를 찾은 유나(김옥빈 분)가 다세대 주택을 떠날 예정이고, 도끼 형님, 장노인이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야 할 처지이다. 그 중 우리의 주인공, 김창만(이희준 분), 유나의 소개를 받아 다세대 주택으로 세들어 와 살며 한만복(이문식 분) 사장의 콜라텍 지배인으로 일하던 그 역시 이곳을 떠나게 생겼다. 그런데, 결국 유나를 소매치기 업계에서 손을 씻게 만들었던 '의지'의 김창만, 그는 이별하는 법도 남다르다.

 

말이 이별이지, 그 이별의 시초는 본의가 아니다.

창만의 사람됨을 마음에 들어 하던 한만복 사장과 그의 아내 홍여사(김희정 분) 두 사람은 창만을 짝사랑하는 큰 딸 다영(신소율 분)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밀어부친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마음에는 믿고 맏길 콜라텍의 후계자로서, 사위 김창만이란 그림이 그려져 있다. 두 사람은 다영과 창만의관계를 도모하는 한편, 창만에게 원하면 공부를 더 시켜주겠다는 등 호의적 제안을 하며 '꼬신다'

하지만, 일찌기 유나에 대한 호의로 다세대 주택에 들어와 살게 되었고, 위험을 무릎쓰며 유나의 소매치기를 막아낸 창만은 요지부동이다. 그는 늘 소나무처럼 변함이 없는데, 처음 그를 무시하던 한만복 사장 부부는, 이제 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창만과 다영의 관계를 추근거린다.

결국 눈물과 함께 다영이 백기를 들고,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딸의 눈에서 눈물을 쏟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한만복 사장 부부는 창만을 원망하고, 심지어 콜라텍에서 나가달라 요구한다.

창만의 말대로, 처음 다영을 집적거린다고 한만복 사장에게 맞았던 창만은, 이제, 다영을 외면했다고 다시 한만복 사장에게 맞고 콜라텍에서 쫓겨난 신세가 되었다.

 

(tv리포트)

 

웬만한 사람같으면,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이랬다 저랬다 자신을 흔들다 못해 하루 아침에 밥줄을 끊은 사장 부부를 원망도 하고 따지기도 하련만, 창만은 초연하다.  그저 이제 자신이 이곳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말할 뿐이다.

 

11월 3일 방영된 47회, 골목으로 데려가 창만을 두들겨 팼던 한만복 사장네 보일러가 말썽이다. 밤새 두 자녀의 방이 냉골이 되었다. 이럴 때 딱 필요한 사람은, 바로 창만인데, 바로 전날 골목으로 데려가 두들겨 패며 콜라텍에서 나가라고 했던 그를 불러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만복 사장의 아내, 홍여사의 처지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만복 사장 부부가 누군가,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위한 잔머리에는 일가견이 있는 부부 아닌가. 결국 창만의 방을 찾아 보일러를 고쳐 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그 집에서 창만과 제일 어색하지 않은 꼬마, 동민(백창민 분)이다.

그런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는 동민의 부탁에, 창만은 고까움 하나 없이 그러마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제일 안아프게 이빨을 뽑아 줄 사람이라며 자신의 이빨을 뽑아 달라고 부탁하는 동민의 이빨을 대번에 뽑아댄다.

그리고 벨도 없다는 유나의 지청구를 뒤로 하고, 부속품까지 직접 사서, 한만복 사장네 보일러를 고쳐 놓는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콜라텍 보일러까지 손을 댄다. 그런 창만에게 민망해 하는 사장 부부에게 자기 대신 콜라텍 일을 볼 사람이 올 때까지 콜라텍 일을 봐줄테니 걱정말란다.

팰 때는 언제고 이제 와 아쉬우니 다시 그를 붇잡으려는 사장 부부의 손바닥 뒤집듯 하는 호의에는 단호하지만, 떠나는 자리는 단단히 마무리하고 떠나겠단다. 다세대 주택에서 떠나는 시기도 마찬가지다. 그가 '어르신'하고 따르던 도끼 노인이 요양원에 들어가실 때까지 머무르겠단다. 그러면서, 밤이면 '치매'에 걸려 헤매이는 도끼 노인의 방에서 자고 나온다.

 

창만은 전무후무한 캐릭터다.

일찌기 조실부모하고, 작은 아버지 집에서 지내다가, 작은 아버지에게 도둑 누명을 쓰고 가출을 했던 그, 보통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이런 캐릭터는 범죄형으로 그려내기가 쉬운데, <유나의 거리> 창만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다. 출연하는 인물 중 도덕적으로 가장 완벽한 인물이다. 어린 시절 가출하여, 홀로 밥벌이하며, 헌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생들 저리 가라할 지식과 상식을 쌓았고, 검정고시를 넘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반듯하게 살아가는 창만의 존재는, 부모 없이 못배우고 가난하면, 죄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게 정석인 것처럼 그려내는, 우리 드라마, 우리 사회의 편견을 단번에 뒤집어 버린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는, 지난 40 여회 동안 그가 그래왔듯이, 억울하게 다세대 주택과 콜라텍을 떠나는 마당에도, '사장님의 입장을 이해한다며' 그들의 편의를 봐주겠다고 한다.

'이런 창민의 진솔한 자세는 엄마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유나에 대한 친엄마의 오해를 풀게 만든다. 어디 그뿐인가, 유나로 인해 고통받던 엄마의 마을을 다독인다. 인터넷 상에서 오르내리는 루머에 흔들리지 말고, 자기 자신의 양심의 무게에 중심을 두라는 말로, 그에 대해 편견을 가졌던 엄마와 의붓 아버지의 마음조차 돌려 세운다.

낮은 곳에 사는 없이 사는 사람들, 범죄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돈이 없어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음을 가장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존재가 바로 김창만이다.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세대 주택에 모여 사는 사람들을 통해 뚝심있게 그려낸 김운경 작가의 이른바 '페르소나'다.

 

항상 옳은 소리만 하고, 반듯한 행동만 하는 김창만은 어찌보면, 참 멋대가리 없는 캐릭터인데, 이희준이란 좋은 배우를 만나, 그 캐릭터가 진실함을 채워간다. <유나의 거리>가 방영되는 동안 개봉했던 영화<해무>에서, 발에 전자발찌를 차면 딱 어울릴 거 같은, 자나깨나, '가이내'를 찾아쌌는 창욱이란 캐릭터조차도, 이희준이 하고 보니, 종종 귀엽고, 칼을 휘두르는 순간에 조차 순박함을 지우지 못하듯이, 이희준이란 배우가 가지는 개인의 아우라가, 창만이란 민숭민숭한 캐릭터와 결합되어, 진국의 향기를 뿜어낸다. 덕분에, 그저 교과성같은 인물 창만은, 인간적 매력이 충만한 오래도록 잊지못할 존재가 되었다.

by meditator 2014. 11. 4. 1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