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의 거리> 첫 회, 창만이가 살던 방에 먼저 세들어 살던 여자가 스스로 목을 매죽었다. 그런 그녀에게, 집주인 한만복(이문식 분) 는 젊은 그녀의 미처 다 피지 못한 죽음을 안타까워하기는 커녕, 남의 집에서 함부로 죽었다며, 사람이 죽어나갔다는 소문에 쉬이 사람이 들기 힘들 그 방 걱정을 먼저 한다. 그렇게 남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던 싸가지없던 한만복이 문간방 노인을 요양원으로 보내며 하염없이 안타까워한다. 어디 그뿐인가, 그와 함께 맞장구를 치던, 아니 한 술 더 뜨던 그의 아내 홍여사는 이제 집을 떠나는 도끼 노인, 창만, 유나를 위해 김치를 담그고, 밑반찬을 마련한다. 그런 그 부부에게 '소매치기'라 냉대받기도 했던 유나는 아쉬워하며 작별 인사를 남긴다. 연적이었던 부부의 딸과는 우정어린 포옹을 한다. 


이런 한만복과 그의 아내가 보여준 변화(?)가 바로 2014년 5월부터 시작하여 여섯 달 동안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유나의 거리>가 보여준 인간사 소득이다. 제 각기 자기 앞가림하기도 빠듯했던  유나네 거리 사람들은 어느 틈에, 함께 울고 웃으며, 다가올 이별에 서글퍼하는 소중한 '인연'들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시청자들 역시, 그들과의 이별이 서글프다. 마치 오래된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 같다. 이렇게, 가슴 진하게 따스했던드라마를 또 만날 수 있를런지. 


치매에 걸려서도 한결같은 창만이는 결코 잊지 않으면서도 정작 모시고 살았던 한만복은 오락가락 기억하는 도끼 노인(정종준 분)이 마지막으로 그가 자신을 기억해 내고, 언제나 얌체같다고 얄미워했던 자신에게, '만복이 넘 참 착해'라는 한 마디를 남긴다. 얌체같은 짓도 많이 했고, 얄미운 말도 골라했지만, 그래도 다세대 사람들 모두가 '효자'라고 입을 모아 말했던 한만복이 도끼 노인에게 얻은 댓가는, '그저 너는 착해'이다. 
마지막 회, 두 사람의 첫 만남의 유래가 한만복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집을 나와 오갈데 없이 벤치에 '노숙자'처럼 앉아있던 도끼 노인을 한만복이 찾아가고, 그런 그에게 도끼 노인은 한만복네 문간방 얘기를 꺼냈단다. 그냥 들어와서 살라는 한만복의 말에, 도끼 노인은 그럴 수 없다며, 매달 자신에게 나오는 정부 보조금에서 십만원을 꼬박꼬박 집세로 내며 지금껏 살아왔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같았던 이들 인연의 속내이다. 

가진 것 없지만, 자존심마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베풀 줄 아는 조금 더 가진 사람들, 그리고 그 대가는, 그저 도끼 노인의 '넌 참 착해'와 같은 인정과 인간적 유대. <유나의 거리>가 그토록 훈훈했던 이유이다. 

오갈데 없이 미선(서유정 분) 집에 얹혀 살며 하루 소매치기를 하며, 하루를 살던, 심지어 아픈 아버지가 있는 교도소에 면회갈 돈이 없어 동동거리던 유나는 창만의 노력 덕에 소매치기에서 손을 씻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까지 만나게 되었다. 
게다가 금상첨화, 유나를 버리고 갔던 엄마는 이제 재벌집 사모님이 되어, 유나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있다. 자신들의 가족 안으로 유나를 수용하기 위해, 유나의 기존 인연을 끊어 낼 것을 요구하던 엄마와, 새아버지는, 그들이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 대신, 사랑과 인연을 가지고 가겠다는 유나의 결심에 마음을 바꾼다. 유나를 자기들처럼 바꾸는 대신, 자신들이 변화한다. 출소자들을 위한 사회적 기업을 하고 싶었던 새 아버지는, 그 대상을 유나와 같은 소매치기들로 변경한다. 소매치기 전력이, 전과가, 스펙이 되는 사회적 기업이다. 그리고 그 사회적기업이 하는 일은, 독거 노인들 등을 위한 도시락 배달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되었다 생각하는 전과자들이,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굴절된 마음도 펴고, 일도 떳떳하게 하는 길을 모색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마음이 뒤틀린 그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심리 상담까지 제공한단다. 

유나에게 재벌집 사모님이 된 엄마의 등장과 함께, 그 아버지가 유나와 그 동료들을 위해 벌인 사회적 기업의 이야기에 이르면, 역시나, <유나의 거리>에도 환타지처럼 재벌이 등장하는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환타지'라고 하면, 애초에, 유나가 살던 거리 그 자체가 환타지다. 현실의 서민들을 생생하게 그려내기로 정평이 나있는 김운경 작가,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세상에 버림받거나(서울의 달), 일확천금의 꿈은 커녕, 겨우 포장마차 하나 장만하여 근근히 먹고 사는(파랑새는 있다) 현실로 마무리되곤 했다. 하지만, 2014년 <유나의 거리>의 엔딩은 유독 환상적이다. 작은 아버지에게 도둑으로 몰려 고향을 떠나, 타향을 전전하던 고아 창만은 콜라텍 매니저를 거쳐, 유나 아버지가 하는 사회적 기업의 팀장으로 금의환양한다. 그뿐인가, 그동안 들락날락 <유나의 거리> 속 이야깃거리를 만들던 여러 소매치기를 비롯하여, 이웃집에 반백수이다시피한 일용직 노동자 칠복(김영웅 분), 심지어 미선의 등을 쳐먹던 제비 민규(김민기 분)까지 사회적 기업의 일원이 될 예정이다. 잠시 잠깐 다시 한눈을 팔던 남수(강신효 분)도 우직하게 고물상 일을 이어간다. 
뜨내기 인생들이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뿌리를 내려간다. 살 길이 모색된다. 강팍했던 김운경작가 히트작들의 주인공들의 삶과 달리, 2014 <유나의 거리>는 환상적인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그때보다도 희망과 기대가 없어진, 우리네 삶이라서 김운경 작가가 억지로라도 드라마에서라도 '해피 바이러스'를 전해주고 싶어 그런거 같아 역설적이다. 50회까지 드라마를 끌고 오면서, 김운경 작가가, 자꾸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같다. 주변을 조금 더 돌아보고 살라고, 당신이 내민 한번의 손길에, 누군가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나 혼자 살겠다고 발버둥치지 말고, 다같이 조금씩 도우면서 살면,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더불어 살기를 잊은 사람들에게, 작가가 조곤조곤 그렇게 살지 말라고 달래는 것 같다. 

다시 한만복과 도끼 형님의 이야기로 돌아와, 노숙자가 될뻔한 도끼 형님을 구한 것은, 그래도 제법 돈푼이나 만지게 된 전직 조폭 나부랭이 한만복이었다. 그 덕분에 요양원에 가기 까지 도끼 형님은 마치 가족들의 품안에서 살듯 노년을 푸근하게 보낼 수 있었다. 
환타지 같은 유나 새 아버지의 사회적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의 약간의 추렴(?) 덕분에, 많은 거리를 헤매이던 소매치기와 어려운 사람들이, 더 이상 거리를 방황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결국, 조금 더 가진 사람들의 아량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라고 '계몽드라마' 같은 <유나의 거리> 마지막에 힘주어 말한다. 그렇게 한다고, 한만복의 삶이 그리 크게 축나지 않았다. 유나 아버지 기업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대신, 고아로 자란 한만복에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 생겼다. 오랫동안 자식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잠을 못이루던 유나 엄마에게 잠들기 편한 나날이 이어졌다. 이것이 김운경 작가가 생각하는 호혜적 평등 사회다. '복지' 좀 한다고, 좀 사는 사람들 삶이 그리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충만되고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모두가 행복해진 덕분에 요양원에 간 도끼 노인은 마지막까지 외롭지 않다. 요양원에 가는게 문제가 아니다. 그곳에서라도 행복할 수 있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행복한 관계를 위해 서로서로가 조금씩 틈을 내어주자는 것을, 작가는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고 말한다. 그간 <유나의 거리> 속 모든 문제덩어리들이 행복해지는 가능성을 열어준 드라마,  재미와, 감동과, 교훈까지, <유나의 거리> 덕분에 몇 달이 행복했다. 


by meditator 2014. 11. 12. 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