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의 <월계수 양복점>은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다. 이번 주에도 전국 수도권 가릴 것없이 34%로 자체 최고 시청률의 기염을 토했다.  2위인 mbc의 <불어라 미풍아>(18.9%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와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차이가 나는 수치이다. 그에 걸맞게 지난 2016 kbs연기 대상에서 <월계수 양복점> 팀은 우수상, 여자 조연상, 신인상, 베스트 커플상까지 다수의 상을 휩쓸었다. 


1월 1일 방송분에서 그간 재기의 설움을 겪던 성태평(최원영 분)이 동숙(오현경 분)-다정(표예진 분)모녀의 아낌없는 도움으로 드디어 <가요 무대>에서 트롯 가수로 재기에 성공하듯이 과거의 가수와 팬의 사랑이라던가, 월계수 양복점을 매개로 한 수제 맞춤 양복(belpoke handmade suit) 등 신선한 트렌드의 도입처럼 그간 주말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았던 이색적 소재와 '가족', '사랑'이라는 주제를 적절하게 버무려 주말 안방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제 중반을 넘겨 드라마 속 등장한 커플들의 이야기가 각각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즈음 <월계수 양복점>이 '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는 관점에 대해서는 한번쯤 짚어보아야만 한다. 아니 <월계수 양복점>만이 아니다. <월계수 양복점>을 비롯하여 우리네 안방 극장의 주인공이라 할 주말극, 일일극들의 관성적인 구성 방법 자체에 대해 새삼스럽지만 간과해서는 안될 지점이기도 하다. 

사랑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는 여주인공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하고 드디어 공중파 음악 프로까지 나선 성태평의 무대가 1일 <월계수 양복점>의 화려한 눈요기였다면, 정작 시청자들의 관심이 모아진 것은 바로 남녀 주인공 이동진(이동건 분)과 나연실(조윤희 분)의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이별이었다. 

그 과정은 우리나라 드라마의 전형적인 관례에 따른다. 잘못꿰어진 첫 만남으로 인해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던 이동진-나연실 커플, 심지어 아버지가 사라진 월계수 양복점에 사장으로 취임한 이동진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나연실의 해고였을 정도로 이 커플의 사이는 나빴다. 하지만 드라마가 그렇듯이 그럴 수록 사사건건 얽히게 된 이 커플,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드디어 결국 당연하게도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하지만 나연실은 비록 형식적인 식이나마 올리다 잡혀간 명색이 남편 홍기표(지승현 분)가 조만간 감옥에서 출소할 예정이고, 이동진은 한때 미사 어패럴의 사위였다, 비록 지금은 이혼했지만. 엄연히 법적으로 싱글인 두 사람, 하지만 막상 두 사람이 사랑을 하고 '결혼'을 약속하기에 이르자 두 사람의 앞길을 막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처음부터 나연실을 데리고 안성에 데려가 시집살이를 시키려 했던 홍기표의 어머니는 이제 아예 대놓고 연실의 집을 점거하기에 이른다. 소용이 다했다고 내칠 땐 가방 하나 싸서 짐짝 버리듯 내버릴 땐 언제고 이제와 잊지 못하겠다며 미사 어패럴의 큰딸 민효주(구재이 분)는 미련이 한 보따리다. 하지만 문제는 이 둘이 아니다. 정작 가장 큰 두 사람의 복병은 연실이 부모님처럼 믿고 따랐던 이동진의 어머니(김영애 분)다. 극중에서 꼬장꼬장하고 잔걱정이 많지만 그 누구보다 마음따뜻했던 동진의 어머니가 정작 연실이 동진의 배필이 된다고 하자, '시'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미사 어패럴의 큰딸인 옛 며느리 민효주를 불러들이는가 하면 대놓고 연실에게 떠나달라 요구하는 식이다. 드라마는 아내에게 말도 없이 집을 나갔던 동진의 아버지는 묵묵히 사랑을 후원하는 마음 넓은 아버지로 그리는 반면, 어머니는 제 아무리 인격적으로 훌륭했어도 자식의 결혼 앞에서는 이해가 앞서는 이기적인 캐릭터로 그린다. 이 역시 우리 드라마에서는 익숙한 설정이다. 극단적 모성으로 희화화된 민씨 일가의 고은숙(박준금 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2017년에도 여전한 가족 이데올로기 
2016년, 그리고 17년, 무려 21세기에도 여전히 '시어머니'의 반대가 결혼의 주요한 장애가 되는 드라마, 그리고 그런 장애를 넘지 못하고, 테일러의 기술자가 되겠다며 의욕을 냈던 나연실은 자신이 그간 쌓아왔던 커리어를 다 버린 채 야반도주하듯 월계수 양복점을 떠나 딸기 농장의 일용직 노동자가 된다. 물론 극중에서 연실은 이미 앞서도 마트 직원과 야쿠르트 아줌마를 전전했다. 하지만 그건 월계수 양복점에서 해고가 되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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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젠 경우가 다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커리어를 단박에 포기하고 떠나는 '순애보적'인 여인을 드라마는 눈물겨운 사랑이라 칭송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사랑에 목매는 여성은 연실만이 아니다. 이미 성태평과 동숙의 결혼 과정도 '스타'와 '팬'이라는 관계로 설정되었을 뿐 처음부터 동숙이 태평을 거둬먹이다시피한 사랑이었다. 

어디 태평과 동숙 뿐인가. 요즘 '아추' 커플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민효원(이세영 분)-강태양(현우 분) 커플 역시 성태평-동숙 커플의 판박이다. 비록 낙하산이었지만 미사 어패럴 실장이었던 민효원은 모든 것을 제친 채 드라마 속에서 오로지 강태양 바라기만을 한다. 그녀의 배움, 그녀의 학력 따위는 모두 소용이 없다. 한때 닭집을 하며 시장을 호령하고, 양복점을 하다 망한 남편까지 거두었던 복선녀(라미란 분)는 그래도 한때는 아르바이트라도 열심히 하더니 요즘은 오로지 잘 생긴 남편 배삼도(차인표 분) 스토커에 가까운 행보를 보인다. 

드라마는 이런 여성들의 '사랑 밖에 난 몰라'를 요즘식의 적극적인 여성의 구애 방식이라 그린다. 사랑에 있어 적극적인 것은 좋다. 하지만 적극적인 것과 사랑밖에 몰라서 자신의 일상 생활을 온통 사랑에 몸바치는 것과는 별개의 차원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주말, 일일 드라마는 쉽게 여성을 사랑을 위해 자신이 그간 쌓아왔던 것들을 포기하고, 사랑으로 인해 분노하여 복수에 헌신하는 캐릭터로 그려낸다. 그리고 그런 여성들이 삶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바라는 건, 사랑과 그 결실인 '가정'이다. 그 결과물이 가정이건대, 당연히 그 가정의 위계를 이루는 '시어머니'의 입김 또한 절대적이다. 가정과 사랑에 목매는 여성, 드라마가 강요하고 있는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다. 
by meditator 2017. 1. 2.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