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sbs의 단막극이 한 편 찾아왔다. 주말 드라마 <기분 좋은 날>이 종영하고, <모던 파머>가  아직 그 자리를 메우기 전 빈 틈을 메꾸기 위해서이다. 비록, 불현듯 찾아든 2부작 단막극이지만, 김미숙이 호연했던 <사건 번호 113>에 이어  자식 앞에서 딜레마에 빠진 모성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더구나, 최근 사회적으로 '성폭력' 범죄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당사자건, 피해자건을 떠나, 부모된 자의 입장에선 등골 서늘한 고민을 던져준다. 아니, 극중에서 등장한 성폭력 범죄만이 아니다. '맹목적' 부성이나, 모성이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암묵적인 우리 사회 분위기에서, <엄마의 선택>은 오늘을 사는 부모들에게 현실적인 질문은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2부작으로 이루어진 <엄마의 선택>에서, 선택에 기로에 놓인 엄마는 이제 막 시사프로그램의 간판 mc가 된 잘 나가는 앵커우먼 진소영(오현경 분)이다. 시사 프로그램을 이끌고 갈 만큼 사회적 인식도 높다. 그런 그녀가 아침 출근 길에 차 앞으로 뛰어든 소녀 서현아(화영 분)를 만난다. 흐트러진 옷 매무새, 바지 아래로 흘러내린 흔적이 있는 피, 정신줄을 놓은 듯 당황한 기색, 진소영은 그녀가 성폭력 피해자임을 짐작하고, 집으로 데려다 달라는 현아에게 산부인과로 가 폭력 상대방의 정액을 채취할 것을 설득한다. 
하지만, 그렇게 적극적으로 막상 자신이 적극적으로 설득했던 그 소녀의 가해자가 바로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진소영은 혼란을 느낀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러하듯이, 부인하는 아들의 말을 믿고, 아들의 범죄 사실을 전제로 하여 사건을 진행하려는 변호사마저 바꾸려 든다. 그러나, 바로 그녀의 설득으로 남긴 정액에서 채취한 dna 검사 결과가 자신의 아들 역시 가해자임을 드러내자, 그녀는 오열한다. 모든 사실을 알고도 처음에는, 예의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던 자각을 가진 이성적 존재로, 아들의 사건을 접근하고자 한다. 아들을 설득하여, 모든 죄를 자백하고, 대가를 치루자고 한다. 하지만, 오로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숨쉬는 거 외에 공부만 해왔다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해준게 있느냐는 남편 앞에, 심지어, 지금까지 해온 것을 포기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는 아들의 자살 시도에, 냉철한 사회적 인식을 가졌던 진소영은 흔들린다. 

엄마의 선택
(사진; tv데일리)

그리고 결국 아들을 위해, 진소영은 '맹목적' 모성의 길을 택하고, 그런 그녀가 선택한 수단은 또 다른 모성을 유린하는 것이었다. 즉, 도박 빚에 몰린 현아의 어머니를 찾아가, 도박판 앞에서 물불을 안가리는 그녀에게 2억을 쥐어주고 합의서를 들이민 것이다. 그 결과 당장은, 아들의 소원대로, 재판정은 아들의 무죄를 선고한다. 
하지만, 진소영이 가린 하늘은 그녀의 손바닥만했다. 현아의 엄마는 딸에게 또 한번 정신적 폭력을 행사하는 재판을 목격하고, 죄책감에 죽어가며 탄원서를 남긴다. 진소영이 처음 현아를 설득했던 블랙박스가 재판장 앞으로 배달되었다. 결국, 진소영의 말대로, 아들의 성폭력 범죄는 에돌아, 이제 진소영조차 위증죄로 얽어매어 아들과 함께 감옥행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엄마의 선택>이 그 어떤 스릴러보다 섬뜩한 것은, 바로 이 드라마가 던지는 '선택'에 대한 질문에 있다.  잘 나가는 앵커 진소영조차, 아들의 범죄 사실과, 아들의 탄원 앞에서 무릎을 끓을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부모된 자, 그 누구도, <엄마의 선택>을 두고 자신의 입장을 떳떳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나토 가나에의 원작을 옮긴 영화 <고백>(2010년 일본)처럼, 내 자식이 피해자라, 엄마로써 그들을 단죄하는 위치라면 당당하게 자신의 범죄를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지만, 같은 맹목적 모성인데, <엄마의 선택>처럼 내 자식이 가해자라면, 자신은 진소영과 다를 것이라고 쉬이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식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성의 위대함은 역사 이래 늘 칭송의 대상이었기에, 그 모성이 이렇게 왜곡되게 씌여졌을 때, 그 앞에서 우리는 난감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맹목적 모성을 논하기에 앞서, 바로 그런 맹목적 모성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우리 사회 학부모의 현주소를 직시해야만 한다. 극중 진소영의 아들은 하버드 대학 입시를 앞둔 모범생이다. 그런 아들이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을 때 처음 진소영은 아들에게 말한다. 우리 모든 처벌을 감수하자고. 그런 엄마에게 아들은 말한다. 그럴 수 없다고, 1000시간이 넘는, 자신이 중학교를 들어 간 이래, 오로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자신은 숨을 쉬는 시간 외에, 공부만 했다고. 바로, 그 맹목적 모성의 전제에 깔린 것은, 우리 사회의 맹목적 입신주의, 학력주의인 것이다. 내 자식이 그저 좋은 대학만 간다면 다 된다는 입장으로, 자식을 키워 온 우리 사회의 부모들의 현주소를 <엄마의 선택>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단지 <엄마의 선택>의 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다. 좋은 대학을 가겠다는 목적 하나만으로, 얼마나 많은 우리의 자녀들이, 도덕성이나, 사회적 의식 따위는 내팽겨쳐 둔 채, '상위 1%의 엘리트'가 되기 위해 공부에만 매진하는지 새삼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다. '카르페디엠'을 포기한 채, 맹목적으로 입시에 희생된 아이들에게 어떻게 부모가 맹목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부인하고, 기소 전까지는 무죄 추정의 법칙을 똑부러지게 말하는 괴물들을, 키운 것은, 바로 우리 부모들이라는 걸, <엄마의 선택>은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갈림길에 선 모성의 맹목성에 공감하기에 앞서, 그런 상황을 조장하고 있는 우리의 진짜 '맹목적'인 교육관을 반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 아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결국 에돌아 죄과를 치루게 된 것 뿐이라는 진소영이 낯설다. 재판정에 선 아들의 반성과 사과도 낯설다. 심지어 위증 죄로 감옥을 향해 걸어가는 진소영은 현실감이 없다. 

아마도 오늘도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자식의 좋은 학교 입학을 위해서는 국적 따위는 쉽게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재벌가의 기사들을 보면서, 죄값을 치루는 진소영이 현실감있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드라마의 진소영은 단죄를 받게 되지만, 현실의 진소영들은, 자신이 권력과 부를 이용하여, 여전히 이리저리 법망을 잘 피하거나, 피하지 못해도 최소화하고 있다는 현실은 또 어떨까. 아니, 남의 부모를 논하기에 앞서, <엄마의 선택>을 보며, 반성은 커녕, 부모된 자, 자식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맹목성'이 여전히 기세 등등한 '나'의 현실 때문일 지도 모른다. 


by meditator 2014. 10. 13. 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