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던 <정도전> 작가 정현민의 복귀와 영화배우 정재영의 첫 드라마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kbs2의 수목 미니 시리즈 <어셈블리>, 하지만 그 화제성은 아쉽게도 시청률로 이어지지 않았다. 첫 회 5.7%를 보였던 시청률은 모처럼 볼만한 정치 드라마란 호평에도 불구하고 2회만에 4.7%로 자리수를 바꾸며 주저 앉았다.(닐슨 코리아 기준) 




<어셈블리>의 부진, 정도전은 되고 진상필은 안되는 걸까?
2014년에 방영되어 화제를 모았던 50부작 <정도전>은 그 이전의 사극과는 궤를 달리한다. 일반적으로 역사적 인물을 시대적 사명에 부름받은 입지전적 인물로 미화시키는데 반해, 사극<정도전>은 고려말 조선초를 배경으로 격동기의 역사 속에 '정치'라는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명멸해간 인간적 군상들을 적나라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살신성인의 길을 걸었던 정도전은 하지만 막상 권력을 손에 쥐자 피도 눈물도 없는 '권력'의 화신이 되어 정권을 유지하는데 혈안이 된 인물로 변모한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가 취하고자 하는 신념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 속에 빗바래져만 가고, 결국 역사는 그저 명멸하는 '권력'만이 생존할 뿐이라는 걸 '허무'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그 날 것 그대로의 '정치'를 그려낸 <정도전>에 열광했다. 주인공 정도전 뿐만이 아니라, 극중 이인임으로 등장한 박영규까지 연말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는 등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그리고 1년여의 시간이 흐른 2015년 <정도전>의 정현민 작가는 마치 고려말의 정도전이 현대로 환생한 듯 역시나 날 것 그대로의 정치 현장을 오늘에 되살린다. 드라마 속 정도전이 성균관을 뒤집어 업고 똥물을 고려 권신에게 투척하던 그 모습은 이제 2015년의 현대의 정도전이 된 진상필은 노동 현장의 해고 노동자가 되어 되살아 난다. 고려 말 화분의 꽃잎을 닦아주던 이인임(박영균 분)은 역시나 여당의 막강 실력자 박춘섭으로 현현되어 집 마당의 꽃나무를 쓰다듬는다. 이권을 위해서는 나라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던 고려 말 권신은 이제 말로는 국민을 위하고 대의를 운운하지만 정치꾼이 되어 다음 선거를 위해서는 야권 후보조차 쟁탈하는 백도현(장현성 분)으로 돌아왔다. 여야의 대립으로 각을 세우는 대신 노동 현장의 부당 해고자가 여당 국회의원이 된다는 설정으로 어설픈 논쟁을 피해, 역설적으로 정치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다. 

하지만 이미 첫 회부터 출연자들의 면면을 현실 정치인에 빗대어 상상해 보는 재미에서 부터, 여야를 떠나 결국은 '선거'를 통해 이합집산하는 정치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화제를 모았던 <어셈블리>의 성과는 미미했다. 드라마의 첫 출연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이면서도 유연한 화면 장악으로 '역시 정재영'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낮은 시청률은 졸지에 '정재영'이라서 라는 물음을 만들고야 만다. 극적인 반전이었던 부당 해고 노동자의 여당 국회의원으로의 변신은 시선을 사로잡아야 할 첫 회에 노동자들의 해고 투쟁을 선보여 채널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핑곗거리를 만들었다. 시청률이 나오기 전 <어셈블리>에 대한 호평들은 시청률이라는 지표로 읺내 단 한 순간에 사람들이 외면할 이유가 되었다. 결국은 '먹고사니즘'이 판치는 세상에 누가 골치 아프게 노동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허무맹랑하면서도 머리 아픈 이야기를 들여다 보겠냐는 것이 낮은 시청률의 이유라면 이유이겠다. 



<어셈블리>의 고전, 하지만 속단하기엔 이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신드롬이 되었다던 <정도전>도 처음부터 신드롬이지는 않았다. 일개 성균관 유생이던 정도전이 더러운 권신들의 세상을 참지 못해 똥물을 투척하고 세상을 떠돌때만 해도 <정도전>은 10%를 겨우 넘는 드라마였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셈블리>의 좌초를 섣불리 운운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진상필이 국회로 입성하여 본격적으로 '정쟁'을 벌이기 시작한다면 '정치' 드라마로서 잃었던 시청자들의 관심을 회복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다지고 보면 사람들이 <정도전>에 매료되기 시작한 시점은 이인임과 정도전의 반목이 본격화되면서 부터였기에, 국회로 들어온 진상필이 박춘섭, 백도현과 이념을 넘어선 권력 투쟁을 하기 시작한다면 얼마든지 <어셈블리>의 국면 전환은 가능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부당 해고자 진상필의 필모를 이른 정리와  여당 국회의원으로 빠른 변신은 <어셈블리> 전개의 청신호다. 그리고 거기엔 그저 무난하게 연기를 하는 김규환 역의 택연의 연기가 발연기처럼 보이는 출연자들의 호연이 뒷받침된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과 별개로, 전작 <복면 검사>에서 이제 <어셈블리>2회까지,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나 기능을 담은 드라마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에 대해서는 한번쯤 짚어볼만 한다. '먹고사니즘'이 판치는 세상, 결국 사회 비판의 맥은 '우리의 먹고사니즘'이건대, 자기 삶에 몰입한 사람들은 내 '먹고 사니즘'이 아니고서는 외면하는 그 즉자적인 반응이 무섭다. 결국, 인간사 '우리'가 아니고서는 해결되지 않는 세상에, 갈수록 '내 먹고사니즘'에의 몰입은 점점 더 사회현실을 논하는 드라마들의 입지를 좁히기만 하니 말이다.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이 '내 먹고사니즘'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빠져드는 것은 정작 '남의 먹고사니즘'이라는 것이다. 동시간대 <가면>의 자체 최고 시청률(12.2% 닐슨 코리아 기준)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도 다름아닌 '재벌'들의 이야기. 도대체 살면서 뉴스가 아니고서는 조우할 일도 없는 재벌가의 끝도 없는 이전투구에 사람들이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보기 편하고 재밌으니라는 말로 퉁치기엔 씁쓸한 오늘의 과제다. 


by meditator 2015. 7. 17.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