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 밤 11시 여러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도해 보고 있는 MBC가 이번 주 내민 카드는 시사교양 <어느 날 갑자기>이다.

제목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재난재해에 무방비하게 맞닦뜨리게 된 사람들, 그 사람들의 생존과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리얼리티 드라마로 재연해낸다. 

첫 회,<어느 날 갑자기>에서 다룬 것은 세 개의 이야기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 화재 현장에 있었던 김호근 씨 등 세 사람의 생존기, 갑자기 병원에 들이닥친 멧돼지와 싸운 최동선 씨 이야기, 그리고 사이판 여행 중 총상을 입고 하반신 마비가 된 박재형씨 이야기가 다루어 졌다.

첫 번 째 사건은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이다. 그 사건 당시 불이 난 열차에 타고 있던 김호근씨는 평범한 가장이었지만, 그날 이후 그의 삶은 달라졌다. 당시 유독가스가 가득찬 지하철 속에서 겨우 살아남아 계단을 타고 올라가던 그를 붙잡고 살려달라던 중년의 여인을 허리띠를 풀러 뿌리친 기억이 있는 그는 그 기억에서 놓여나질 못한다. 어두운 곳이나, 방처럼 닫혀진 공간을 견딜 수 없는 그는 홀로 거실에서 잠 못이루는 밤을 보내며, 밤마다 찾아오는 그녀에게 10년이 넘도록 시달리고 있다. 불이 난 열차 뒤에 들어와 불이 붙어버린 열차에 타고 있던 김영환씨는 역시 구해 달라던 여자 두 명과 겨우겨우 한 층을 기어올라 생존을 했지만, 더 이상 요리사로서의 그의 삶을 지속시킬 수는 없었다. 참사의 기억이 그로 하여금 더 이상 불 앞에 설 수 없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연기를 마신 폐는 강도높은 사회 생활은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한 명 그 열차를 탔던 여성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어둠이 휩싸인 중앙로 역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죽음을 맞이하다 구출되기도 했다. 
당시 자료와 인터뷰, 재연을 통해 19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실종자, 부상자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 과정, 그리고 그 참사 속에서 살아남게 된 과정을 중심으로 첫 번째 이야기는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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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뉴스)

다음 사건은 강릉 의료원에 출현한 멧돼지 이야기이다. 강릉 시내로 뛰어들어 차에 치인 멧돼지는 강릉 의료원까지 난입하기에 이르른다. 멧돼지에 놀라 망연자실해 있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멧돼지와 싸운 장례지도사 최동선씨, 사무실에 들어가 다짜고짜 집어든 망치 하나면 멧돼지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단 그의 생각과 달리, 망치는 단번에 부러져 버리고 그는 두 시간 여의 수술을 거쳐야 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두번 째 이야기는 세 이야기 중 물론 대수술을 해야 할만큼 당시 상처는 심했지만 여파가 적은 만큼, 상대적으로 최동선씨의 오지랖넓은 캐릭터를 부각시키며 진행된다. 

마지막 사건은 40세 되던 해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한 사이판 여행에서 임금 체불에 불만을 가진 리조트 직원의 총기 난사로 사경을 헤매다 하체불구가 된 박재형씨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지 도무지 이유를 모른 채, 아니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한 무차별 총기 사고의 희생자가 되어, 하반신을 잃은 박재형씨의 이야기는, 그가 사고를 겪는 과정과, 한때 삶을 놓으려고까지 했던 재형씨가, 이제 당시 함께 여행을 갔던 친구들과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할 정도로 꿋꿋한 삶을 이어가는 재기 과정을 다룬다.

세월호 사건의 실종자 수가 쉬이 줄어들지 못하고 있는 이즈음,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어느날 갑자기>는 현실감있게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파고들만한 프로그램이다. 더구나,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은 그 계기와 과정에 있어 더더욱 세월호를 연상케 하고, 여전히 그 사건의 기억화 휴유증에서 고생하고 있는 당시 피해자들의 모습은 그래서 더더욱 다가왔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 더욱 <어느날 갑자기>는 시선을 집중시키는 화제성 면에서는 시의적절하지만, 또 그런 시의적절한 편성이, 보다 가치를 가지려면 프로그램으로서의 지향과 구성이 뒷받침되어야 할 듯하다. 그런 면에서 첫 회 <어느 날 갑자기>는 딱히 하나의 지향을 가진다기 보다는 이런 저런 구성을 포괄하고 가는 듯했다.

지하철 참사 사건의 경우, 워낙 사건의 희생자가 많고, 여파가 크다 보니, 그 사건의 실제 재연에 치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살아남았다지만, 여전히 죽은 사람으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김호근씨나, 생업을 잃게된 김영환씨의 삶을 어떻게 달리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 지도자가 된 여성의 경우는, 제작진 입장에서는 앞서 두 사람과 달리, 좀 더 긍정적인 결과를 원해 포함시켰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종교색이 워낙 강해 이해는 가지만, 시청자의 기호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는 내용이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의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은, 지난 주 <SBS스페셜>의 내용과 비교된다. 대형 참사 사고의 트라우마를 다루었던 ,<트라우마 삼대를 가다>는 대형 참사 사고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상황에 집중한다. 같은 대구 지하철 참사 사고이지만, 그 일이 한 사람의 인생에 드리우고 있는 무거운 정신적 질병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느 날 갑자기>는 '리얼리티'라는 지점에 방점이 찍힌다. 과거 이런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현재 이렇게 지내고 있다는 서술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현재 사는 모습에 따라, 사이판 사고 박재형씨는 그의 재활 과정에 집중이 되는 것이고, 강릉 의료원 멧돼지 출현 사건은 최동선씨의 인물됨에 촛점을 맞추게 된다.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도, 사례별 촛점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어느날 갑자>라는 프로그램의 강점이자, 약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형 참사 사고의 사례를 다양하게 소개한다는 면에서는 강점이지만, 결국, 누군가의 재기를 다룬 또 하나의 감동 스토리이거나, 평면적 사건 나열에 그친 그저 그전 사건 보고서의 재연 드라마를 넘어서지 못할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최근처럼 대형 재난 사고가 사회적 관심이 되고 시점에서, <어느날 갑자기>의 편성은 시의적절했지만, 조금 더 사회적 재난 사고라는 특성을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SBS스페셜>처럼 사고 당사자의 트라우마에 좀 더 집중을 하거나, 아니면, 단지 이런 삶을 사는 사고 당사자가 있다가 아니라, 좀 더 치유적 관점에서 그들의 사고에 다가서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더한다든지 해서 그저 '세상에 이런 일이' 식이 아니라, 사회적 재난 사고의 성격을 강화시킨 프로그램의 성격을 부각시켜 나가길 바란다. 특히나 대구 지하철 참사처럼 사회적 성격이 강한 사건에 대해, 그 사건의 여파를 개인적 사례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과연 그런 사건들을 우리 사회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수용해 가고 있는가를 좀 더 조명해 준다면, 지금의 세월호 사건에 대해 풀어나가는데 있어서도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건은 사회적인데, 풀이는 개인적이 되는 우리 사회가 가진 고질적 병폐를 제고해 내는 것, 버겁지만, <어느날 갑자기>가 품은 숙제이다. 


by meditator 2014. 6. 6. 1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