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지상주의 세상에서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의 처지라는게 진퇴양난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그렇게 사람들의 주의가 집중되지 않아, 다행이다 라고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바로 <아이언맨>이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지 않는 이 드라마의 '한적함'이, <아이언맨>이 그 누구의 눈치도 안보고(?)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쳐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회를 거듭할수록 든다. 시청률이 낮아 자유로워 보이는 드라마, <아이언맨>이다. 


다짜고짜 화가 나면 칼이 돋는 남자 주인공에 기겁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저만치 물러났다. 아니 칼이 돋는 것만이 아니다. 주인공 주홍빈 역을 맡은 배우 이동욱에게는 버거워 보이는,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부터 위, 아래 없이 화를 분출하는 주인공 캐릭터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 한량없이 착하고 씩씩한 '캔디'가 울고 갈 여주인공(신세경 분)이라니!
그런데 가장 기괴한 남자 주인공에, 가장 진부한 이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회를 거듭하면서, 차츰 마음에 들어온다. 스토리가 아니라, 이른바 '김용수 월드'라고 불리는 연출가의 힘에 의해서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아들 창이의 소망을 듣고, 주홍빈은 다짜고짜 아들 창이와 손세동을 끌고 밤 늦은 시간 구례로 향한다. 과열된 차를 버리고 산골 마을 버스를 왁자지껄 할머니들과 타고, 창이 외할아버지가 젓는(?) 배를 타고 창이 외가에 이르는 길은, 이게 괴작인가 싶게, 서정적이다. 아름다운 농촌 풍경에, '와~!'를 연발하는 손세동 역의 신세경의 대사는 어색하지만, 그녀의 티없는 얼굴에 버무려져, 슬슬 무장해제하게 만든다. 할머니들의 짐을 들어드리는 손세동의 캐릭터는 어색하지만, 정감이 간다. 


무엇보다 압권은, 외가가 보이는 강가에서이다. '와~!'를 연발하는 손세동과, 그녀에게서 첫사랑 창이 엄마의 향기를 맡으며 그녀를 떠올리는 주홍빈, 그 두 사람의 정서가 구례의 정취가 물씬 피어나는 강가에서 어우러질 때, 이 말도 안되는 두 사람의 조합에 반기가 가셔진다. 그 어떤 대사와 설명이 필요없다. 

절정은 밤길의 반딧불씬이다. 이 씬의 내용도 뻔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의 밤길, 혼자 집을 지킬 수 있다는 아들 창이 보다, 더 아들같은 주홍빈이, 손세동의 뒤를 따른다. 말이야, 밤 늦은 시간 겁도 없이 혼자 다니냐고 하지만, 사실 밤길을 무서워 하는 건 주홍빈 측이다. 까만 밤 길에, 앞서 가는 손세동, 그 뒤를 쫓는 주홍빈의 그림자는, 뻔한 스토리임에도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던 두 사람 주변에 한 점, 한 점, 불이 피어난다. 반딧불 떼다. 반딧불 떼에 버무려져 가던 두 사람, 손세동이 겁을 주자, 그만 주홍빈은 손세동을  꽉 안고 만다. 백 마디의 말이 필요없는 연출이 설명해낸, 두 사람의 첫 교감이다. 

그렇게, 서정적인 연출로, 주홍빈의 아픔과, 그 아픔조차 아랑곳없는 손세동의 맑음이 설명이 되니, 그저 기괴하괴만 느껴졌던, 주홍빈 등에서 솟아나는 칼이 전과 다르게 느껴진다. 심지어, 과거 주홍빈 등에서 처음 칼날이 솟아나는 그 장면, 삐죽 솟아오른 아기같은 칼날은 귀엽게 까지 느껴진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칼이 처음 솟아나기 그 시점부터, 마지막 주홍빈이 자신이 '아이언맨'임을 자각한 채 빌딩을 오르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칼이 커지고 늘어가는 것을 통해 주홍빈의 분노가 깊음을 설명한다. 마지막 '아이언맨'임을 자각한 채 날뛰다 빌딩에 매달리는 그 모습은, 흡사 포효하는 킹콩을 연상케 하는데, 킹콩의 포효가, 그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애잔하게 느껴지듯, 기괴한 아이언맨 주홍빈이, 기괴함에만 머물지 않는다. 처음엔 버겁게 느껴지던 이동욱의 연기도, 6회쯤 되니, 멜로에, 코믹에, 컬트까지, 종횡무진, 배우가 스스로 최선을 다해 즐기고 있음이 공감된다. 

그러나 아직도 종종 <아이언맨>을 보고 있노라면 이른바 형식과 내용의 괴리가 느껴질 때가 있다. 만약 이 드라마가 연출이 김용수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가 떠올려진다. 그렇다면 일찌기 <신데렐라 언니> 이래로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가족으로 인한 상처로 몸부림치는 주인공의 아픈 상처가 심정적으로 도드라지는, 전형적인 김규완 작가 특유의 멜로의 정서가 담뿍 담긴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일찌기 <신데렐라 언니> 이래로 김규완 작가의 작품에서 대표적 배우였던 이미숙과 김갑수가 존재하고, 그들이 극의 갈등에서 주된 축으로 자리 매김하며, 김규완의 정서를 이끌어 간다. 

하지만 김규완의 전형성이 김용수와 조우하면서, 드라마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작, 혹은 신선한 실험작으로 변모한다. 주홍빈이 사는 집의 포스트 모던한 분위기로 대변되는, 그 정서처럼 말이다. 윤여사가 터는 좋은데, 집만 기괴해 졌다는 그 말처럼, 김규완의 터에, 김용수가 지은 <아이언맨>은 때론 여전히 언밸런스하고 기괴하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언맨>만의 독특한 정서로 자리잡는다. 6회 마지막, 그토록 분노하던, 주홍빈이 자신이 아이언맨임을 자각하고, 슬퍼하고 좌절하지 만은 않은 묘한 쾌감의 정서가, 생뚱맞기 보다는, 김용수의 세계에서 또한 가능한 반응일 수 있다는 생각까지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여전히, 칼이 가진, 지극히 모던한 그 도구가, 인간의 몸에서 솟아오르는 그 상황이, 김규완의 멜로와 조응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가족으로 인한 갈등보다는, 조금 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스토리였다면, 그의 분노가, 개인적 인내를 넘어서는 사회적 자각이라면, 그 차가운 칼날의 생경함이 조금 더 공감가지 않았을까 하는 점에서, 연출로 다 가리지 못하는 극본의 전형성이 아쉽다. 

물론 그럼에도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주장원으로 대변되는, 아들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성세대와, 아이언맨이 된 주홍빈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 른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아이언맨>의 매력이니까. 부디, 그 기괴한 칼이, 한낯, 내 가족만 베고 끝나지 않는 상징적 도구가 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9. 26. 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