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들어선 예술은 그들이 건너온 중세와 전근대의 흔적을 털끝만치라도 남기지 않기 위해 마치 속가를 떠난 사람이 세속의 때를 벗기는 상징으로 머리를 자르듯, 장식적 요소로 작동하던 그 모든 것을 배격하기 시작한다. 또한 그것을 위해 들여졌던 온갖 비용을 경제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그것이 건축으로 가면, 집안을 장식하던 커튼이 벗겨지고, 바닥에 깔렸던 카펫이 벗겨지며, 가구의 윤곽이 되었던 모든 틀이 날라가는 것으로 등장한다. 

<아이언맨> 1회, 주인님이 '용천 지랄'을 한다며 윤여사가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하지만 그녀가 뛰어 올라가는 계단엔 손잡이가 없다. 앙상한 계단인 듯한 차곡차곡 쌓인 층계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그녀가 들어선, 그 '용천 지랄'하는 주인님 방 역시 앙상하긴 마찬가지다. 늙수그레한 하녀를 부릴 정도의 주인님인데, 방안을 차지하는 거라곤, 여기저기 툭 튀어나온 부스같은 벽체 몇몇에 덩그머니 침대 하나가 다다. 

그런데 건축학적 신사조인 '미니멀리즘'이 보기에는 꽤 새로울지는 모르지만, 소리역학? 혹은 정신과적으로 보자면 황량하기 이를데 없는 구조이다. 벽체, 혹은 바닥 그 어느 곳하나 따스하게 소리를 품어줄 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 건축은 온갖 소리를 그대로 발산해 낸다. 우리가 패스트푸드 점같은 공간에서 유달리 시끄럽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가장 첨단의 트렌드를 따른 듯하며 매우 경제적인, 하지만, 그 어떤 일말의 온기라고는 붙어있을 것같지 않은 공간에 사는 '주인님'은 그의 하녀 말처럼, '용천지랄'을 한다. 그 구조를 극대화시킬 듯한 그의 '언성'은 시멘트 벽체를 마치 당구공처럼 이리저리 튕겨 듣는 시청자의 귀까지 한껏 시끄럽게 울린다. 드라마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역을 연기하는 배우가 밥을 평소 두 배 정도는 먹기라도 해야 할 듯, 남자 주인공 주홍빈(이동욱 분)은 시종일관 보통 사람보다 '화'가 나있다. 그의 주변은 하다못해 냉장고의 상한 마말레이드에서부터, 그의 회사일까지, 온통 '울화통'은 곧 터지게 만들 것 투성이이다. 그리고 게임개발 업체 대표로 하녀까지 부리고 살 정도의 부를 지닌 그는 '갑'답게, 눈치보지 않고 '갑'질을 한다. 화가 나는 대로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성과를 내지 못한 직원에게 컴퓨터를 날리며, 그로 인해 부상을 입었다면, 넉넉한 보상금과, 기대치 못한 승진으로 달래는 식이다. '안하무인'이 허락된 그의 존재지만, 오히려 모든 것이 그의 화를 돋굴 뿐이다. 


다짜고짜 1회 내내 화만 내다 못해, 결국 그 화를 내지 못해 등에서 칼이 돋는 주인공, 눈을 씻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유전자 이상 변이로 인해 혼돈을 겪는 <엑스맨>이 아닌가 다시 들여다 보게 만드는 드라마가 바로 1회의 <아이언맨>이다. 
하지만, 이 기괴함에 묘한 익숙함이 느껴진다. 바로 우리가 사는 일상이, 주인공 주호빈의 '화'를 조장하는 일상과 너무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먹기 싫은 아침밥, 도무지 입을 만한 옷이 없는 옷장,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 단지 다르다면, 주호빈 그는 그 '화'를 '갑질'을 통해 풀 수 있는 반면, '을'인 우리는 그저 속으로 삼키거나, 음주가무를 통하거나, 또 다른 만만한 누군가를 대상으로 풀어내야 하는 양상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결국 화를 견디지 못하고 칼이 돋는 주인공이 기괴하면서도, 묘하게 익숙하다. 칼이 돋을라 하면 혹은 칼이 돋을 상황이면 후각이 예민하다 못해 '개' 저리가라가 되는 만화같은 설정인데, 낯설지 않다. 엑스맨때문일까?

하지만, 그런 '괴작'의 향기를 차치하고 보면, <아이언맨>의 기본 구도는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하다. 괴팍한, 하지만 가진 것은 많은 남자 주인공에, 가진 것 없는 여자 주인공, 아니, 남자 주인공은 과거 그가 사랑하던 여인의 향기( 물론 여기서 진짜 향기>를 그녀에게서 느끼고 맹목적으로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여자, 하다못해 길잃은 아이의 울음조차 그냥 넘기지 못하고, 자기가 쫓겨날 처지인데도, 후배들의 밥 한끼에 목을 매는, 사랑받아 마땅한 아름다운 심성, 그리고 당연히 그에 못지 않은 미색을 겸비한 여자이다. 이쯤되면, 아하! 하고 무릎을 탁 칠 수 있듯, 우리가 그간 익히 보아온 로맨스물의 구도 아닌가?

이렇게 <아이언맨>은 우리가 뻔히 알 수 있는 로맨스물의 구도에, 현대인의 전형적 증상인, '화'를 내다 못해, 괴물로 변하는 주인공이란, 독특한 설정을 얹는다. 결국 이 드라마에게 주어진 길은 프로스트의 시처럼 두 갈래 길이 될 것이다. 토핑처럼 주인공의 기괴한 변신을 양념으로 얹은 로맨스물이 될 것인가, 아니면 로맨스를 양념으로 친, 현대인의 고뇌와 슬픔을 상징적으로 다룰 것인가? 
그런데 우려되는 것은 기괴한 상상력으로 남자 주인공의 등에서 칼을 돋우는 독특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1회의 그 나머지 진행은 상당히 '우연'에 의존하는 불길한 징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후각이 예민한 주인공이 과거 연인의 향기를 찾아가다 여주인공 손세동(신세경 분)을 찾아내는 건 그렇다 치고, 하필이면 여주인공이 그에게 회사를 넘기고 외국으로 도망가는 게임개발 업체 대표의 후배이자, 직원이다. 당연히 의협심이 강한 그녀는 빼앗긴 자신의 몫을 찾아 주호빈을 만나고자 하는데, 하필이며 그런 그녀가 거둔 길잃은 아이의 아빠가 주호빈이란다. 이 얽히고 섥힌 미로의 조성 과정은, 상당부분, 우연이라는데, <아이언맨>의 함정이 있다. 

과연 이 뻔한 우연과, 그 우연을 빙자한 만남을 과연 등에서 칼이 돋는 기괴한 설정을 넘어, 현대인의 고뇌를 상징하는 역작이 될 지 1회 <아이언 맨>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품는다. 


by meditator 2014. 9. 11. 0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