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면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연장없이 종영한다. 20회로 그 보다 몇 회가 더 남은 <아이리스2>로서는 200억 대작이라는 홍보가 무색하게 한 자릿대까지 떨어졌던 시청률의 반등을 노려 볼 좋은 기회이다. 그런데 <아이리스2>의 진행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그럴 일이 있을까 싶게 답답하다. 장혁의 절권도가 돋보인 정유건과 레이의 대결처럼 분명 시선을 끄는 액션 장면은 있고, 남자 주인공 엄마의 죽음에 이어, 여주인공 오빠의 죽음이 이어지며 극적인 사건들이 줄을 지어 발생하는데 보고 있으면 지루하다. 사건만 있고 사건의 행간을 메워갈 캐릭터와 스토리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다 아는데 제작진만 모른 채 연일 사건만 터뜨린다.

 

 

멜로 드라마의 귀재 표민수 피디의 작품이 맞나?

<아이리스2>를 보다보면 종종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상황에 맞닦뜨린다. 27일 방영분에서 집으로 돌아온 정유건(장혁 분)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죽였다고 알고있는 백산이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보고 경악한다. 그 놀라움도 잠시, 어머니로부터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자신의 아버지가 바로 백산(김영철분)이었음을 알고 믿기지 않아 한다. 어머니는 부자의 화해를 종용하지만 굳어버린 유건의 눈빛은 좀처럼 백산의 애틋한 눈길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상황도 잠시 백산을 찾아든 유중원(이범수 분)에 의해 정유건은 어머니를 잃는다. 부자의 손을 마주 잡아 준채 어머니는 아버지 백산의 품에서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드라마라면 어머니의 죽음 앞에 남겨준 두 부자에게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런데 <아이리스2>는 마치 우리는 액션 드라마야 그딴 인물의 감정 따위에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라고 마음 먹기라도한 듯 정유건은 어머니를 죽인 유중원을 눈이 벌개져서 찾아다니고, 아버지인 백산은 도망치듯 사라져 아이리스를 상대로 한 자신의 계획을 진행시킨다. 그렇게 공을 들여 두 사람이 부자인 걸 밝히더니, 어머니가 죽은 이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실종되어 버린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생각처럼 나오지 않는 드라마들은 뭔가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것에 대한 강박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래서 연달아 주인공의 주변에 있는 누군가를 희생시키며 사건을 만들기에 급급하다. 백산에게서 핵무기가 어디 있는가를 알아내야 하는 유중원이 백산을 저격하는 자체가 넌센스인 건 넘어간다치고, 처음 만난 아비와 아들은 어머니가 죽자 마자 다시 남남인 듯 돌아서서 자기 할 일에 바쁘다니!

허긴 <아이리스2>는 부자 관계 만이 아니다. 연인인 정유건과 지수연 역시 한 회에 애틋한 눈길 한번 주고 받기가 바쁘다. 오히려 서현우의 복잡한 표정이 항상 두 사람의 감정보다도 앞선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왜 우리나라에서 맥을 못추는가? 제 아무리 돈을 들여 규모를 크게 만들어도 <7번방의 선물>같은 작품이 주는 공감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리스2>엔 공감하며 따라갈 스토리가 없다. 누구보다 인간의 감정에 천착했던 표민수 피디의 작품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주인공 레이가 죽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등장하는 <아이리스2>의 댓글 중에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레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런데 그 글에 한번 웃고 지나가기엔 너무 정곡을 찌르지 않았나?

<아이리스2>를 보다보면 등장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불쌍하단 생각이 든다. 주인공 장혁은 손톱이 시커매질 정도로 나오는 장면에서 혼신의 연기를 하지만 드라마에서 언제나 그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건 무시무시한 무표정 한 장면이다.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오열하는 것도 잠깐, 심지어 사랑하는 여인의 오빠가 죽었을 때 조차 그 표정을 풀지 않는 목석이다. 그가 머리를 다쳐 폭력적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설정도 다른 사람의 대사를 통해 들려주고, 아이리스로 1년을 몸담았기에 다시 nss팀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소회도 대사를 통해 흘려 보낸다. 아이리스였을 때도, 다시 돌아왔을 때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드라마에서는 그려지지 않는다. 그저 언제나 무표정한 킬러이다.

하물며 주인공이 이런대, 다른 출연자들은 오죽하겠는가? 애초에 드라마를 홍보할 때에 정유건에 대적하는 악의 축으로 유중원이라고 소개 되었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선 지금까지 nss에 대한, 그리고 정유건에 대한 악의 축은 유중원이 아니라 레이였었다. 유중원은 처음 탈북자로 등장하다가, 스파이였다며 북한에 등장하더니, 남측 수행원으로 남한에 내려와서는 아이리스라며 미스터 블랙의 심복이 되고자 애쓴다. 나열하고 보면 그의 행보는 화려하지만 정작 드라마에서 유중원 역의 이범수가 하는 거라곤 어색한 북한 사투리 몇 마디에, 인상쓴 얼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의 다양한 변신으로 인한 극적 재미를 노려보았겠지만, 28일 연화가 유중원에게 말했듯이 '어떤 사람일까'라는 정체성에서 혼란만 가중시켜왔다. 그러다 보니 일관되게 아이리스의 행동대장이었던 레이가 악의 축으로 각인될 정도로.

그래도 유중원 역의 이범수는 낫다. 김연화로 출연하는 임수향은 더하다. 가끔 몸매를 부각시키는 장면 외에는 늘 꼬나보는 표정으로 복수만 일갈하는 그녀는 외국에서의 활약 이후로 왜 등장하는지 모를 정도다. 얼마 전 등장한 박태희도 비슷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아이리스2>의 출연진들은 등장은 화려하게 한다. 하지만 그뿐, 이후 전개 속에서 인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보다 일관되게 눈에 힘이 들어간 그래서 굳이 이제 와 밝히지 않아도 그가 배신자라는게 다 드러나 이준의 연기에 더 힘이 실린다.

<아이리스2>엔 다른 드라마에서 충분히 제 몫을 해낼 배우들이 포진되어 있다. 하지만 그 배우들이 <아이리스2>에선 기계 인형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혹은 한 가지 표정으로 주어진 분량만을 채우고 퇴장한다. 각 캐릭터가,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없으니 항상 <아이리스2> 는 맹숭맹숭하다.

by meditator 2013. 3. 29. 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