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막상 교육 현장을 방문하고 느끼는 가장 현실적인 느낌은 절망감이다. 물론 지역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학년이 올라갈 수록,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 일부분의 학생들이 앞에서 강의하시는 선생님의 수업을 듣지만, 그 일부분의 학생을 제외한 상당수의 학생들은 수업에서 소외되어 있다. 그것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든,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피치못해 소외된 것이든. 시험 시간에는 더 명확해 진다. 시험지를 나눠줌 과 동시에 시험을 포기한 학생들은 신속하게 답을 찍고, 시험지를 접어놓고 엎드린다. 단지 학교마다 그 수가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학교 현장에서 그런 아이들을 만나는 게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그 아이들에게 학교란 무엇일까? 그렇다고 수업을 잘 듣는 아이들은 다를까? 아이들에게 묻는다.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온종일을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 학생들에게 교실이란, 선생님이 '꿈', '함께 하는' 등의 긍정적인 의미를 담은 정의를 내린 반면, 상당수의 학생들에게 교실은, 총성없는 전쟁터이거나, 지옥같은 시간으로 정의내려진다. 이렇게 너무나 다른 생각의 격차를 가진 선생님과 아이들, 그렇게 넓은 강과도 같은 둘의 사이를 좁히고자 애쓰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스승의 날 특집으로  kbs1과  ebs는 다큐로 담았다. (ebs 스승의 날 특집 다큐<선생님의 아이들, 아이들의 선생님>(5월 15일 방송), kbs1 스승의 날 기획 <나는 선생님입니다>(5월 15일, 16일 2부작))



<나는 선생님이다>의 1부 대전 탄방중학교의 김정석 국어 선생님은 학창 시절 평범한 모범생이었다. 학교 성적을 보고 아버지가 교사라는 직업을 권했고 선생님도 그런 부모님의 추천에 큰 거부감없이 사대에 진학했다. 사대에 진학했으니 당연히 임용 교시를 보았고, 그렇게 국어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김정석 선생님이 택한 건 국어 교사라는 직업이었다. '담임, 지도, 상담' 등 교사가 해야 하는 또 다른 직무에 대해 선생님은 준비돼지 않았었다. 당연히 자신이 가르치면 아이들은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고 맞닦뜨렸던 교육 현장, 자신의 의지와 달리 어긋나는 아이들을 보며, 가르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심한 질책으로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법적 처리까지 가게 된 학생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진 김정석 선생님은 좀 더 나은 선생님이 되고자 한 달에 두 번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교사 공감 교실에 참여한다. 교과서 적으로 살아왔던 자신이 교과서 밖 아이들을 만나면서, 과연 그들을 교과서로 끌고와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에게 맞추어 주어야 하는가 라는 자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공감 교실에서 만난 박모정 선생님은 자신에 대한 교원 평가에 욕까지 써놓았던 학생들이 2년이 지나 자신의 생일에 케익을 주었을 때, 기쁘고도 불안했다며 눈물을 흘린다. 학생들과 교감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고, 그런 학생들이 또 언제 자신들에게 등을 돌릴까 불안하다는 말에, 그만 김정석 선생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이런 두 선생님의 모습을 통해, 그저 세간의 가장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교실 붕괴의 시대 혼란과 고뇌를 가진 한 사람으로서의 선생님이 오롯이 전달된다.

한 해 7만 여명의 아이들이 교실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전체 학생 수의 1%에 해당하는 아이들이다. 그렇다고 교실에 담겨져 있는 학생들이 행복한 건 아니다. 전세계 학생들과의 비교에서 성적은 높지만, 행복 지수는 최하위인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또래 학생들과 선생님들과의 관계에서 행복감을 쉬이 얻지 못하고 있다. 

앞의 김정석 선생님은 교사 공감 교실을 통해 배운 상담 기법을 학생들에게 활용한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지만, 선생님은 선생님이 그저 친구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친구같으니까 아이들이 그저 친구처럼 여길뿐 말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친숙함 이상의 신뢰, 우러나오는 권위가 필요하다고 여전히 김정석 선생님은 고민중이다. 

학교는 무너지고, 교실은 붕괴되어 가고 있다지만, 김정석 선생님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의 소통을 통해 학생들로부터 신뢰를 얻어가고자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각자 선생님들이 처한 환경에서, 각각의 선생님들은 각개전투를 하듯이 아이들과 유대를 쌓아간다. 

중화고의 방승호 교장 선생님은 기적을 만들어 냈다. 삐에로 가면을 쓰고, 호랑이 탈을 쓰고 교문 앞에서 춤을 추며 학생들을 반기고, 언제든지 누구한테 얘기를 해도 받아들여지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교장실 문턱부터 낮춘 방승호 선생님 덕분에 학교 폭력과 핸드폰 분실은 부지기수에, 지각을 밥 먹듯이 하던 중화고는 이제 학교 폭력은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고 자퇴아가 돌아오는 학교가 되었다.(<나는 선생님이다>) '교문 앞 스토커'라는 별명이 붙은 용인 흥덕고의 이범희 교장 선생님이 하는 방법도 다르지 않다. 매일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 주변을 돌며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학생 주임 선생님 덕에 아이들은 달라졌다.

두 편의 다큐를 보면, 그토록 문제라는 우리의 아이들이 실제 바라는 것은 그다지 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저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은 달라진다. 전남 순천의 효산고 안중철 영어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면 아이들은 'I love you'라고 답을 한다. 그러면 선생님은 묻는다. 'what's your dream?' 이 낯부끄러운 상황이 매일 이 학교 영어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선생님은 생일이 되면,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 생일시를 써준다. 그저 시가 아니다. 그동안 그 아이와 선생님이 나눴던 메시지를 기반으로 지은 시이다. 수업 시간에 소리를 지른 학생에게 선생님이 10분의 시간을 주고, 10분 동안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학생이 조용히 수업에 임했던 그 기억을 선생님은 최고의 선물이라고 시에 적는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그 무엇도 할 의지가 없이 무기력해서, 오히려 쉽게 어떤 일을 저질러 버리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시를 짓기 시작했다는 선생님에게 아이들은 그저 빈말이 아니라, 정말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학교 밖으로 떠난 아이들을 학교로 불러 세운다. 


아이들이 존중받는 느낌을 받도록 하기 위해 선생님들은 다양한 방법을 모색한다. 아침마다 교문에서, 교실 앞에서 아이들을 반기며 힘껏 안아주고,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한다. 모두를 수업에 참여 시키기 위해 다양한 현장 활동을 모색하고, 이를 위해 교사간 협력에 매진한다. (분당 보평중) 한 사람이라도 소외되지 않는 수업을 위해 수준에 따라 모둠을 나누고, 모둠 별 문제지와 교육을 실시한다.(구현고 오영일 수학 선생님) 학생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학생들 스스로 교사가 되어 수업에 참여하도록 이끌기도 한다.(용인 소명중) 아예 학교의 방식을 달리하기도 한다.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 태봉고에서 수업은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 지지 않는다. 130여 명의 학생들이 목공을 배우고, 텃밭을 가꾸고, 공동체 회의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결정한다. 양업고의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뛰고, 학생들의 문제를 속속들이 함께 한다. 덕분에 제도권 학교를 포기한 학생들이 이 대안 교육 현장에서 학업을 이어나가고 꿈을 찾을 수 있다. 

태봉고의 공동체 회의 시간 학교 폭력 문제로 대립각을 내세운 학생들은 첫 날도, 둘째 날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웠다. 하지만, 서로의 속내를 모두 드러낸 아이들은, 셋째날 화해했다. 회의 자체가 수업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소명중 수업 영상에서 선생님은 찾아볼 수 없다.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질의 응답을 받는 것오 학생들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다. 청운 중의 국어 수업 시간, 학생이 선생님을 대신에 칠판에 필서를 한다. 선생님은 자료를 보여줄 때마다 학생들에게 확인한다. 3년째 수업을 맡은 강신혜 선생님은 중증 1급 시각 장애인이다. 

아이들과 소통이 이루어지고, 서로 간의 신뢰가 쌓이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해진다. 선생님들은 교실의 주인공은 학생이라는 전제를 놓지 않는다. 그들이 모두 교실의, 수업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오늘도 여러 분의 선생님들은 늦은 밤까지 교무실의 불을 밝힌다. 그분들에게 스승의 날은 더 이상 부끄러운 날이 아니다. 


by meditator 2014. 5. 17. 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