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휘를 비롯한 김도진 등이 만난 그 장소, 렘브란트의 야간 순찰이 그려진 맞은 편에 또 한 편의 그림이 걸려있다. 바로 프란시스 고야의 <아들을 삼킨 사투르누스>가 그것이다. 


사투르누스

이 그림은 고야가 은둔했던 자신의 집(퀸타 델 소르도)의 벽에 그린 '검은 그림' 연작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1층 식당 벽에 그려졌던 것이다. 

여기서 괴물처럼 묘사된 사투르누스는 로마의 농경신이지만, 로마 신화의 많은 신들이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차용해 와서 만들어진 것처럼, 실제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와 동일시된다. 사투르누스, 즉 크로노스는 자신의 아들 중 한 명에게 자신의 왕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자식들이 태어나는 족족 그들을 먹어치운다. 테메테르, 포세이돈, 헤라 등이 사투르누스의 먹이가 되어버어 그의 뱃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고야는 이 그림을 통해 신화의 재현을 넘어 자신의 아들을 먹어버릴 정도로 타락한 기성세대의 폭력성을 그려내고자 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고한 시민과 애꿏은 젊은 군인들을 희생시킨 다국적 기업 팔콘사와, 그와 작당한 재신그룹, 그리고 정부 각층의 인사들을 이 그림보다 더 적절하게 상징할 수 있을까.

그림은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로 끝나지만, 신화는 그 후일담을 전한다. 막내 아들로 태어난 제우스는 다행히 목숨을 건지고, 힘을 키워 아버지 크로노스를 죽이고, 그의 뱃속에 들은 형제들까지 구한다. 과연 재신 그룹과 그 일당들의 시커먼 뱃속을 폭로하고, 그들에게 무고하게 희생된 죽음들을 되살려 낼 오늘의 제우스는 과연 누구일까. 그들 중 하나인, 마치 사투르누스의 아들로 태어나지만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죽인 제우스처럼, 김도진에 의해 대통령이 된, 그들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난 이동휘일까, 좀 더 포괄적으로  기성 세대와 다른 순수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진 한태경일까. [아들을 잡아먹은 사투르누스]의 후일담은 드라마를 통해 확인해 보면 될 것이다. 


6회까지 진행된 <쓰리데이즈>에서 악의 최종 보스로 등극한 사람은 재신 그룹의 김도진이다. 드라마에서 김도진과 이제 그의 반대편에 선 이동휘가 만나는 장소가 한 군데 더 등장한다. 바로 김도진의 집무실, 자신이 바랬던 바와 달리 양진리 학살 소식을 접한 이동휘는 김도진의 집무실을 찾아가 그의 멱살을 잡는다. 바로 그때 두 사람의 뒤에 배경으로 등장한 그림이 있다. 바로 리베랄레 데 베로나의 [디도의 자결]이다. 


대표적인 르네상스 회화인 이 그림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아스] 4권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트로이의 왕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 아이네이아스는 점령된 트로이를 피해 배를 타고 도망치다 디도가 여왕으로 있는 카르타고에 도착하게 된다.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여왕 디도는 아이네이아스를 사랑하게 그가 카르타고에서 살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로마를 건국하라는 신탁을 받은 아이네이아스는 디도가 매달리는 걸  뿌리치고 카르타고를 떠나고, 그가 떠나던 날 디도는 자신을 버리고 간 디도를 원망하며 그가 준 선물 더미에 불을 지르고 그 위에서 칼로 자결하며 생을 마친다.

[디도의 자결]의 메시지는 배신 혹은 임무에 희생당한 사랑이다. 
즉 그 그림 앞에서 멱살을 잡이를 한 김도진과 이동휘, 98년 그들은 팔콘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양진리 사건의 이해 당사자로 밀월 관계를 유지하지만, 김도진이 그의 궁색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양진리 사람들과 군인들을 희생시킨 순간, 그 밀월 관계는 파국을 예고한다. 
자신이 대통령 이동휘를 만들었다고 믿는 김도진은 이동휘에게 말한다. '왜 그러셨어요? 그간 좋았잖아요,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하지만 이동휘는 말한다. 먼저 배신을 한건 자신이 아니라고. 김도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반발하는 이동휘를 구슬르기 위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대통령 이동휘는, 김도진의 말처럼, 양진리와 같은 일을 다시 만들지 않기 위해, 외국과 자본가들의 손에 농락당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신을 했다고 말하는 김도진과 이동휘, 과연, 화염에 휩싸인 채 배신에 떨며 자결에 이르는 디도는 누구일까. 경호실장의 총에 희생될 뻔하던 이동휘는 스스로 그 화염을 뚫고 나온 디도와도 같다. 매회 밀고 밀리는 이동휘와 김도진의 일진일퇴 속에 그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4. 3. 25. 1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