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씨가 <썰전>을 그만둔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세간의 반응은 이젠 <썰전>도 다 됐구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은 이어진 다음 패널로 유시민 전 장관이 등장한다는 소식에, 섭섭함은 눈 녹듯 사라지고, 과연 유시민 장관의 입담을 당해낼 '보수적' 인사가 누가 있을 것인가 라는 노파심들이 지레 앞섰다. 하지만, 지난 1월 14일에 이어, 21일 방영된 <썰전>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유시민을 당할 자가 그 누가 있겠는가?라는 우려가, 말 그대로 우려였음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2회에 불과하지만 새로운 패널로 등장한 전원책 변호사는 때론, 이른바 '좌파' 유시민을 앞설 정도로 통쾌한 보수로 실시간 검색어까지 장악할 경지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새로이 합류한 유시민, 전원책의 색다른 케미는 프로그램의 인기에도 영향을 끼쳐 2%대에서 고전하는 시청률은 단박에 3%대를 넘어섰다.(1월 14일 3.353%, 1월 21일 3.586% 닐슨 코리아 기준)


유쾌통쾌한 보수 전원책 
1월 14일 첫 선을 보인 전원책 변호사가 처음부터 '사이다' 보수였던 것은 아니다. 첫 등장에서 부터 그가 종종 출연했던 종편의 방식대로 유시민과 김구라를 싸잡아 '좌파'라는 프레임을 씌우기에 급급했다. 인터넷에 회자되던 '김정일 ㅇㅇㅇ' 발언자 답게 '핵무장론'까지 들고 나오며 보수로서의 자신의 칼라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분투했다. 무엇보다 첫 방송에서 그는, 언제나 등장하는 보수적 인사들이 그렇듯이, mc 김구라나, 또 다른 패널 유시민의 말을 듣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목소리 높은 사람이 이긴다는 속담을 실천하기 라도 하듯, 자신의 주장을 목소리높여 내세우는데 급급했다. 그래서 저래가지고서야, 양 측의 입장은 둘째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썰전>이 가능하겠는가란 회의를 들도록 만들었다. 

허긴, 보수적 인사의 '마이동풍'은 전원책 변호사만의 전매 특허는 아니다. 이미 강용석 변호사 시절부터 '대화'를 하는 대신, 마치 성명서를 발표하듯이 자신이 준비해온 입장을 낭독하는 듯한 발언을 줄줄이 쏟아냈었다. 단지 그것이 시간의 마법에 말려들어 어느덧 '아전인수' 해놓고 스스로 낯이 붉어지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첫 등장한 전원책 변호사에겐 아직 '시간'의 마법 가루가 뿌려지지 않은 듯, 날선 자신의 입장을 토해 놓기에 급급했다. 



그랬던 전원책 변호사였는데, 2회에 들어서는 이 사람이 지난 주 그 사람이 맞아?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물론 여전히 정치인 들 모조리 단두대로 보내야 한다던가, 혹은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에는 추호도 달라진 입장을 보이진 않지만, 이전 회와 달리, 함께 자리를 한 김구라나, 유시민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패널로서의 편안함을 보여줬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어떤 장면에서는 유시민 전 장관에 비해 전원책 변호사가 속을 후련하게 해준다. 예의 정치인들 모조리 단두대 행이라는 그의 소신에서부터 비롯된 정치 전반에 대한 회의가, 여야를 막론하고 가차없는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에 발을 걸치거나, 발을 걸치고 싶어하는 강용석, 이준석에 비해 한결 그의 보수적 입장이 명료해진다.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핵안보'를 내세우는 극강 보수이지만, 현실 정치 환경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그의 입장들이, 여러 정치적 사안들에 냉정한 평론적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썰전>에는 제격인 것이다. 

심지어 야당이 보이는 일련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보이는 그대로의 '순수한 의도'(?)를 강조하는 유시민 전 장관의 소박한, 그래서 때로는 순진하거나 고지식해 보이는 입장에 비해, 대놓고 문재인 당, 안철수 당이라며, 정곡을 찌르고 가는 전원책 변호사의 언급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보는 이의 속을 시원하게 한다. 

한 회만에 달라진 <썰전>, 프레임을 넘어선 정치 평론이 가능케 된 것은?
심지어 두 번 째 출연에서 전원책 변호사는 자신이 첫 시간 '좌파'라고 까지 하며 심하게 몰아붙였던 김구라에게 사과를 하며, 속옷까지 파란 색 운운하며, '좌파' 프레임을 내건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첫 회 등장에서 부터 무시무시하게 '좌파' 프레임에 '종북' 프레임을 내걸지 못해 목소리를 높이던 전원책 변호사와, 단 한 회만에 자신의 속옷까지 내걸며 자신이 '온건한' 사람이며, 보수적이지만, '친여'는 아니라는 입장으로 선회한 듯 보이게 만든 건 무엇일까? 그저 전원책이 방송을 아는 사람이라서 혹은 매력적인 보수라서 라는 평가론 부족하다. 

첫 회 곧 김정은 나쁜 놈이라고 외칠 것같고, 진짜로 단두대에 올라설 듯 서슬이 퍼랬던 전원책 변호사와, 같은 단두대 얘기를 계면쩍은 미소와 함께 농담으로 얼버무리고, 유시민 장관과 함께 '만담'을 하듯, 농협 이사장 선거에서 부터, 정치자금법에 이르기 까지 입을 모을 수 있는 전원책 변호사는 같은 사람이다. 결국 같은 사람이지만, 그 같은 사람이 어떤 상황에 놓여져 있는 가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즉 첫 회 등장한 전원책 변호사는 그가 출연했던 종편 정치 토론 프로그램에서의 전원책 변호사이다. 그래서 그가 출연했던 종편 프로그램에서 요구해왔듯이, 그는 선명하게, 극렬하게 자신이 가진 '보수적' 입장의 날을 한껏 벼린다. 김구라나, 유시민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의 입장만 소리 높여 외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가지고서는 '썰전'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한 회 출연해서 입장만 밝히는 건 몰라도, 끼리끼리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서 누가 더 목소리가 높은가, 선명한가를 두고 경쟁이라도 하듯 하는 종편에서는 몰라도, 매주 새롭게 등장하는 각종 사안들에 대해 '썰전'을 하는 방식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달라질 밖에. 



결국 같은 전원책 변호사이지만, 첫 회의 그와, 두번 째 출연한 그가 마치 전혀 다른 사람같듯이 보이는 건, 결국, '프레임'에 맞춘 테이프 돌리듯한 종편 방송 환경에 대한 '확인' 과정이 되는 것이다. 결국은 가장 선명한 보수론자 전원책 변호사도 유시민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맞장구도 치고, 혹시나 앞으로 자신의 입장으로 인해 곤란한 점에 대해 미리 사과도 할 수 있는 그런 '보수'의 이례적인 모습은, 결국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양극화가,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것은, 함께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전원책 변호사의 변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누구보다 얄밉게 상대방을 무시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던 유시민 전 장관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신사적으로 일관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과, 이미 이철희 강용석 두 패널의 대립을 경험한 김구라의 노회한 중립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건데, 제 아무리 중뿔난 전원책이기로서니, 혼자서 내내 고함을 질러댈 순 없는 것이다. 

단 한 회 만에 보수 논객에서 썰전의 매력적인 패널로 변신한 전원책 변호사를 보면, 막가파 여당 바라기 강용성을 데이터 뱅크 강용석으로, 결국은 더 민주당원이 되어버린 이철희를 객관적인 평론가로 벼려왔던 <썰전>의 내공이 돋보인다. 가장 선명한 색깔인 줄 알았던 유시민과 전원책이 모여, 색다른 케미스트리를 선보이며, 말 그대로 정치를 비롯한 각종 사안에 대해 속시원히 풀어주는 '썰전'은 그래서 모처럼 다시 기대되는 정치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그저 또 하나의 정치 프로그램이 아니라, '막말 보수 논객도 달라졌어요'가 보여준 '소통'의 가능성이다. 


by meditator 2016. 1. 22. 1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