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말 9시 55분 sbs를 방영되는 <세번 결혼하는 여자>는 이제는 거장이라 칭송받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이다. 하지만, 천하의 김수현 작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동시간대 방영되는 mbc의 <황금 무지개>에 밀려 한 자리 수의 시청률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청률만이 아니다. 애초에 캐스팅 과정에서 여러 배우가 번복되는 해프닝성 화제와 달리, 오히려 방영되고 있는 이즈음에서는 연기를 하는 배우는 물론, 내용조차도 화제의 중심에 오르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시청률이 높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김상중, 도지원, 조민기 등의 열연에 힘입은, 극적인 스토리 탓이 클 것이다. 그에 반해, 지금까지 <세번 결혼하는 여자>는 이미 재혼을 한 은수(이지아 분)에, 일편단심 친구 안광모(조한선 분)를 외사랑하는 현수(엄지원 분)의 스토리가 별다른 기복 없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은수의 아이를 둘러싼 실랑이요, 큰 사건이라야 광모의 결혼식장 도피 행각 정도? 그 마저도 은수와 현수는 자신의 자존심을 손상 받지 않으려 쿨하게 자신의 속으로 삼켜낸다. 하지만, 이 쿨하고 자존심 센 여자들에게 더 이상 자존의 울타리 속에 숨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미친 놈’이라 구박했지만 오매불망 놓지 못했던 광모가 드디어 현수를 여자로 보기 시작했으며, 아이조차 포기한 채 한 재혼의 남편이 바람을 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사진; 텐아시아)


현수와 은수는 자매간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은 천양지차다. 일찍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포기할 줄 모르던 은수는 시어머니를 보고 기함을 해 말리던 첫 결혼을 당차게 해치워버렸다. 하지만, 그 과단성있는 결심의 마무리는 이혼이었다. 그리고 다시, 명망있는 시댁에, 외아들이 버겁지 않냐는 언니의 말을 사사건건 나한테는 좋은 소리를 안해준다는 시기로만 잡아채 버리고는 아이도 나몰라라 뛰어든 결혼에서 다시 남편의 외도와, 그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거짓말을 목도하고야 만다. 그렇다고 현수가 나은 건 아니다. 일찍이 철들기 시작해서부터 마음에 품은 친구지만, 그 친구가 자신의 친구와 결혼을 올리려 할 때까지 그가 자신을 여자로 보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묵묵히 자신의 사랑을 혼자 삼켜왔다. 덕분에, 광모를 여전히 사랑하는 자신과, 광모를 놓지 못하는 절친과, 이제 드디어 자신을 여자로 보기 시작한 광모 사이에 우정은 지저분한 행보가 예상될 뿐이다.


현수든, 은수든 배울만큼 배우고 보기엔 야무지고, 어디 가서 남한테 한 소리 듣지 않을 정도로 똑똑해 보이는 여자들이다. 심지어 사리분별마저 똑부러진다. 그런데, 이제와 은수가 내가 잘못산 것이 아닐까 라고 자신에게 되묻고 되물을 정도로 삶의 딜레마에 빠져들게 된다. 두 사람 만이 아니다. <세번 결혼하는 여자>에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또 한 사람의 야무진 여성이 나온다. 은수의 전 남편 태원(송창의 분)과 결혼한 채린(손여은 분)이다. 이 여성 역시 참 야무지다. 시누이 태희(김정난 분)가 일찍이 간파했듯 만만치가 않다. 태원이 못하겠다고 나온 결혼을 시어머니의 실력 행사(?)를 통해 이루어 낼 만큼 추진력이 있다. ‘굴러들어 온 돌’이란 시누이의 평가에 참지 못하며, 자신의 맘에 들지 않은 일하는 아줌마 정도는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 생각하고, 식구들이 하나같이 물고 뜯고 빠는 전처 소생 슬기(김지영 분)에 대한 자신의 교육관을 피력하는데 거침이 없다.


이렇게 <세번 결혼하는 여자>에 등장하는 이른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 야무지고 똑똑하다. 스스로 자신이 선택한 삶에 늘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려고 한다. 그런데, 드라마가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이 똑똑한 여성들이 ‘헛똑똑이’ 같다. 그토록 늘 자신의 삶에 주체적이려고 애썼던 은수가 궁극적으로 맞부닥치는 삶의 현실은 남편의 외도요, 그것을 덮으려 거짓에 거짓을 더하는 남편의 비겁함이다. 그런가하면, 현수는 자신을 여자로 보아주지 않는다며 감내해온 첫사랑의 남자는 여자라면 사죽을 못쓰는 바람둥이다. 그런데도 그 남자를 놓지 못한다. 자신의 동생에게 아이를 버리고 갔다며 상처를 팍팍 주면서, 정작, 자신은 결혼식장에서 도망치는 천하의 불한당을 마음에서 지우지 못한다. 채린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선택이란 이유만으로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태원과 결혼하고, 그와의 결혼 생활을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 못하는 것에 안절부절 못한다.


(사진; tv리포트)


마치 70넘은 작가는 그렇게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나 잘 났소 해봐야, 다들 헤맹이 빠진 헛똑똑이들이라고. 아니 그렇게 자존감을 내세워 보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여자들이 마주치는 현실은 그녀의 엄마 세대가 살아낸 그 시절과 다르지 않다고 냉소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시댁의 갖은 학대를 이겨내지 못한 은수가 재혼을 통해 마주한 현실은, 시댁은 지극히 이상적이지만, 그조차도 결국은 또 다른 결박이요, 첫 결혼에서는 결코 꿈도 꾸지 못했던 불성실한 남편이다. 은수가 비난하듯, 자신을 여자로 보아주지 않는다 숨겨온 사랑 때문에, 절친과의 연적이 될 지저분한 인간 관계의 늪에 빠져들 뿐이다. 그녀들이 자신의 자존을 위해 선택한 삶의 기회들이 또 다른 함정으로 그녀들을 빠뜨릴 뿐이다. 결국 ‘최선의 선택’이란 말이 유명무실해진다. 아니 작가는 애초에 삶에 있어서 최선의 선택이란 없다는 것을 냉소적으로 단정짓거나, 자신의 선택이란 함정에 빠져 삶의 우연성을 감지하지 못하는 요즘 여자들의 청맹과니짓을 비웃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14회에 이르기 까지 김수현 작가는 자신의 의지로 헤쳐나가려 했던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릅 보여주기에 진력한다. 그러기에 드라마는 지긋이 그녀들의 삶을 쏘아보는 작가의 시선처럼 냉랭하고 관찰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남편의 외도와 그에 이은 거짓말을 알게 된 은수와, 이제 와 자신을 여자로 보아주기 시작한 첫사랑을 마주한 현수는 더 이상 그녀들이 자신을 철벽처럼 쌓아왔던 자존의 벽 속에 숨어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런 그녀들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는 70넘은 김수현 작가의 몫이다.


과연 그녀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자신의 자존을 보존할 삶의 선택을 할 것인가, 그녀의 엄마들과 다르지 않은 두루뭉수리한 행복의 선택을 할 것인가는 결국 김수현 작가가 바라본 여성의 행복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것이 궁금하다. 

by meditator 2013. 12. 23. 1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