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 방영된 <빅맨>에서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직장의 신>에서 마케팅분 만년 과장이던 고정도 과장으로 출연했던 김기천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직장의 신>에서는 만년 을의 신세였던 고정도 과장은, 이번에는 한 단계 더 내려가, 현성 유통에 납품하는 하청업체 사장 역이었다. 현성 유통 건물 로비에서 그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영업 팀장 최유재(김지훈 분)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HACCP(한국 식품 안전 관리 인증)도 땄는데 왜 납품이 거절되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최유재는 단호하다. 그런 최유재를 지켜보던 강지혁(강지환 분)은 한 마디 한다. '먹었네, 뭘 먹었어' 

그리고 최유재를 사장실로 부른 강지환은 최유재의 뇌물 수수를 추궁한다. 그 옆에서 재무팀장 구덕규(권해효 분)는 결코 최유재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극구 편을 들지만, 정작 최유재는 가슴에 손을 제대로 대지도 못한 채 버벅거리다 자기 측근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비리를 저질렀음을 고백한다. 
잠시후 부리나케 납품업체 사장을 찾아나온 그, 직원들의 월급을 주려고 제 2금융권이라도 알아보라며 전화를 하던 납품업체 사장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따라나온 강지혁도 함께.

<직장의 신>의 고정도 과장의 등장으로, 이 장면은 더더욱 을들의 각성을 일깨웠던 <직장의 신>이 오버랩된다. 그러고 보니, 현성 유통에 강지혁이 등장한 이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파업을 하던 노조원들과, 그들을 때려부수려고 나타난 구사대가 함께 죽은 비정규직 직원의 초상을 트럭에 그리고 반목하던 노조원들과 관리직들은 파업의 종료되었다는 소식에 손을 맞잡고 기뻐한다. 사장이던 강지혁이 직접 장례식장을 찾아가고, 제일 앞서 구사대와 싸운 결과이다. 분명 강지혁은 사장이지만, 시장판에서 뼈가 굵은 거리의 남자 강지혁이 현성 유통에 들어와 한 일은 <직장의 신> 미스 김이 일으킨 변화와 비슷한 궤적을 가진다. 



<빅맨>은 현성 그룹의 외아들 강동석(최다니엘)의 심장에 무리가 생기면서, 그의 심장 역할을 하기 위해 급하게 구해진 강지혁이 현성의 아들로 둔갑하면서 벌어지는 재벌가의 속사정을 까발리는 드라마이다. 하지만 <빅맨>에서 재벌가의 비리와 부도덕이라는 이야기의 한 축과 함께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빅맨>에서 흘러가는 스토리의 관찰자 시점으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소미라(이다희 분)이다. 강동석을 사랑하는 여인으로 강지혁의 호흡기를 스스로 떼려했었지만, 뜻하지 않게 강지혁의 비서 역할을 하면서 점점 변화되어 가는 사람이다. 현성 그룹의 FB팀장으로, 그룹의 수족이 되어 회장님의 갓김치까지 구해다 바치는 마름 역할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을 발판으로 강동석의 사랑을 쟁취하고자 했던 야심을 가졌던 그녀이지만, 강지혁의 옆에 있으면서 조금씩 '양심'이란 것이 일깨워진다. 회장님의 수발만 들면 그뿐이었던 그녀이지만, 사고치는 강지혁을 수습하면서 자꾸 양심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그뿐이라는, 도상호(한상진 분)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던 그녀였지만, 강지혁을 지켜보며 울리기 시작한 양심의 소리는 급기야는 강동석의 결혼 신청까지 미루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물론 거기에는 강동석과 강지혁, 소미라의 사랑이라는 삼각 관계도 개입되지만, 그것만이 아닌, 갑의 세계를 내재화했던 하지만 결국은 을이었던 소미라의 자기 자각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 소미라의 자각은, 최윤재의 자각과도 일맥상통한다. 납품업체 사장에게 고개를 수그리며 최윤재는 말한다. '그간 제가 갑질에 너무 익숙해 졌었나 봅니다'라고. 실제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명확하지 않은 갑을 관계, 즉 을이면서 동시에 갑이 되는 이중적 존재들의 탈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빅맨>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갑질을 하던 을들의 자각이다. 그런 을들의 자각에 매개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갑이 된 을' 하지만 갑임에도 불구하고 을의 정체성을 지닌 강지혁이다. 그런 강지혁의 등장으로, 결국은 을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래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갑질'을 하던 을들이 점차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을의 자각은, 또 다른 을과 합류하며, 인간미 넘치는 상황을 만든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장례식이 그것이요, 시장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낸 자로끄 패션쇼가 그것이다. 을이 을로써 자각하여, 을과 함께 함으로써, 한결 그들이 사는 세상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간다는 걸, <빅맨>은 4회에 이를 동안 꾸준히 주장한다. 그리고 아마도, 시장 사람들 속에서 그들을 가족으로 만들었던 강지혁이듯이, 앞으로의 강지혁의 행보에서, 이 변화된 을들의 존재는 새로운 힘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그리고 아직은 가장 강력하게 강지혁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을, 하지만 현성 그룹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 비리와 부도덕을 가장 직시하는 그의 변화도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4. 5. 14. 0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