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자 <비밀> 안도훈(배수빈 분) 이 맘에 들지 않는 조민혁은(지성 분) 그를 만날 때마다 이기죽거린다. 더구나, 그가 자신의 k그룹에 변호사로 들어오자, 그 강도는 더욱 세진다. 조민혁은 안도훈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린다. 정의를 내세우던 니가 영혼을 구걸해 들어온 k그룹은 결국 내꺼라고. 하지만 안도훈도 호락호락지는 않다. 노는 시간조차 아껴 여기까지 올라온 나와 당신은 다르다. 당신은 아버지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이 결정적 차이다. 라고.


<비밀>이란 드라마에서 비밀이 시작된 계기는 교통사고이다. 하지만, 교통사고라는 외면적 계기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바로 안도훈의 사시 합격이었다. 이제는 금의환양만을 앞둔 그에게 교통사고는 청천벽력이다. 그리고 그 하늘이 무너지는 걸 봉합한 건, 사랑하는 이의 희생이었다. 
무능력한 아버지, 식당 일등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 갖은 알바를 전전하는 사랑하는 이, 그리고 무너져가는 동네 빵집을 지키는 그녀의 아버지. 이 모든 사람들의 희망은 안도훈의 입신양명에 달려있었다. 검사가 된 후에도 여전히 생선 몇 상자를 두고 싸움을 하는 그의 부모처럼, 좀처럼 나아지지 않던 그의 집안 환경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사람들이 그에게 바란 것은 그저 '부'만이 아니었다. 정의로운 검사가 되어 '없는'사람들 편에 서달라는 막연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검사가 된 안도훈에게 닥친 현실은 어떤가. 
사랑하는 유정(황정음 분)을 감옥으로 보내는 희생을 치르면서 쟁취한 검사직은, 그에게 '정의'보다는 '줄타기'를 가르쳤다. 그는 비록 뺑소니를 칠 만큼 부도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것을 무마할 정도로 정의롭고 싶었지만, 그의 정의는 법원에서 길을 잃는다. 그가 정의로우면 정의로울 수록, 그에게 돌아오는 건 동료 검사들의 비웃움을 넘어 또 한번의 부도덕한 검사라는 낙인이다. 
그리고 그는 쉽게 '정의'를 버린다. 처음 사랑하던 사람을 희생시킨 것을 시작으로, 그는 쉽게 자신의 도덕적 영혼을 판다. 그런 그를 버티는 건, 도덕적 순수성이나 정의로운 세계관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고생해서 이 자리까지 왔는데 라는 자기 희생의 논리와 그에 대한 보상 심리 밖에 없다. 그러기에 더 좋은 '자리'를 위해서는 자기를 제외한 타인의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안도훈을 조민혁은 우습게 본다. 니가 그래봐야, 결국 니가 일하는 건 나를 위해서라고. 유정이를 희생시키기 위해 유정이의 아버지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가는 안도훈을 지켜보며, 그리고 자신의 애인을 죽인 사람이 유정이라 생각하여, 그녀에게 온갖 가혹행위를 일삼던 조민혁이 어느새, 집착적 스토커를 넘어 연민으로 다가가며, 시청자들은 그에게 빠져든다. '조토커, 조스패치'라는 그의 별명들은, 말이 스토커지, 사랑스러움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다. 물론 <비밀>이란 드라마에서 모든 불행의 시작은 안도훈이요, 그의 거침없는 변신과 배신은 분명 지탄의 대상이지만, 아버지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조민혁과 그를 배태한 k그룹이란 권력에 드라마를 보는 우리들은 쉽게 녹녹해진다. 
부도덕한 사고에도 불구하고 정의로우려고 했던 안도훈을 몰아부친 것도, 지금껏 유정이를 그리고 혹시나 사고가 들킬까 노심초사한 안도훈의 곁에 들러붙어 집착을 했던 힘도 결국은 조민혁, 그리고 그를 키운 재벌이라는 사실을 드라마를 보는 우리는 쉽게 잊는다. 그리고 어느새 조민혁과 유정이가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쉽게 잊는 것처럼. 

하나의 변수가 더 있다. 바로 조민혁의 약혼자 신세연이다. 
4선 국회의원의 딸이자, 그 힘으로 이제는 호텔의 지분조차 획득한 정략 결혼 상대자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정치적 영향력을 배경으로, 조민혁이란 재벌과 결혼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녀가 운영하는 갤러리를 통해 k그룹의 비자금 형성에 적극 개입할 정도로, k그룹과의 커넥션은 긴밀하지만, 오히려 그녀를 방해하는 건, 조민혁을 어릴 적부터 의지하고 좋아했던 마음이다. 조민혁의 불성실한 약혼자로써의 태도에 분노하는 그녀가 쉽게 위로를 받는 건, 안도훈이지만, 그건 단지 그의 저돌적 태도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재벌의 그늘에서 그의 힘에 기생하여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왔던, 둘의 태생적 동일성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돈을 제외한 많은 것들을 가진 그들은 그저 가진 게 돈밖에 없는 누군가를 향해 쉽게 동맹군이 될 수 있다. 

그렇게 k그룹을 둘러싸고, 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가, 이합집산을 할 동안, 유정이와 그의 아버지는, 그저 그들의 농간 속에서 가진 것을 다 잃고 갈대처럼 흔들리고 흔들릴 것이다. 



얼마전 모 그룹의 회장 형제가 자신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엄청난 회사의 자금을 잘못된 정보의 선물 거래등을 통해 날려버린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건 뒤에는 어이없게도 회장의 절대적 신임을 받은 일인이 있었다고 한다. 회사의 정상적 시스템을 통한 투자가 아니라, 일개인의 '신기'에 일임한 투기가,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재계 몇 위의, 가장 첨단의 기술을 다루는 기업에서 벌어졌다. 안도훈의 대사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버지 밖에 없던 무능력한 아들, 뉴스를 통해 마주한 가진 게 돈밖에 없던 아들의 말로이다.
그런가하면, 이제는 잠잠해지고 있는 검찰 총장의 혼외 자식 논란도 있다. 입 가진 사람들은 다 누구나, 말 안듣는 총장 찍어내기라는 풍설을 거들었다. 정의롭고 싶었으나, 그 자신이 비리 검사가 되어 쫓겨나는 안도훈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무수한 재벌가와 정치권의 결혼 인맥은 예를 들자니 입이 아플 정도이다. 심지어 그들은 정치의 계절이 지나가면 이혼과 소송도 불사한다. 

유정이의 희생, 그리고 안도훈의 배신, 조민혁의 집착이라는 인간사의 이야기에 몰두하게 만들며 야곰야곰, 가장 우리 사회의 정형화된 계급의 전형들이 드러나고 있다. 
조민혁은 가진 게 돈 밖에 없고, 신세연은 그녀가 얻어가진 지분을 통해 권능을 행사하고, 안도훈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사실은 입신양명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가진게 없는, 알량한 가진 것 조차 빼앗긴 유정이는 양심껏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며 자신을 농락한 자에게 빛을 갚느라 애쓴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드라마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어쩌면 이 드라마의 진짜 비밀은, 유정이가 희생했던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회를 거듭할 수록 속속드러나는, 사회적 군상들의 적나라한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쉽게 유정이와 조민혁의 사랑을 응원할 수 만은 없다. 




by meditator 2013. 10. 18. 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