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라는 용어가 있다. 한국 가요 역사상 50년이 넘는 가수 활동을 하며 2000 곡이 넘는 곡을 발표하신 가수 이미자 씨의 그 '미자'가 아니다. 일제 시대의 잔재로 그 시대 흔했던 '자'자 돌림의 '미찌꼬'의 미자인 듯 보이는 이 용어는 '인터넷 공간'에서 미성년자의 줄임말이다. 지난 시대의 어느 여성의 이름같지만 실은 아직 '법적'으로 한 몫을 할 수 없는 한계적 인간형, 미자, 아니 미성년자. 하지만 공교롭게도 올 한 해 가장 화제가 되었던 케이블 tvn과 종편 jtbc가 한 해를 마감하며 방영하는 금토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이 바로 이 '미자'들이다.  




도깨비의 신부, 지은탁
성년이 되지 않은 여배우들의 활약 때문일까? 올 한 해 찾아보면 '미성년'이 여주인공으로 등장한 드라마들이 꽤 눈에 띤다. 김소현이 활약했던 tvn의 <싸우자 귀신아>, kbs2의 <페이지 터너>가 그랬고,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구르미 그린 달빛>의 김유정이 분했던 홍라온이 그랬다. <페이지 터너>야 일종의 '학교' 시리즈물로 그렇자 치고, <구르미 그린 달빛>은 시대극이라 그렇다 치지만, 어쨌든 돌아보면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미성년자' 주인공들이 꽤 많이, 그것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에 등장했던 것이다. 허긴 일찌기 김혜수는 15세의 나이에 <사모곡(1987)>의 여주인공이었으니 그걸 새삼스럽다 할 순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성년자 배우들의 활약과 따로 떼어놓을 순 없지만, <구르미 그린 달빛> 방영 중 불편하다는 반응이 등장했듯이 아직 미성년인 여주인공을 청소년물이 아닌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설정'한 지점에 대해서는 분명 한번쯤은 짚어보아야 할 지점이다.

그런 가운데 그런 짚어보아야 할 지점에 대한 방점을 찍은 드라마가 있다. 바로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tvn의 <도깨비>이다. <도깨비>는 900년을 넘게 살아온 도깨비 김신(공유 분)과, 그 도깨비가 죽을 운명의 모녀를 구해주며 '신부'의 연을 맺게 된 도깨비 신부 18세 지은탁의 사랑을 주된 서사로 삼고 있다. 

드라마 속 고등학생 지은탁은 '사고무친'의 존재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이모네 집에 얹혀 살지만, 말이 얹혀사는 거지, 법적 보호라는 이유만으로 아니 사실은 엄마가 남긴 보험금의 볼모로 갖은 구박과 학대를 받았다. 그런 그녀에게 나타난 운명의 도깨비는 그런 억압적 조건의 그녀를 구해 안락한 생활 환경과 사랑을 준다. 

드라마는 900 살이 넘은 도깨비와 그의 신부로 점지된 지은탁을 삼십대 중반의 아저씨와 소녀의 관계로 드러낸다. 지은탁은 첫 만남부터 도깨비 김신을 그의 900살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라 호칭한다. 그리고 도깨비 역시 지은탁을 첫사랑 소녀로 대접한다. 드라마는 미성년이라는 지은탁의 존재론적 한계를 이미 성년인 배우 김고은을 통해 피해간다. 하지만, 이것 또한 김고은이 <은교>라는 영화를 통해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절묘한 피해가기 내지는 연상 작용의 포석처럼 보여진다. 

드라마는 '도깨비'를 둘러싼 설화적 설정과 삶과 죽음 사이에 선 도깨비 신부 지은탁을 둘러싼 전설적 서사를 배경으로 삼으며, 하지만 결국은 보호받아야 할 소녀 지은탁과 그녀를 보호하는 도깨비와 그의 측근 저승사자(이동욱 분), 집사 유덕화(육성재 분)의 보호와 사랑을 주된 스토리로 이어간다. 사회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사고무친'의 소녀는 '사랑'과 '운명'을 매개로 만난 아저씨에게 '보호'를 받는다는 이 '기막힌' 환타지. 

현실에서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한 소녀들은 거리의 아저씨들에게서 뜻하지 않은 보호라는 명목의 범죄에 빠져들지만, 드라마 속 '사랑'의 세계에서 아저씨들은 소녀를 가로막는 가난과 재난, 심지어 사고에서까지 '슈퍼맨'이 되어 그녀를 보호한다. 그들은 번연한 서른 중반의 아저씨들이지만 그녀가 첫사랑이듯이 돈으로 소녀들을 유혹하는 거리의 아저씨들과 달리, 사랑에 있어서는 고등학생보다도 더 순진하고 천진하되, 재력과 능력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신적 경계'에 있으니 그 어느 누가 감히 이 사고무친의 소녀를 돌보고 사랑하는 그에게 '미성년자 보호법'을 들어 '부적절한 관계'라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더욱이 대번에 500만 빌려주세요라거나, 사랑해요라고 서슴없이 고백하는 이 당돌한 소녀 앞에. 그렇게 드라마는 '전설'과 '설화' 그리고 사랑의 환타지를 빌어, 현실을 윤색한다. 



솔로몬을 자처한 소녀, 고서연
tvn이 소녀와 아저씨의 만남을 통해 '김은숙'이라는 스타 작가의 힘을 빌어 '사랑'으로 2016년의 연말을 덮히려고 할 때, 올 한 해 <뉴스룸>을 통해 공신력있는 언론으로 우뚝 선 jtbc가 선택한 것은 일본의 사회파 작가 미야베 마유키 원작의 학원 추리 소설 <솔로몬의 위증>이다. 하지만 일본 원작이 무색하게 무소불위의 사학, 그리고 거기에 '부역'하는 어른들, 그런 어른들의 '보호'아래 입시 교육에 내몰린 채 '학교 폭력'을 외면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는 너무도 친근하다. 

그 '친근한' 부조리한 교육 현실에서, 일본 원작의 드라마는 당돌하게도 학교에서 벌어진 한 학생의 죽음을 '교내 재판'이라는 해법을 통해 풀어가고자 한다. 하지만 재판에 도달하는 길은 쉽지 않음을 크리스마스를 앞둔 3,4회의 드라마는 그려낸다. 

생각지도 않은 한지훈(장동윤 분)의 등장으로 당혹스러워 한 것도 잠시 학생들 사이에서 남신으로 불리는 그의 인기에 힘입어 순탄하게 서명 작업을 마친 아이들은 교장 앞에 당당히 500부가 넘긴 교내 재판 동의서를 내보이며 재판을 허가받는다. 하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의 짧은 시간, 협조적이기는 커녕 적대적인 범인으로 추정되는 최우혁(백철민 분)과 그를 고발한 이주리(신세휘 분)의 태도로 재판은 그 시작부터 난항을 겪는다. 

하지만 드라마는 재판을 하게 되기 까지, 그리고 그 과정과정에서 보이는 고서연(김은수 분)의 태도에 주목한다. 처음에 그저 다른 학생들처럼 최우혁에 의한 이소우에 대한 학교 폭력에 눈을 질끈 감았던 서연, 하지만 그저 늘상 그랬듯이 지나갈 것 같던 그 외면한 폭력이 이소우의 죽음으로 이어지자 서연은 '너희는 공부만 하면 돼'라는 어른들의 말에 의문을 표하기 시작한다. 이제 겨울 방학이 지나면 고 3이라는 지상 최대의 엄정한 과제, 하지만 이소우의 죽음을 목격한 그 순간부터 서연은 공부에만 매진한다며 진실을 외면해 왔던 자신의 태도가 결국 죽음의 방조자가 된 것이 아닌가 반성한다. 그런 서연에게 또 하나의 계기가 되어준 것은 주리의 고발장, 교장 선생님에게 그리고 아빠가 형사인 서연에게 배달된 두 장의 고발장. 하지만 이제 곧 고 3이니 알아보겠다는 아빠의 말에 주춤했던 서연, 하지만 결국 초롱이가 교통 사고를 당하고, 주리가 실어증에 빠지자 자신의 방관에 깊게 반성을 한다. 

그래서 재판을 하겠다고 나서고, 고발장을 나 몰라라 했다는 친구들의 힐난에 솔직하게 자신의 외면을 고백한다. 그리고, 이제 학교 재판과 그 과정에서 벌어진 최우혁 할머니의 사고 앞에 서연은 우혁도 주리도 모두가 서로의 탓을 할 때 물벼락까지 맞으며 사죄를 한다. 미성년자라는 존재로 3자로 밀어제친 어른들 앞에서 당장하게 미성년이라도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던 서연은, 나아가 문제의 주도적 해결만이 아니라, 사건을 방관했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자임하고 나섬으로써 '어른'을 앞선다. 


두 미성년자의 선택, 스스로 도깨비의 신부라 자청하고 사랑을 선언한 지은탁과 학내에서 벌어진 죽음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고서연. 같은 미성년자이지만 두 사람의 선택을 둘러싼 두 드라마의 서사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그 어떤 성인 여성보다 당돌하게 말도 잘하고 자신의 선택에 똑부러지지만, 안타깝게도 그 지은탁의 존재는 두 보호자연하는 '사랑'하는 아저씨들이 없다면 무색하다. 안타깝게도 드라마는 사회적 문제를 사랑으로 희석 혹은 희화화하고 있다. 진정성있는 혹은 운명적 사랑이라 주장하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그에 반해 때로는 자신들의 문제에 끼어드는 한지훈에게 자존심상해하고, 홀로 눈물짓지만 진실 앞에 물러서지 않으려 하고, 방관자의 부끄러움에 진솔한 고서연의 행보는 지은탁보다 어쩌면 훨씬 더 성숙할 수 있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촛불 집회에서 당당하게 그 목소리를 높이며 등장한 청소년들, 한편에서는 우리 사회의 투표 등을 통해 드러나는 민심의 보수성을 우려하며 정치적 연령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할 만큼 그들의 똑부러짐은 어른들을 부끄럽게 한다. 어느덧 드라마 속 청소년들은 사랑도 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재판'으로 풀어낼 만큼 당차졌다. 이 사랑과 이성의 두 청소년들의 행보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12%가 넘는 <도깨비>와 0.97%의 <솔로몬의 위증>의 하늘과 땅같은 시청률의 차이가 의미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지 생각이 깊어지는 연말이다. 

by meditator 2016. 12. 25. 1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