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여왕>을 보러 찾아간 날 그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도심 한 복판 극장가에서 세 명 남짓 영화관을 채웠다. 8월 25일 개봉한 <범죄의 여왕>은 27일 기준으로 가까스로 2만 명의 관객을 넘었다.(22,082명 영진위)




이 초라한 성적표의 이유는 여러가지일 것이다. 우선은 이 영화가 상영되는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듯 '광화문 시네마' 제작, (주) 콘텐츠 판다의 배급이라는 배급과 제작의 불리함을 우선 들 수 밖에 없다. 한국 영화 제작의 독점이 심화되고, 이제 그 독점의 해법을 또 다른 외국 독점 자본에게서 찾을 수 밖에 없다는 자조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수평적 무브먼트'를 지향하는 영화 창작 집단 '광화문 시네마'의 시도는 건강하지만, 아직은 그 목소리의 울림은 역부족이다. 또한 new가 설립한 콘텐츠 유통 전문 회사로 독립 영화 배급에 뛰어든 (주)콘텐츠 판다의 배급도 역시나 한계적이다. 거기에 아직까지도 대중적이지 않은 '블랙 코미디'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는 '신선한(?)' 장르도 제한적이다. 스타는 커녕 '엄마'가 주인공으로 범죄자를 잡는다니, 애초에 젊은 층들은 외면하고, 나이든 층들은 낯설어 할 내용이기 십상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범죄의 여왕>이 흥행하기 힘든 이유를 대자면 손가락을 줄줄이 접어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색다른 한국 영화를 선택하고 싶다면 <범죄의 여왕>를 권하고 싶다.

독특한 분위기의 고시촌 스릴러
고시생 아들을 둔 지방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아줌마, 미용실이라지만 동네 장사의 한계성을 돌파하기 위해 아줌마가 요즘 주업으로 삼고 있는 건 '야매 보톡스'이다. '야매' 장사까지 해서 돈을 버는 아줌마에게 고시생 아들의 전갈, 수도요금이 120만원이 나왔으니 돈을 부치라는 것! 아들은 엄마의 '돈'이 필요해서 보낸 전갈이지만, 동네 아줌마들 상대로 '입'이 부르트도록 '보톡스'를 팔아 돈을 버는 엄마는, 그 돈 120만원을 호락호락 보내줄 수 없다. 아들의 수도세를 해결하기 위해 상경한 엄마, 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영화의 시작과 더불어 윗층의 소음에 참다못해 뛰쳐 올라간 고시생의 비명으로 부터 사건은 이미 예고된다. 하지만, 저마다 문을 닫아 걸고 괴괴한 정적만이 맴도는 고시원, 그 철저한 '개인주의'의 무덤 속 사람들은 그 사건마저 불통의 관례로 접어 넘긴다. 하지만, 이미 미용실에서부터 동네 오지랖으로 한 '껀'을 했던 엄마는 예의 그 오지랖으로 아들의 수도요금을 '사건화' 시킨다. 



영화의 서사는 막상 다 보고 뒤돌아 서서 생각해 보면 전형적이다. 굳이 영화화 할 것도 없이, 드라마 스페셜의 한 편 정도로도 그닥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그렇지 않다. 뻔히 다음이 어떻게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영화가 마무리되는 지점까지, 흥미를 놓치지 않게 된다. 

그 흥미를 추동하는 첫 번째 요인을 든다면 <범죄의 여왕>이 가지는 독특한 '미장센'을 들 수 있다. 이형곤 감독의 <구미호 가족(2006)>같은 기괴함은 아니지만, 박찬욱 감독의 화려한 퇴폐미도 아니지만, 절망의 늪같은 분위기를 흠씬 자아내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스릴러'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고시원'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범죄의 여왕>의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분명 흑백 화면이 아닌데도, 흑백보다 더 암울한 분위기의 고시원에 한껏 화려한 색채의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엄마 양미경씨, 그녀의 존재 자체가 이미, 고시원이란 공간에 파열음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색채의 대비만큼, 엄마는 지금까지 '고시원'이 암묵적으로 지녀왔던 '개인주의'적 규율에 파열음을 일으킨다. 

오지랖 엄마, 소통으로 사건을 해결하다 
고시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돈이나 내고 내려가라는 아들의 말에, '엄마가~'를 연발하며 며칠의 말미를 얻은 엄마는 고시원 관리실을 시작으로 과잉 부과된 것이 분명한 수도 요금의 조사를 시작한다. 엄마의 야심찬 수사에도 불구하고 수도 요금 과적은 매번 장애를 만나게 되고, 야무지게 현장을 급습한 창고에서는 엉뚱하게도 합격탕의 실체만 만나게 된 채, 경찰행이 되고 만다. 

엄마의 수사, 그 과정의 포인트는 바로 오랜 미용실 경영으로 단련된, 만나는 사람 그 누구라도 대번에 '아는 사람'을 만들고 보는 '오지랖'이다. 관리실 형님들에게는 맞고 쑤셔박히는 신세지만, 고시생들에게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나운 들짐승' 같은 '개태'를 '엄마 해줄까'라며 구워삼는가 하면, 동네 바보 취급당하는 만년 고시생을 '덕구야~'라며 부르며 사람 취급해주는 것도, 히키코모리 게이머 진숙과 소통하는 것도 엄마 특유의 너스레이다. 

그리고 바로 <범죄의 여왕>속 엄마가 '여왕'인 이유는, 고시촌 그 저마다의 섬 속에서, 각자 자신의 입신양명만을 향해 질주를 벌이는 무리들 속에서, 튕겨져 나온 '루저'들의 집합체 같은 고시원이라는 연옥에서, 엄마 특유의 너스레와 붙임성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점으로 이어, 그 '네트워크'로 사건 해결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영화는 그저 엄마의 아줌마 특유의 너스레나 오지랖을 영화적 도구 혹은 그저 아줌마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개인'들만의 섬으로 터져나갈 것 같은 고시촌에서, 결국엔 '살인 사건'까지 해결할 수 있는 '소통'을 꼭 집어 낸다. 



또한 영화는 '입신양명'의 극한값인 '고시'라는 블랙홀에 휘말린 인간 군상과, 그 '고시'를 위해 영업정지를 당하며 보톡스 시술을 해가며 그것을 지탱하는 엄마를 통해 부도덕한 '성공' 사회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살인'에 귀결되는 십수생과 그런 부도덕한 뒷바라지를 창피해 하면서도, 해준 것이 없으면 조용히라도 있으라며 닥달하는 아들의 뻔뻔함을 통해 '부도덕'이 체화된 사회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영화는 그런 '부도덕' 혹은 '성공'의 늪같은 고시촌이란 배경을 통해 한국 사회를 '냉소'하면서도,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엄마 양미경을 통해, 그럼에도 '인간적인' 가능성을 열어보인다. 시골에서 보톡스나 해주며 영업 정지나 맞는 엄마를 부끄러워하면서도, 돈이나 내고 내려가라는 아들의 외면에, 마지막 순간 그래도 엄마를 구하러 와줬으니 되었다며 퉁치자는 양미경씨의 낙천성은, 그간 한국의 모성상을 고스란히 이어가는 듯 하면서도 변주된 흔쾌한 넉넉함이다. 모성의 고생을 신파조로 읇조리지도 않고, 그 삶의 노동성을 배경으로 터득된 '오지랖'으로 사건을 해결해 가는 엄마 양미경은 근자에 보기드문 건강한 모성성이다. 이 모성성의 건강함 덕분에, 한껏 기괴했던 고시촌 스릴러의 칙칙함은 쾌활한 블랙 코미디로 전화된다. 물론 거기에는 박지영이라는 배우의 독보적 매력이 전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엄마의 조력자로 양아치 개태에, 동네 바보 취급당하는 만년 고시생 덕구와, 히키코모리 진숙을 배열하며, 인간의 가치를 반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예전 시골 공동체가 건재할 때는 동네 모자른 사람들도 저마다의 몫을 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했던가, 마치 <범죄의 영화>는 2016년 '인간 관계'가 사라진 도시 속에 시골 엄마가 재건해낸 저마다의 자리와 몫이 있는 '인간 네트워크'와도 같다. 


by meditator 2016. 8. 29. 0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