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 없는 피아노 지망생에서, 친구의 뒷바라지로 시작하여, 이제 서한 예술 재단의 기획실장에 오르기 까지 오혜원(김희애 분)이 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친구 서영우(김혜은 분)에게 뺨을 맞는 건 예사요, 그녀와 사귀었던 남자 강준형(박혁권 분)을 자신의 남편으로 맞아들이는 일도 할 수 있었고, 회장님의 집에 마작 게임에 초대 받기까지 오혜원이 한 일은 그저 예술 재단의 눈에 보이는 그런 일들만 있었던 것은 분명 아닐터이다. 


그러던 그녀가 자신의 삶에 모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녀 얼굴의 상처를 보고서도 차를 가져다 달라는 냉정한 남편에게 가진 것을 다 버리고서라도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고 싶은 속내를 언뜻 비춘다. 회장님의 여자 심부름으로 만난 국밥집 아주머니의 맥주 세례에 몸둘 바를 몰라한다. 예전의 그녀라면, 서영우에게 따귀를 맞은 그날처럼 한숨 한번 내쉬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일상의 그녀로 돌아가련만 이제 오혜원은 그럴 수 없다. 자꾸만 자신이 초라해 진다. 그럴 듯해 보이던 자신의 삶이 부끄럽다. 

물론 시시각각으로 오혜원의 주변이 그녀를 견딜 수 없도록 만들어 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예전의 그녀라면, 오히려 그것을 자신이 보다 더 유리해지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로 여겼을 터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다.바로 선재(유아인 분)때문이다. 

<밀회>에서 오혜원의 자각은 선재와의 만남과 궤를 같이 한다. 선재와 교감하고, 그를 마음에 두기 시작하면서, 오혜원은 더 이상, 자신을 기만하며 살아갈 수 없다. 


인간에게 사랑이란 감정은 무얼 의미할까? 
가장 원초적으로는 자신의 유전자를 재생산하고픈 본능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런 재생산에 대한 욕구는, 결국, 삶의 에너지이다.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그것을 더 확산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욕구,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이 된다. 영화<은교>에서 70대의 노작가는 은교를 사랑하게 되면서, 20대 못지 않은 젊음을 발산한다. 30대의 제자가 감히 내려가지 못하고 주저하던 벼랑을 눈 깜짝할 사이에 내려가, 은교를 발 동동거리게 하던 거울을 구한다. 70대의 노인도 펄펄 뛰게 만드는 사랑이건대, 하물며 마흔의 여자임예랴.

중년이란 나이는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안정기에 들어선 나이이겠지만, 중년에 들어선 사람들이 그럼에도 상실감을 어쩔 수 없어 하는 이유는, 더 이상 그들에게 젊은 시절과 같은 사랑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실감이다. 하지만, 이제 중년이 되어서도 젊고 팽팽한 그들에게, 사랑은 금단의 열매와도 같다.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 동산이라는 낙원에서 쫓겨나듯, 오혜원은 거부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거부할 수 없는 선재를 마음에 두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에덴 동산이라 여겼던 서한 예술 재단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다. 중년이라 가둬두었던 삶의 열정적 에너지에 자신을 맡기게 된다. 

사랑은 그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에 눈뜨면서, 개울 물에 비춰진 자신을 바라보듯,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과연 자신이 그 사람을 사랑할 만한 사람인가 반문한다. 오혜원도 마찬가지다. 선재와의 모텔 행을 앞에 두고, 홀로 돌아와 목욕을 하며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눈물 짓던 그녀는 자신의 몸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직 순수한 청년 선재 앞에 내보이기에는 자신의 나이든 몸만큼이나 부끄러운 자신의 삶.

다시 영화<은교>에서, 노작가는 자신이 은교를 사랑하게 된 것을 깨닫고 거울 앞에 서서 나신이 되어 자신의 몸을 샅샅이 바라본다. 그는, 정신적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지만, 그리고 육체적 능력으로는 모자랄 것 없지만, 그럼에도 늙어가는 육신에 괴로워한다. 마찬가지다. 오혜원도, 젊은 선재 앞에, 중년의 육신과, 어쩌면 그 보다도 더 노회한 자신의 삶에 딜레마를 느낄 것이다. 사회적 통념과, 윤리를 넘어선, 보다 본능적인 사랑하는 이로써의 부끄러움이다. 

오혜원을 연기하는 배우 김희애는 자신의 몸에 부끄러움을 느끼기에는 여전히 너무 아름다운 딜레마를 지니지만, 그녀만큼 우아하면서, 모멸감을 느끼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제대로 연기하는 배우도 드물다. 드라마 <장희빈>에서 어색했던 유아인은 모처럼 제 몸에 맡는 배역을 맡은 듯하다.  배우만이 아니다. 드라마의 제목처럼, 늘 두 주인공을 훔쳐보는 듯한 시선을 유지하는 장면은, 보는 이로하여금, 관음의 아찔한 감정을 오가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젊은이와의 사랑, 그와 함께 그녀를 위기로 몰아넣는 그녀 주변의 상황을 급박하게 이끌어내는 정성주 작가의 내공은 역시 대단하다. 영화 <색계>의 파멸을 항해가는 위험한 사랑에 매력을 느꼈듯, <밀회>에 빠져들게 만든다. 


by meditator 2014. 4. 8. 0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