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타임>의 기적을 이뤘던 권석장 사단이 <파스타>의 서숙향 작가와 재회해 만든 <미스코리아>가 12월 19일로 방영 2회를 맞이했다. <골든 타임>을 굳이 기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의학 드라마로는 드물게(이제는 메디컬 탑팀으로 인해 드물게도 아니지만) 한 자리수 시청률로 시작하여 고전을 거듭하다가, 세간에 최인혁 교수 신드롬을 이끌며 창대한 종영을 한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미스코리아>는 마치 전작의 족적을 따르듯, 다시 한 자리수의 시청률로 테이프를 끊고 있다. 그렇다면, <미스코리아> 역시 골든 타임의 기적을 성취할 수 있을까?


<미스코리아>의 시대적 공간은 온국민이 불황의 늪에 빠져들던 1997년 IMF이후이다. 남자 주인공인 김형준(이선균 분)은 친구들과 함께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화장품 사업이 빚에 시달리다 못해 조폭들이 사업장을 뒤집어 엎고, 보디가드랍시고 따라붙는 처지에 놓여있다. 여주인공인 오지영(이연희 분)도 다르지 않다. 가장 아름다운 엘리베이터걸이지만, 가장 말 안듣는 엘리베이터 걸로 해직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의 시대적 정서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이제는 '어른'이 된 형준과 지영의 '첫사랑' 시절을 회고하며 현실로 오가는 방식은 심지어 <응답하라>와 동일하다. 동네 남자 아이들의 '담배질'의 원흉이었던 담배 가게 아가씨 지영과 꺼먹머리 목용탕집 범생이 형준의 그 시절은 충분히 향수를 자아낼 만 하다. 학교 교정을 나풀거리며 걸어가던 지영을 향해 날아가던 형준의 노란 종이 비행기가, 이제 다시 엘리베이터 걸인 지영의 어깨 위로 나리는 수미쌍관의 인연은 절묘하다.  


하지만, 형준과 지영이 만들어내는 <응답하라>는 우리를 주말마다 나정이의 남편은 누구일까 라며 낚는 그 시리즈와는 다르다. 마치 <응답하라> 다크 버전과도 같다. IMF에도 까닥없이 찬란한 청춘의 빛을 발산하던 <응답하라>의 주인공들과 달리, 1997년에 어른이 이미 되어버린 형준과 지영은, IMF의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아낸다.  생날라리 같던 <응답하라 1997>의 시원(정은지 분)이 자신이 썼던 팬픽으로 대학을 갈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지영은 엘리베이터 걸인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첫사랑인 형준에게 들킨 채 '그때 공부 좀 할 걸'이라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처지일 뿐이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청춘의 환타지를 다루었다면, <미스코리아>는 <응답하라>가 말하지 않은 청춘의 이면을 다루고 있다. 첫사랑 소녀를 통해 담배를 배웠던 그 소년은 그렇게 동화처럼  멋진 청춘이 되지 못했다. 그건 소녀도 마찬가지다 라고. <미스코리아>는 시작한다. 

그래서 <미스코리아>는 흡인력이 있다. 상암동의 근사한 주상복합 건물에 의사, 공무원, 대기업 직원 등 그 직위만으로도 혀가 내둘러지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된 주인공들이 주는 해피엔딩의 기쁨 속에서 빚어지는 위화감과 다르게 , <미스코리아>의 형준과 지영의 현실태는 마치 2013년의 찌질한 청춘의 그것과 더 닮았다. 거기에 끼어든 조폭에서마저도 밀려난 정선생(이성민 분)까지 덧붙여지면 궁상이 극에 이른다. 하지만, 권석장과 서숙향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늘 한끝이 처지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가져오는 현실적 공감대가, 그리고 처짐에도 나가떨어지지 않는 묘한 끈기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지애를 불러 일으킨다. 재밌건 재밌지 않건 보아주겠어! 라는 마음이 생기게 만드는 것이다. 아니다, 넘어져도 얼굴에 미처 닦지 못한 눈물 자욱이 있어도 씩씩하게 다시 뛰어가는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어진달까. 

아직 <미스코리아>는 애매모호하다. <파스타>에서 좋은 요리사가 되는 것과, 미스코리아가 되는 것은 질감이 다르다. 좋은 요리사는 공감할 만한, 손에 잡히는 그 무엇이지만, 궁지에 몰린 형준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지영이 선택한 미스코리아는 '신기루'이다. 더구나, 이제 2013년에는 공중파에서는 중계도 해주지 않는 지나간 시대의 흔적일 뿐이다. 그런데 그 신기루를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들이 어쩐지 허황하다. 그 허황함을 견디기 위해 마애리 원장이 끊임없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미스코리아'를 만들어 줄게, 세상의 모든 남자가 너를 볼 거야 라고 하지만, 동물원에서 활짝 날개를 편 공작을 보듯, 어쩐지 처연하다. 그래서 서울대를 나온 먹물 형준과, 실직 위기에 몰린 엘리베이터 걸 지영이 택한 마지막 카드가 '미스코리아'라는 것이 더더욱 '신기루' 같고, 짠하다. 덕분에, 벼랑 끝에 몰린 그들의 마지막 선택임에도, '신기루'같은 미스코리아가 그들의 행보를 허공의 헷짓처럼 보이게도 만든다. 분명 개연성이 있음에도, 어쩐지 '훵~'하다. 하지만, 이 잡을 수 없는 신기루에 대한 감상 마저도 권석장, 서숙향의 의도일 지 모른다고 지레 생각해 보게도 된다. 마치 로맨스 타운의 쓰지 못한 채 묵혀둘 수 밖에 없었던 복권처럼. 

<미스코리아>가 <골든 타임>의 기적을 다시 이루어 내기에는 상대작 <별에서 온 남자>의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우월함이 돋보인다. 여주인공 전지현의 독보적 매력도 강하고. 하지만, <미스코리아>가 기적을 이루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 2013년의 마지막을 보내며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위로는 남겨줄 것은 분명해 보인다. 


by meditator 2013. 12. 20. 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