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대처 전 총리가 사망하자, 탄광 노조는 죽음을 애도하는 대신 다음과 같은 성명을 냈었다.

‘대처 이후 계속된 보수당 정부의 정책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대처는 자유로운 시장의 상징이었지만 이들이 취한 이익은 소수에게만 돌아갔다. 그가 땅에 묻히며 대처의 정책들도 함께 사라지길 기대할 뿐이다’

얼마나 대처리즘의 영국 내에서 탄광 노동자로서의 팍팍한 삶의 지난했으면 그의 죽음 앞에서조차 형식적 애도조차 할 수 없었을까. 하지만, 역사는 흔히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한숨에는 무심한 채 평가의 실적 셈하기에만 급급하다. 아니, 역사까지 갈 것도 없다.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민영화’등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늘 셈법은 ‘효율’과 ‘논리’인 경우가 많다.


다른 종편의 일방적인 정부측 의견 선전과 달리, 12월 26일 <썰전>은 그나마 서로 격돌되는 상반된 입장을 제시하는데 있어 편견이 없다고 하는 프로그램이다. 항공기의 예를 들어, 합리적 경쟁과 효율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온 강용석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이철희도 그 논리에 의거한 답을 제시할 수 밖에 없다. 국민 세금 낭비라는 선명한 사안에, ‘사대강 혈세 낭비’라는 방패를 들어 막았지만, 과도한 비용 낭비라는 점에선 어찔할 수 없는 공감대가 작동하고 있었다. 산간벽지의 군소 노선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당장 죽어 넘어질 것 같은 철도 공사의 방만함은 부각되었지만, ‘민영화’와 유사한 과정을 통해 추려질 인력의 향배에 대해서는 간과하거나 당연시해버린다. 그저 몇 푼의 돈이 새어나가는데 쩔쩔 맨다. 돈을 받기 위해서는 채무자의 팔 다리 몇 개 부러뜨리는 건 예사로 여겨야 하는 조폭처럼.

언제나 경영 합리화의 성배는 직원 감축으로 이어지고 많은 사람들은 거리로 나서야 한다. 영국 탄광 노조의 파업을 배경으로 했던 <빌리 엘리어트>에서 거리에 서성이던 그 노조원들이 바로 얼마 후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아무도 함께 조금 참으며 잘 살아 보자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다리를 끊어 내서라도 우리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세상에, 언제나 거리로 나뒹굴어 떨어지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일 수 밖에 없다. 사람이 제일 우선이라며 사람을 내모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사진; tv리포트)


그렇게 누구도 사람의 사람다운 가치에 대해 논하지 않는 중에, <미스코리아>는 처연하게 삶의 벼랑에서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첫 회 공장을 때려 부수는 조폭들에 휩싸인 형준과, 달걀을 꿀떡 삼키고 윗사람에게 모욕을 당하던 지영보다, 이제 미스 제주 감귤 대회에서 1등을 하겠다고 고군분투하는 형준과 지영에게서 ‘루저’로서의 내음이 더욱 진하게 올라온다. 그들이 무엇을 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사사건건 그들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무엇을 해볼 여지가 적은 사람들임을 자각한다. 그러니 두 사람은, 그리고 그들의 주변 사람들은 더 벼랑 끝으로 물러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형준은 첫사랑 지영을 접대를 위해 호텔로 데리고 가고, 지영은 다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참으며 웃음을 잃지 않고 무대 위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지영의 의상비를 위해 동료는 매장에 걸린 옷을 벗기고, 형준의 회사 동료들은 조폭 목의 목걸이을 낚아챈다.


할아버지가 몰래 마시기 위해 물통에 담아 두었던 소주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지만, 그 소주를 물인줄 알고 마시며 홀짝이다, 얼굴이 벌개져서 지영에게 입을 맞추던 순순하던 소년 형준은 사라지고, 그녀를 망해가는 자기 사업의 제물로 바치고서야 눈물 한 방울을 흘리는 무능력한 젊은 사업가 형준이 있을 뿐이다. 흔히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첫 사랑의 추억이 아련한 것과 달리, 지영과 형준의 첫 입맞춤이 다른 의미에서 아찔한 이유가 그것이다. 세월이 그들에게서 빼앗은 것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공부 못해서 무식해도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고 하던 지영의 말이, 서울대를 나와도 돈을 못벌게 되도 외면하지 말라던 형준의 말이, 빈말처럼 던졌던 그들의 대사가 고스란히 현실이 되어 그들을 짓누르고, 사랑 앞에 비겁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미스코리아>의 사랑은 현실에 발을 깊게 담고 있다.


늘 합리적인 양, 사실은 절대 합리적이지 않으며, 합리적인 것을 논하면 할수록, 가진 자의 손을 들어주기가 십상인 세상에서, 새우등 터지면서도, 아직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미스코리아>는 들려주려는 듯하다. 당연히 그들의 행보는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고, 찌질하고 무모할 뿐이다. 그래서 <별에서 온 남자>가 더 재미있어도, 어딘가 허술한 듯한 <미스코리아>를 놓지 못한다. 

by meditator 2013. 12. 27. 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