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팔이>의 후속으로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하 마을)>이 첫 선을 보였다. 20%를 육박하던 전작의 후광은 아랑곳없이 첫 회를 선보인 <마을>은 단번에 <그녀는 예뻤다>, <객주>에 뒤를 이은 꼴찌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환영받지 못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인 <마을>은 아마도 앞으로도 '로코',와 '사극'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익숙한 장르를 뛰어넘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점, 공중파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미스터리 스릴러 <마을>, 그것이 이 드라마의 묘미이자, 장점이다. 




마을의 비밀, 장소가 주인공이 된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은 흡사 니콜 키드먼이 출연했던 2003년의 영화 <도그빌>을 연상케 한다. 로키 산맥의 평화로운 마을, 거기에 의문의 여인 '니콜 키드먼'이 등장한다. 마을은 아름다운 그녀로 인해 술렁이기 시작하고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러나 정작 이 영화의 제목이 '도그빌'인 것처럼, 영화가 그려내고자 한 것은 여주인공 니콜 키드먼이 아니라, 그녀를 통해 드러나는 '도그빌'이란 마을의 숨겨진 모습이다. 

그렇게 영화 <도그빌>처럼 <마을-아치아라의 비밀>도 우리말이지만, 생소한 '아치아라'라는 지명의 마을을 내세운다. 어린 시절 온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신마저도 '죽은 이'로 만든 '아치아라'로 향하는 젊은 여교사 한소윤(문근영 분)으로 드라마는 시작된다. 

하지만 비오는 날 연쇄 살인범의 사건 소식을 들으며, 호두를 문지르는 소리에 쫓겨 거리를 달리는 한소윤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그녀가 도착한 아치아라가 그곳 사람들 말처럼 '가족같은' 곳이 아님을 감지시킨다. 그리고 장면은 바뀌어 이제는 마을의 유지가 된 마을 출신의 지역구 도의원이자, 한소윤이 일하게 된 해원 재단의 주인인 서창권(정성모 분)과 윤지숙(신은경 분)의 내연녀를 둘러싼 갈등이 보여진다. 윤지숙은 자신의 딸이 몰래 지켜보는 가운데 서창권의 내연녀랑 머리끄댕이를 잡고 '육박전'을 벌인 것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해원 중학교 원어민 영어 교사가 된 한소윤, 하지만 '작은 연못'이라는 말과는 다르게 커다란 호수를 품은 마을은 온통 수상한 모습들 투성이다. 그녀의 방 맞은 편에 '신당'을 연상케 하는 이웃집 여인에서 부터, 그녀를 따라다니는 의문의 남자, 그리고 그런 수상한 모습 끝에 그녀는 폭우가 내린 얼마 후 따라나선 사생대회에서 범죄라고는 없었던 이 마을의 유일한 오점, 사라진 여선생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부르는 듯 모습을 드러낸 시체의 앙상한 모습에 혼이 나가고, 아이들이 붙인 '시체샘'이라는 별명에 혼란에 빠진 한소윤을 한편으로 한채, 첫 회 드라마가 드러낸 것은, 시체의 발견과 함께 반응을 보이는 마을 사람들의 수상한 모습이다. 마치 모두가 공범자인 양, 그 시체와 관련된 범행을 아는 양, 석연치 않은 모습을 보이는 마을 사람들의 면면에서, <마을>의 실질적 주인공은 한소윤이 아니라, 어쩌면 아치아라라는 마을 그 자체일 지도 모른다는 심증을 흘리며 드라마는 열린다. 거기에 미술 교사의 '아치아라에 빠져 그 누구도 이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말은 그 심증에 의혹을 더한다. 



서로 다른 결의 추리가 주는 재미
앞서 니콜 키드먼의 <도그빌>을 예를 들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김은희-장항준 콤비의 <위기일발 풍년 빌라>가 '저주받은 역작'으로 불리워지듯이 생소한 장르이다. 하지만, 미드, 특히나 영드에서는 이렇게 장소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가 가장 인기있는 장르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닥터 후>로 인기를 끌었던 데이비드 터넌트가 형사로 등장한 영국에서는 인기리에 방영되어 시즌 2가 제작된 <브로드 처치(broadchurch)> 역시 조용한 마을에서 발생한 어린 아이의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입소문을 끌고 있는 < 포티튜드(fortitude)> 역시 북극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다룬다. <왓 리메인즈(whatremains)> 역시 한 건물과 거기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이다. 

이렇게 '장소'가 주인공이 된 미스터리 스릴러들은 <마을>처럼 하나의 사건, 주로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숨겨진 마을의 모습이 드러나고, 거기에 그저 평범하고 착한 것처럼 보여지는 인간 군상의 숨겨진 비인간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물론 그 전개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그 비인간성의 폭로의 매개가 '종교'가 될 수도 있고, '바이러스'가 될 수도 있고, '이기적인 육친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든 평화로움과 이웃이라는 집단애에 숨겨진 인간의 또 다른 이면을 폭로하는 한에서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렇게 인간의 숨겨진 이면을 그린다는 점에서 벌써, 폭로와 반성보다는 환타지와 복수에 익숙한 우리나라 시청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장르라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 <마을>은 더더욱 시도되고, 웰 메이드의 좋은 선례로 남겨져야 할 '사명'이 있는 드라마가 된다. 기왕에, 막장식의 몇몇 재벌 치정극으로 재미를 본 sbs가 이쯤에선 그간의 오명을 씻을 조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 마을에서 벌어진 여느 장소를 배경으로 한 미스테리 스릴러의 공식을 순조롭게 따라나선 <마을>은 하지만 이미 첫 회 '마을의 진실'을 향한 추리의 갈래는 다양하게 갈라지며 볼 재미를 선사한다. 

단적으로 발견된 시체는 누구일까? 드라마 초반 복병처럼 등장한 윤지숙과 젊은 여선생의 육박전에서 보여지듯 한소윤의 방에서 사라진 여선생일까? 왜 마을 사람들은 모두 공범자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과연 '시체샘'이라 불리게 된 법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한소윤의 정체는 무엇일까? 마을, 그것도 아치아라에 사로잡혀 귀신이 된 채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미술 교사 말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마을>은 미스터리 스릴러에서 심령극까지 다양한 갈래의 상상력을 추동한다. 과연 첫 회만으로 사고를 풍성하게 만든 ,마을>이 시청자들의 뒷통수를 '갈기며' 추리의 묘미를 더해갈 것인지, 그것이 바로 장소 스릴러 <마을>의 관건이 된다. 
by meditator 2015. 10. 8. 1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