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던가, 더구나 그것이 자기와 다른 이성의 속일 때야 더더욱 알 길이 없으니, 마치 자기와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이성의 속내를 알기 위해 청춘들은 이제 텔레비젼 앞으로 모여든다. 연애 코칭 프로그램 <마녀 사냥>이 인기를 끌자, 우후죽순 그와 비슷한 컨셉의 프로그램 들이 등장하고, 그 중 <로맨스가 더 필요해>가 걸출한 입담을 가진 패널들의 포진으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극히 사적인 연애를, 결국은 또 하나의 사적인 잣대로 재단하는 <로맨스가 더 필요해>가 과연 정말 바람직한 연애 코칭 프로그램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5월 21일 방영된 <로맨스가 더 필요해>에서는 역시나 <마녀 사냥>처럼 자신의 연애를 상담하는 시청자의 사례가 등장했다. 7년간 남자 혼자 여자를 짝사랑하다 뒤늦게 사랑의 결실을 맺은 남녀, 하지만 막상 연인이 되어보니, 이 남자 친절하다는 표현을 넘어선 집착이라고 보여지는 행동들이 여자에게는 거슬리기 시작했다. 회식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건 혼자 밤길에 위험해서 그렇다 쳐도, 여자의 sns까지 속속들이 들여다 보며 과거 그녀가 사귀었던 남자들을 샅샅이 조사하는 행태는 과연 이 사람이 정상일까 란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런 여성의 질문에 대해 패널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는데 대체적을 남성 패널과 여성 패널의 의견이 갈린다. 
남성들 중 조세호는 마치 상담 사례를 보낸 여성의 상대방 남성이라도 되는 양 얼굴이 붉어지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그럴 수 밖에 없는 남성의 입장을 대변한다. 봉만대 감독은 한 술 더 떠서 '집착도 사랑이다'라는 정의를 내세우며 그의 집착이 당연히 연애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행동이라 편을 든다. 다른 남성 패널들도, 그 정도는, 혹은 남성의 집착은 있을 수 있는, 혹은 남성에게는 연애 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행동이라는 반응이었다.

(사진; 마이데일리)

반면에, 라미란을 비롯한 여성 패널의 의견은 그와 궤를 달리한다. 물론 mc 박지윤은 자신의 사례를 들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경우라는 생각을 피력하면서도, 여성이 불편을 느낄 정도라면 결혼 상대로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의견을 전한다. 그에 반해 라미란은 한결 완강하다. 그것은 사랑으로 덮어주기에는 지나친 집착이며, 그것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용인한다면, 결혼을 해서도 그녀는 그의 의견에 무조건 맞춰주고 살아야 하는 처지에 빠질 것이라 단언한다. 

물론 <로맨스가 더 필요해>에서도 이른바 전문가의 의견이 있다. 좋은 연애 연구소 소장 김지윤은 그런 남성의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짚고 넘어갔다. 하지만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고, 마치 자신이 그 남성이라도 된 양 목소리를 높이는 조세호 등의 공세에, 전문가의 의견은 힘을 잃는다.

결국 마치 여성편 남성편이 되어 의견이 갈린 듯한 이 사례는 패널들의 투표로 5;5 라는 동률의 결과로 마무리 되었다. 물론 몇 가지 사례의 첨언이 있었지만, 마치 그런 남성의 이상 행동은 위험하다기 보다, 사랑에 못이긴 집착으로, 하지만 좀 지나치긴 하다는 식으로 마무리 되었다. 과연, 이 사례가 여성과 남성의 입장 차이로, 투표로 결정될 그런 사안이었을까?

이렇게 물에 물탄 듯 마무리 된 이 남성의 사례를 바로 한 주 전에 방영된 < 매직 아이>에서는 바로 요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데이트 폭력의 한 사례로 정의내린다. 남녀간의 사이에서 바로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지 않는 이러한 '집착'이 때로는 신체적 상해나 심각하게는 살인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것을 짚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데이트 폭력의 징조로 보여지는 남성의 이상 집착에 대해, <로맨스가 더 필요해>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한다. 특히, 남성 패널들은 마치 그런 것이 남자들이라면 한번씩은 겪는 것인 것마냥 당연시하기도 한다. 라미란이 정색을 하고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김지윤이 문제 행동이라 짚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그저 여자들의 하나의 의견처럼만 수렴되는 식이다. 

만약에 <마녀 사냥>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사례에 대한 접근은 흥미 위주로 들어가되, 진단과 처방에 있어서는, 개인의 사생활이라는 지점을 똑바로 짚었을 듯하다. 성시경이나, 허지웅이 남자라고 해서, 자신들의 습성이나,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다고 해서, 그런 남성을 편들지 않을 것이며, 이른바 전문가연 하는 곽정은은 외국의 진짜 전문가와 통계까지 들먹이며 제 아무리 연애라 해도 상대방의 개인적 프라이버시를 침범하는 행동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마무리를 분명하게 지어주었을 것이다. 

<로맨스가 더 필요해>와 <마녀 사냥>이 비슷한 연애 코칭 프로그램처럼 보여지지만, 그렇다고 <마녀 사냥> 역시 객관적인 연애 코칭을 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도 없지만, <로맨스가 더 필요해>처럼 분명히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지점에 대해서 조차, 남성들의 관성이나 관습에 맞춰 두둔하는 식의 관성적 태도를 견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두 프로그램의 차이는 확연해 진다. <로맨스가 더 필요해>는 사안의 객관적인 접근은 물론, 독립적 존재로서의 개인에 근거한 중립적 태도보다는, 이번 사례처럼 집착의 정도가 지나친 경우에는 조세호의 입장이, 시댁과의 관계에서는 박지윤의 경험이, 혹은 감독 봉만대의 시각이그 사안의 객관적 접근을 넘어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것은 엄밀하게 연애 코칭이 아니라, 동네 아줌마의 사적 경험에 근거한 훈수 두기 수준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가진 아줌마를 만나면 이런 훈수를, 저 아줌마를 만나면 저런 훈수를 두는 이현령 비현령의 결과가 되고 만다. 

물론 <로맨스가 더 필요해>건, <마녀 사냥>이건, 애초에 패널 개인의 사적 경험에 근거한 누군가의 연애 코칭이라는 점에서, 그 한계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이라는 공중의 전파를 이용하는 프로그램인 한에서, 적어도 최소한의 사회적 시각은 견지해야 하지 않을까. 제 아무리 케이블이라지만, 찜질방 동네 아줌마 수준이어서는 곤란하다. 아니다. 요즘 동네 찜질방 아줌마들도 라미란씨처럼 단호하게 말할 것이다. 그런 남자는 위험하다고. 자신들의 찌질함과, 사회적 문제 행동이 구분되어 지지 않는 지극히 사적인 연애 코칭은, 그래서 더 위험하다. 


by meditator 2014. 5. 22. 0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