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한 장르라고 명명할 수는 없지만, '아이'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드라마들이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들을 '아동극'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중심에 아이들이 있고, 그들의 사건이 극의 중심을 이루지만, 결국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아이들의 세계를 감싸고 있는 어른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의 이야기인 척 하지만, 기실은, 그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어른들의 이야기, 들어주기를 바라는 대상도, 역시나 어른들이니, '아동극'인척 하는 '성인물'이라고 하면 정확한 장르명이 될까? 그리고 8월 28일 방영된 드라마 스페셜 <그 형제의 여름, 1992 부산 갈매기 댄스 대회>가 바로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른들의 세상을 그리는 한 편의 '우화'이다. 




'잔혹 동화'로 시작하여, 어른의 '휴머니즘'을 그리다.
이야기의 시작은 '잔혹 동화'이다. 서태지의 음악이 세상을 지배하던 1992년 부산에 사는 초딩 4학년 최동길(최권수 분)이. 서태지에게 자신을 거둬달라고 간곡한 편지를 보내는 그는 자신이 밥 하고 빨래도 잘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엄마가 없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한 술 더 떠서, 지금 같이 사는 사람이 아버지도 아니고, 동생도 아니라고 하니, 이렇게 불쌍한 아이가!

엄마도 없고, 의붓 아버지와 산다는 불쌍한 아이 최동길, 엄마가 없어 밥하고 빨래를 한다던 최동길, 하지만, 정작 그네 집의 모든 가사 일은 의붓 아버지라는 작은 트럭을 몰며 납품업을 하는 최국진(유오성 분)씨 몫이다. 게다가 그의 말로는 동길이를 낳은 첫 번째 아내는 동길이를 낳다 죽었고, 동길이와 피부색이 다른 동길이 동생 영길이를 낳은 미군이었던 흑인 아내는 미국으로 돌아갔다는데, 하여튼 그에게는 피부색이 다른 두 명의 아이들이 있다. 

거기서 문제는 이제 막 반항기 들어선 최동길, 말로는 서태지가 너무 좋아서 그를 흠모하여 그를 곁에서 보필하고 싶다지만, 사실은 피부색이 다른, 거기다 자기와 피도 안섞인 동생이 부끄럽고, 심지어 그런 동생을 자기 보다도 더 알뜰살뜰하게 보살피는 -자기는 야쿠르트 사주면서 동생은 초코 우유사주는 식의- 아버지가 야속한 그저 '아이'의 마음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야속함은 동생을 외면하고, 어떻게든 집을 떠나려는 삐뚤어진 동심으로 자라나게 되는데.

<그 형제의 여름>을 이끄는 사건은 서태지를 흠모하여 가출 사건을 도모하는 최동길의 해프닝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력을 빚는 형제애. 하지만, 그런 좌충우돌하는 최동길의 사건들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동네 미장원 아가씨에게 '금사빠'인 여전히 순진한 면모를 지니면서도, 잔뜩 날이 서있는 동길이도, 피부색이 달라 상처를 받는 영길이도, 심지어 동길이 만큼 철딱서니없는 하숙생 현철(조정치 분)까지 넉넉하게 품어 안는 아버지 최국진씨란 어른의 모습이다. 

영길이 동길의 동생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상처받고, 이제 미장원 아가씨가 세번 째 최국진씨 부인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에 부닥친 동길은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출'을 감행하려 한다. 하지만, 뜻밖에 상황에서 마주친 진실, 정작 아버지 최국진씨가 알뜰살뜰하게 보살피던 동생 영길이 아버지의 친아들이 아니었으며, 어머니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과, 심지어 자신과 피부색이 다른 동생을 버린 채 도망가버렸고, 그렇게 아버지가 다른 두 아이를 아버지 최국진씨는 아무런 내색도 없이, 심지어 자신과 피하나 섞이지 않은 영길이 혹시라도 상처를 받을까 자신의 친아들보다 더 아끼며 길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거기에 동길의 가출을 돕다 열이나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 형바라기 동생까지. 결국 동길의 가출 사건은 무위로 돌아간다. 아니 그저 '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스스로 가족의 일원이 되어, 아버지와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집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잔혹 동화'라고 했지만,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잔뜩 볼멘 모습으로 아버지와 동생을 원망하는 동길이 등장했을 때부터 이 이야기는 동길이의 잔혹 동화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최국진의 '휴머니티'가 담긴 '미담'일 것이라는 예감을 할 것이다. 그렇게, 한 바탕 소동극처럼 진행된 동길의 가출 사건은 예상을 멀리 벗어나지 않은 채 그려진다. 하지만, 이 '뻔한' <그 형제의 여름>은 타 드라마의 뻔한 막장극에서 시달린 시청자들의 마음에 안식을 준다. 어떻게든 튕겨져 나가려는 동길이의 발버둥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국진이라는 넓은 어른의 품 안에 노니는 물고기 같아 미소가 지어지고, 피부색이 다른 두 아이, 심지어 자신의 피가 섞이지도 않은 아이를 자신의 아들로 상처주지 않고 키우려는 아버지 최국진의 '동화'같은 이야기에, '서로 다름에 목소리를 높이는 세상'에 시달린 마음이 안식을 얻는 듯하다. 심지어 아버지를 한 탕의 대상으로 여기며 찾아든 미장원 숙자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까지도, '동화'처럼 아름답다. 자신을 등쳐먹으려는 숙자의 머리끄댕이를 잡고 경찰서로 향하는 대신, 자신의 속사정을 이야기하며, 뱃속의 아기의 아버지와 잘 살아보려는 최국진씨의 씬은 자신과 피가 섞이지 않은 영길이를 보담는 그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뻔한 아이의 일탈로 시작하여, 역시나 결말이 예상되는 아버지의 동화같은 '미담'으로 끝을 맺었지만,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여 서로 삿대질하다 못해 '없애버리'려는 세상에선, 그 동화가 새삼스럽게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최국진같은 어른들의 세상이라면, 제 아무리 아이들이 튕겨져 나가려 한다 해도, 그 어른들의 손바닥일 거라는 깨달음까지 준다. 그런 '동화'같은 이야기는, 유오성을 비롯한 최권수 등 아역들의 호연, 심지어 조정치까지 제 몫을 다하는 조화로운 연기와, 물 흐르듯 공감가는 이야기들의 연결과, 1992년을 배경으로 한 시대적 상황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모처럼 훈훈하게 마음을 덥혀준 빼어난 단막극 한편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이런 '동화'같은 이야기는 이런 '단막극'이 아니고서는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시절이기에, <그 형제의 여름>이 더욱 맛깔나다. 
by meditator 2015. 8. 29. 1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