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모든 드라마들은 의학 드라마면 병원에서 연애하기, 법률 드라마면 법원에서 연애하기 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자, 거기에 하나의 기록이 더 덧붙이게 됐다. 국회에서 연애하기. sbs의 수목 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은 노골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서로 다른 당적을 가진 국회의원 두 사람의 연애사를 드라마의 주제로 삼겠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같은 당도 아니고, 그것도 철천지 원수와도 같은 정치적 색깔이 다른 상대당의 국회의원 두 사람이 연애를 한다니! 이게 말이 될까?

 

이에 대해 <내 연애의 모든 것>이 첫 방영된 같은 날 <썰전>에서 전직 국회의원이었던 강용석 의원은 입장이 적대적인 두 당의 국회의원이 연애를 하는 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고 언급을 하고 있다.

강용석 의원은 국회의원 외유(홍준표 의원이 말하기를 국회의원 활동의 꽃이라고 했단다, 외유를)를 들어, 실제 그 나라에 가서 하는 일이란게, 그 나라 사람을 만나면 외교, 그게 아니라 그 나라 실정을 보고자 한다면 외유인데, 대부분의 외유는 선심성 여행일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남아돌아 충분히 남녀 사이에 로맨스가 싹틀 마음의 여유가 생길 수도 있다고 구체적 예를 들어서 까지 설명하고 있다.

굳이 예를 들어서 그렇지, 결국 저분들 '영감님(드라마 속 국회의원은 나이가 많건 적건 여자건 남자건 꼬박꼬박 영감님이다)의 실생활이 생각만큼 그렇게 사상과 직업에 투철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징적 표현이 아닐까?(회의 중 느긋하게 인터넷을 감상하다 걸린 심재철 의원의 마인드만 봐도 ) 전쟁 속에서도 적을 사랑할 수 있는 게 남녀 사이인데, 하물며 직업적으로 적대적인 상대방이랑 연애하는게 무에 그리 어렵겠는가!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 코스를 그대로 밟아가고 있다. 이른바 싸우다 정들기?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들을 언제나 처음엔 서로 다른 입장 혹은 오해로 인하여 미워하다 결국 정이 들어 버린다.

서로 미워하는 상대라, 그러고 보면 그런 설정에 대한민국 국회만큼 어울리는 곳도 없겠다.

강준만 교수는 그의 책 [증오 상업주의; 정치적 소통의 문화 정치학]에서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을 관통해온 정치 문화가 바로 '증오'라고 일갈한다. 그가 말하는 증오란,

'비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명분, 영향력, 이익의 실현이나 확대를 위해 증오를 주요 콘텐츠로 삼는 정치적 의식과 행태를 말'하는 것으로 1987년 대선 이후 대한민국은 엄밀하게 비상적 정치 상황은 없었음에도 여당이나 야당 모두 국민들의 증오를 이용해 자기 당의 이익을 실현하려 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그리고 등장하는 두 주인공이 국회의원이라는 걸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전투구의 국회를 현장감있게 그려낸다.

드라마 속 국회에서는 현실처럼 언론법 통과를 두고 여야가 대치한다. 그 와중에 여당의 '똘끼'넘치는 신참 국회의원 김수영은 토론회에서 여도 야도 아닌 기존의 모든 정치권과 그들을 뽑아준 국민에 대한 독설로 화제가 되고, 여당은 그를 이용해 언론법을 날치기 통과를 해버린다. 그에 대해 가장 전투적으로 반발하는 것은 의회에 의석이 2석 밖에 없는 군소 야당의 노민영 의원이고, 날치기 통과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그만 실수로 소화기로 김수영 의원의 머리통을 가격함으로써 두 사람의 극적인 조우가 시작되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 속 야당의 국회의원 노민영은 한때 순수하게 국민을 위해 폭력이 없는 정치를 구현하겠다 마음먹은 적도 있었지만, 스스로 국회밥 1년 반에 남은 것 '증오'밖에 없는 열혈 투사가 되었다.

화가 감정, 곧 함축적으로 순수한 감정인 반면, 증오가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공격적 충동이 구조화한 복잡한 감정(고든 올포트)이라는 정의처럼, 노민영은 과열되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불의의 여당을 향해 폭주하다 김수영과 부딪치게 된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배경이 되는 국회, 그리고 두 주인공들은 뉴스에서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베껴 놓기라도 한 듯이 똑같은 행동을 한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던 말 그대로 그걸 옮겨놓으니 그대로 로맨틱 코미디의 과장된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치 물의를 일으켜 이제는 케이블과 종편을 오가며 입담으로 먹고사는 명문대 출신의 국회의원 강용석을 보는 듯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김수영과, 정의를 추구하지만 현실에서는 쌈닭이 되어버린 노민영 또한 머릿 속에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누군가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연애의 모든 것>의 실감 지수는 100% 아니 200%에 가깝다.

하지만 실감이 곧 공감으로 흐르지는 않느다.

비록 술 자리의 안주로도 마구 씹혀지고 희화화되는 것이 무색하지 않는 현실의 국회이지만, 과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감님'이라고 깍듯이 부르듯 권위 앞에서는 약한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들이 한껏 비틀어진 국회와 국회의원들의 연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그 희화화를 조장하기라도 하듯이, 연극이나 영화에서 봐야 어울리는 듯한 김수영 역의 신하균의 조금은 과장된 듯한 연기와, 국회의원이니 그렇다고 보지만,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노민영 역의 이민정의 연기가, 조금 넘치거나 조금 모자라다보니, 어디까지 두 사람의 연애의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래도 국회에서 연애하기라니! 그것만으로도 <내 연애의 모든 것>은 신선한 기대를 부풀게 한다.

by meditator 2013. 4. 5. 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