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8일 첫 방영된 sbs의 월화 드라마 <대박>은 살아서는 안될 왕의 아들과 왕이 될 수 없는 왕의 아들, 두 남자의 운명적 삶을 '한 판 승부'의 세계를 중심으로 펼쳐 낸 조선판 타짜이다. 하지만 아직 그 비극적 운명을 타고 난 두 왕자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 이 드라마를 이끄는 것은 숙종과 그에 대적하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인좌라는 사내의 역심이다. 이 두 사내의 연심과 역심은 투전을 비롯한 각종 노름의 세계 속에서 피고진다. 




조선조의 사극에서 숙종과 숙빈만큼 빈번하게 다루어진 인물들이 있을까? 잊을만 하면 한번씩 다시 만들어 지는 장희빈을 통해 늘 그녀를 사랑하고, 내치는 변심의 아이콘으로 숙종 역시 빈번하게 역사 속에서 불려 나왔다. 숙빈 최씨 역시 마찬가지다. 장희빈이란 비극의 조역으로, 그리고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정적 인물로, 그리고 2010년 만들어진 <동이>에서는 천민 출신 무수리에서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올린 입지전적 인물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사극의 중심으로 한발씩 다가섰다. 그렇게 희대의 악녀, 혹은 운명적 삶을 살아낸 여성, 혹은 입지전적 인물로 장희빈과 숙빈 최씨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더해지는 동안, 그 상대방으로 숙종은 사랑꾼이었다가, 당파와 궁중 어른들에 휘돌리는 우유부단한 지아비였다가, 지어미를 당파 싸움의 희생양으로 삼은 야비한 정치꾼이 되는 등 소극적이거나 부정적 인물로 그려져 왔다. 그도 그럴 것이 결국은 사약으로 인생을 마무리지은 장희빈이나 무수리 출신 최숙빈의 아들 영조가 부각되기 위해서는 숙종은 상대적으로 그 캐릭터가 부정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롭게 해석된 숙종과 최숙빈 
그런데 그렇게 늘 조선의 격동적 인물 장희빈과 최숙빈의 뒤켠에서 조역으로 자리 매김했던 숙종이란 인물이 드디어 자신만의 캐릭터를 가지고 나타났다. 바로 최민수가 연기하는 <대박>의 숙종이다. 

극중 숙종은 그 시대를 다루었던 사극에서 처럼 무수리 출신 최 숙빈(윤진서 분)에게 마음을 빼앗긴 임금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대박>이 이전 사극과 다른 것은 궁중 비사로 남겨진 최 숙빈의 기혼설을 스토리로 끌어들이고 남의 여자인 그녀를 취하기 위해 <대박>의 아이템인 '한 판 승부'를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최 숙빈이 기혼녀였다는 것은 야사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취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인 백만금(이문식 분)과 도박판을 벌인다는 것은 제 아무리 '퓨전'이라지만 상당히 무리한 설정이었다. 하지만, 그 설정을 설득해 낸 것은 뜻밖에도 배우들의 연기력과 그 연기력을 돋보이게 만든 연출력이다. 



왕가의 피가 흐르지만 왕이 될 수 없었던 사내, 그래서 부조리한 세상을 뒤짚어 엎겠다는 역심을 가진 이인좌는 자신의 야심을 위해 최숙빈을 선택한다. 그는 그 어떤 권력도 가진 바 없지만, 대신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으로 왕가와 그 주변의 인물들을 좌우하며 자신의 실권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 왕을 백만금과의 도박 판으로 끌어들인다. 역시나 조선판 타짜다운 이 설정을 설명해 내는 것은 뱀처럼 나긋나긋한 어조로 자신의 야망을 위해 오른팔이었던 김이수(송종호 분)를 거두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전광렬의 연기다. 

모든 판을 쥐고 흔드는 배후의 야심가, 하지만 그가 두려워 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 하였으니 그는 바로 숙종이다. 그리고 이인좌가 두렵다 할 만큼, <대박>이 그려낸 숙종은 지금까지 우리가 조선조 사극에서 만난 적 없는 새로운 캐릭터의 군주이다. 

최숙빈에게 한 눈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그녀에게 지아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숙종은 백만금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 물론 승부는 조작된 것이다. 조선판 타짜의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왕이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그녀의 남편과 승부를 벌인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 왕은 굳이 그렇게 애써 도박판을 조작할 필요가 없는 절대 군주의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권력을 도모해 여인을 빼앗는 대신, 백만금을 궁지로 몰고가 결국은 판돈을 아내를 걸게 만들어 최숙빈이 스스로 왕의 곁으로 오게 만드는 묘수를 쓰는 지혜(?)를 보인다. 

물론 최숙빈이 숙종의 후궁으로 들어가는 전반의 과정은 이른바 이인좌의 설계이다. 하지만, 그 이인좌의 손아귀에서 놀아남에도 불구하고 백만금과의 한판 승부를 극적으로 만든 것은 바로 최민수가 연기한 숙종이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3회, 이인좌가 유일하게 두려운 존재가 숙종이라고 하는 그 장면 뒤로, 드라마는 설계자 이인좌의 판 위에서 기꺼이 놀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배후에 이인좌가 있었다는 것조차도 모두 알고 있었던 노회한 군주 숙종을 드러낸다. 



새로운 숙종에 혼을 불어넣은 최민수의 연기 
3회의 사건은 극적이다. 숙빈 최씨는 이인좌와의 생사를 건 대결에서 백만금의 도움으로 아이도 되찾고 자신의 목숨도 보전한다. 하지만 생환의 기쁨도 잠시 대궐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그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중전 장씨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중전의 도발, 결국 그 도발의 끝은 중전 장씨는 물론 그녀의 일가와 남인들이 처분되는 갑술환국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피비린내 나는 정쟁의 중심에 최숙빈의 모든 허물을 덮고, 정실 아내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내치는 군주 숙종이 있다. 

자칫 사랑에 빠져 몰지각해 보일 수도 있는 숙종의 캐릭터를 최민수란 배우의 무게감으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로 뽑아낸다.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가 궁궐에서 밀려날까 배후의 이인좌를 묵인해주고, 심지어 그녀가 낳은 아이의 생존마저 인정해 주는 넉넉한 품을 가졌는가 싶은데,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하여, 중신들의 거듭된 항소가 있었다 하여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중전을 하루 아침에 내쳐 버리는 최민수의 숙종은, 보기에 따라 이중인격자이거나, 싸이코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배우의 연기로 그 깊이를 헤아릴 길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로 재탄생된다. 

물론 조선판 타짜를 내세운 퓨전 사극에서 이인좌는 매양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세상을 운운하지만, 그 실감은 깊지 않고, 정작 이야기는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궁중 사극처럼 결국 숙빈 최씨를 둘러싼 음모와 갈등으로 진행된다. 장희빈은 하루 아침에 중전 자리에서 내쳐지지만 경술환국을 둘러싼 설득력은 부족하다. 극 속의 모든 갈등과 해소는 타짜답게 투전판 수준이다. 그럼에도 그걸 연기하는 배우들의 깊이있는 연기력과 그걸 중심에 둔 연출은 시청자들을 그 퓨전 사극의 맛에 끌어들인다. 
by meditator 2016. 4. 5.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