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너의 목소리가 들려>란 드라마가 초능력을 가진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했을 때, 픽!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장옥정을 패션 디자이너로 만들더니, 이젠 하다하다 초능력까지 등장하는구나 싶어서.

그런데 웬걸, <너의 목소리> 첫 장면, 고성빈(김가은 분)이 친구를 골리기 위해 대걸레에 본드를 칠해 놓은 걸 안 박수하(이종석 분)는 대신 그 덫에 자청해서 들어가고 덕분에 반 일진이랑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날라오는 일진의 주먹을 그의 생각을 조금 더 먼저 읽은 덕분에 박수하는 가볍게 일진을 제압한다.

이 장면을 통해, 시청자에게 낯선 박주하의 초능력은 기껏해야 반 아이와의 싸움에서 조금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친근한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2회 말 박주하의 말처럼 그저, 키가 좀 더 크거나, 머리가 좀 더 좋거나 처럼 남보다 조금 나은 능력으로.

초능력이란 비현실적 능력을 설명하는 방식을 그 대단함을 내보이면서도 더 낯설게 하기 보다는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러기에, 고가은의 짝사랑하는 마음을 읽는거나, 지하철에 뛰어들려는 마음을 읽는 것이 오글거리거나, 무리한 설정처럼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레 극에 안착하게 된다.

 

sbs의 새로 시작하는 수목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이제 막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지금까지 익숙하게 봐왔던 드라마인 듯 친근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초능력이란 낯선 소재도, 법정물이라는 딱딱한 형식도, 다짜고짜 첫 회부터 등장하는 살인과 무시무시한 살인범의 등장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란 드라마 안에서 튀지않고, 낯설지도 않게 익숙하게 잘 어우러져 있다.

남자 주인공 박수하의 초능력을 설명하는 것 외에도, 국선 변호인이 되기 위한 면접 장면에서 여주인공의 과거로 넘어가는 매끄러운 연결에 감탄이 나올 정도인 것처럼,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의 등장과 그들의 과거사, 그리고 그들의 관계 설정에 무리가 없다. 무리수 없는 아역들의 조우로 인해, 심각하게 나이차가 나는 두 주연, 이종석과 이보영의 어울림이 얼토당토해 보이지 않는다. 차관우(이종석 분)가 너를 지켜주겠다며 장혜성(이보영 분)을 찾아 헤매거나, 그녀 옆에서 서성이는 장면이 너무난 당연스레 다가오는 것이다. 이렇게 속보이는 뻔한 무리수 없이 잘 차려진 드라마를 본 게 얼마만인가 감격스레 헤아려 보게 싶게 말이다.

 

(사진; 스타투데이)

 

물론, 등장인물 누구 한 사람 연기로 빠지지 않는 사람이 없다. 박수하 역의 이종석은 어두운 과거가 있지만 무심한 듯 평범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려는 고등학생 역할로 얼마전 출연했던<학교 2013>의 캐릭터와 큰 진폭의 차이가 없지만, <학교 2013>의 호평에 힘입어서인지, 한결 연기에 자신감이 붙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순정 만화에서 방금 빠져나온 듯한 외모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보는 시청자에게 훈훈함까지 보너스로 얹어주는 느낌이다.

한때 서영이였던 이보영은 여전히 변호사이지만, 서영이가 아니다. 국선 변호 자리에서 싸가지 없게 틀에 박힌 변호문을 읽어내리는 이보영은, 그저 장혜성일 뿐이다. 그녀 못지 않게 최근 드라마에서 너무 자주 만난다 싶었던 김소현 역시 그 과잉 출연 논란을 잠재울 만큼 장혜성스러웠다.

그리고 반가운 건, 윤상현의 귀환이다. 시크릿 가든의 성공 이후 일본 진출과 영화 등으로 본인은 바뻤을 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시선에서 비껴나가 있었던 그가 화신에서 보였던 실재 윤상현의 도플 갱어같은 차관우로 돌아온 것은 무엇보다 반길 일이다. 양복에 하얀 양말을 신고, 가방은 꼭 부등켜 안는, 한없이 착하고 의리있어서 바보같아 보이기까지 한 차관우의 매력은 단 2회만에 이미 충분히 밝혀졌다. 과연 이 사람이 한때 무게 잡으면서 뻗뻗하게 실장님 연기나 하던 사람이 맞나 싶게.

좋은 배우들의 적절한 연기, 그리고 주렁주렁 이야기 보따리가 달린 것처럼 풀어낼 꺼리가 많아보이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벌써 다음 주가 궁금해진다.

 

허기사,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전작인 <내 아내의 모든 것> 역시 털고 보면 굳이 먼지날 것이 없는 웰메이드 드라마였다. 하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이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발목을 잡았다. 반면, 초반부터 초능력이란 난해한 소재조차 가뿐하게 이해시키고, 법정물의 딱딱함을 흥미진진한 사건과 캐릭터의 대결로 말랑말랑하게 만든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게는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장애물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당당하게 2회 만에 수목극 1위 자리를 꿰어 찼다.

부디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초반에 벌려놓은 화려한 진수성찬을 마지막까지 잘 수습해 나가길 바란다. 막장이어야 시청률이 올라가는 아이러니를 단번에 깨부술 수 있게.

by meditator 2013. 6. 7. 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