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靑春), 수필가 민태원 선생은 그의 작품 <청춘 예찬>을 통해 말한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라고, 청춘의 피는 끓고, 그 피는 거선의 기관과 같은 힘을 가지고, 인류는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역사를 꾸려왔다고. 

하지만, 막상 그 청춘이란 이름이 붙여진 세대들이, 청춘이란 말을 만끽한 적이 있을까? 오히려, 그 뜨거운 피에 짖눌려 허덕이기 십상이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청춘이란 말은, 그 시절을 지나쳐 회고하는 자에게,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단어이기가 십상이다. 
그렇게, 이제는 청춘이라는 말을 회고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 더 어울릴, 흰 수염이 희끗희끗하게나는 나이의 윤상, 유희열, 이적이 <꽃보다 청춘>의 주인공이라고 했을 때, 고개가 갸웃해졌다. 그들이 흘러간 한때 '청춘의 상징'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마흔을 훌쩍 넘긴 그들이, 꽃보다 청춘이라고?

하지만 , 9부작을 마친 <꽃보다 청춘>을 보고 난 후, 이제는 기꺼이 그들에게 '청춘'이란 이름을 부여하고 싶다. 그들은, 여전히 청춘이다. 여전히 꿈을 꾸고, 젊어 꾸었던 꿈을 되찾고, 그리고 다시 꿈꾸기를 마다하지 않으니까. 
처음 마추픽추로 여행을 떠난다 할 때, 유희열은 말한다. 젊어 한 때, 자신의 꿈이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다 보는 것이었다고. 그리고 말을 잇는다. 그런 것이 자신의 꿈이었다는 것조차 잊고 살아왔었다고. 그리고, 김치찌개를 먹다 얼떨결에 끌려온 페루행을 통해, 자신이 그런 꿈을 꾸었었다는 것을 상기하게 되었다고. 
마추픽추를 꿈꾸었던 젊은 시절의 꿈을 상기한 것만이 아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이제는 자기 자신이 예전만 못하다는 걸 슬금슬금 실감하게 되면서, 자신감이 조금씩 떨어져 가던 시기, 오랜 벗들과 함께 힘들게 마친 여정을 뒤로 하고, 유희열은 이 경험을 지렛대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그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안개에 휩싸였던 마추픽추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자, 유희열은 눈물을 흘린다. 그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든 건, 바로 시간이었다. 처음 윤상과 이적을 만나던 그 시간으로부터, 이제는 음악보다는 중년의 가장인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더 익숙해진 지금까지의 시간이 안타까워 흘리는 눈물이었다. 하지만, 유희열의 눈물을, 그저 가는 시간이 아쉬운 회한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 시간이 아까웠다는 건, 곧 그 시간이 그만큼 소중했었다는 확인의 눈물이었다. 나이들어가는 자, 그 누구라도 가는 세월을 안타까워 하지만, 그 안타까움의 실체를 가늠하지 못하기가 십상인 반면, 마추픽추 정상에 오른, 유희열은, 자신이 벗들과 함께 살아왔던 그 시간의 소중함을 만끽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바로 그러기에, 여전히 유희열은 '청춘'이다. 그와 그의 벗들의 청춘은, '물방아같은 심장의 고동'이 느껴지는 그 청춘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삶의 긍정성을 믿고, 벗들과 다시 한번 살아보리라는 의지를 가진 한에서 다르지 않다. 술을 끊고, 이제는 약도 끊어보겠다 말하는 윤상의 다짐도 다르지 않다. 

그러고 보면, 100세 시대에, 딱 반에 못미치는 중년을 '청년'이라 규정한, 나영석 피디를 비롯한 제작진의 혜안은 거의 우리 시대의 새로운 '청춘'에 대한 정의이다. 

(사진; 데일리안)

할배들의 노년의 여행은 애틋했고, 누나들의 여행이 숨겨진 비경같았다면, 이번 <꽃보다 청춘>의 20년지기 친구들의 우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정겨웠다. 스무 살 무렵 까마득한 선배와 후배로 연을 텄던 친구들은, 이제 이십 여년이 흘러, 스물 다섯 살 선배가 어려웠던 후배의 말 한 마디에 나스카를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타기를 마다하지 않는 관계로 역전되었다. 그때도 애같고, 지금도 여전히 애같다지만, 여행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도 든든했던 막내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90년대의 대명사였던 이들, 그리고 윤종신이 표현하듯, 여전히 우리 문화의 '섬'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그들은, <꽃보다 청춘>을 통해, 마치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보듯, 친근하게 다가왔다. '감성 변태'라던 유희열은, 그 어느 프로에서보다 진심어린 카리스마가 돋보였으며, 그의 학력과, 아름다운 노래를 넘어선, 이적의 넉넉함도 빛이 났다. 

그렇다면 여행 내내 '민폐'였던 윤상은 어땠을까? 아마도 윤상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이적과 유희열이 그만큼 빛났을까? 반문해 보아야 한다. 한때 하늘같던 선배였던 그가, 후배들과 함께 나이들어 가며, 나이를 들먹이는 '꼰대'가 되지 않고, 그들 앞에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할 줄 알고, 기꺼이 도움을 받을 줄 알고, 그들과의 여행을 통해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는 그 모습이, 사실은 <꽃보다 청춘>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의 윤상 또래의 남자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들여다 본다면, 여정 속의 윤상이 더 빛날 것이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저녁마도 술잔을 기울이고, 자신의 약함을 큰소리로 숨기는 우리 사회 중년의 익숙한 중년 남자들의 모습들 속에서, 윤상의 나약함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런 소탈한 형인 윤상이기에, 그는, 동생들과의 여행을 통해, 낼 모레 오십이 나이에도,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꽃보다 청춘>이 남긴 치유는, 리더 유희열이나, 능력있는 참모 이적이 아니라, 민폐였던 윤상을 통해 얻어진다. 삶에서 무기력했던 그가, 어렵게 동생들과 함께 하는 여행을 하고자 용기를 내고,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술을 끊고, 이제 술 대신 의존했던 약조차 끊으려는 용기를 내는 모습은, 자신의 나약함을 남자라는 이름으로 숨긴 채 고통받는 우리 사회 남자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시간이다. 아직은 '청춘'이니, 어렵더라도 다시 시작해 보자고, 윤상이 말은 건넨다. 

그렇게 어렵게 여행을 시작하여, 이제는 좋은 아빠로 다시 시작해 보겠다는 윤상도, 함께 해왔던 시간이 아름다원 그 시간이 아쉬운 유희열도, 덤덤한 듯 하면서도 끝내 눈물을 숨길 수 없었던 마흔의 나이에 흰 수염이 나기 시작한 이적도, 여전히 그들이 다시 함께 살아갈 의지를 가진 한에서, '청춘'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꿀 청춘의 이상은, 사실 그리 거창하지 않다. 자신의 자리가 어디서든, 꿈꾸기를 마다하지 않는 자, 모두 청춘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은 그들을 보며, 가슴 뜨뜻한 용기를 얻는다면, 그 역시 '청춘'의 전염이다. 


by meditator 2014. 8. 30. 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