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향이 지방인 친구와 함께 그 친구 고향 사투리를 쓰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봤다. 영화가 끝난 후, 영화평을 묻는 내게, 친구는 다짜고짜 말한다. 사투리가 어설퍼서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자연스런 사투리가 영화의 장점으로 손꼽히던 영화였지만, 정작 그 지역에서 살았던 친구에겐 '흉내내기' 이상으로 들리지 않았었나 보다. 우리 사회에 이런 경우가 많다. 내가 살아본 것, 내가 경험한 것, 심지어 내가 직업인 것에 대해 사람들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타인들이 그것을 아는 척(?)하는 것에 못내 탐탁치 않아 하는 경우가 많다. 

<괜찮아 사랑이야>가 제재로 삼고 있는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역시나 얼마전, 이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가지 정신 질환, 그 중에서도 주인공 장재열(조인성 분)이 앓고 있는 스키조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정신가 의사의 글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 의사의 글이 맞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특정한 정신적 질환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임상의 예와 정확히 일치하지도 않을 뿐더러, 심지어 정신과 질환을 미화시키고 있는 면이 있다. 의사의 글에서 처럼, 실제 우리 사회 스키조를 앓는 환자들은 끊임없이 재발되는 증상으로 인해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받으며, 그런 환자들을 돌보다, 애인이, 가족이, 결국은 가족마저도 나가 떯어지는게 현실인 병일 수도 있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두 주인공은 모두 정신과적 질환을 겪고 있다. 여주인공인 지해수(공효진 분)는 어린 시절 엄마가 외간 남자와 키스하는 것을 본 이후로, 사랑하는 사람과 그 어떤 스킨쉽을 하려고 들면 심장 박동이 급격하게 증가되면서 식은 땀이 나는 강박 증세에 시달리는 강박 장애 환자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병을 앓으면서도, 오히려 그런 병을 앓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었다. 남자 주인공 장재열은 어떤가. 엄마가 우발적으로 의붓 아버지를 살해한 후 해리성 기억 상실에 빠져들자, 그 죄를 형에게 뒤집어 씌운 후, 스키조를 겪게 될 정도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소녀팬들을 거느린 인기남이다. 
모델같이 길쭉길쭉한 자태를 뽐내며, 그 자태를 능가하는 사랑스러운 얼굴을 가진 두 주인공은 만나자 마자, 사랑에 빠지며, 그 사랑으로 서로의 정신적 장애를 이겨낸다. 나가 떯어지기는 커녕, 스킨쉽을 영원히 못할 거 같던 지해수는 장재열과 사랑을 나누게 되었고, 장재열은, '사랑하는 우리 애인' 덕분에, 3년 동안 그의 분신이었던 환시 한강우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족들의 반대에 못이겨 1년을 떨어져 있었음에도 어제 본듯 감정은 변하지 않고, 순조롭게 결혼에 골인, 아이까지 갖게 되었다. 두 주인공만이 아니다. 장재열의 형도, 엄마도,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그들의 상처에서 한발씩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정신적 장애를 겪는 선남선녀가, 서로의 사랑으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 병을 너끈히 이겨내고, '하하호호' 행복한 삶을 누린다. 정신과 의사의 비감한 현실에서는 쉽게 만나보기 힘든 '환타지'다. 



	사진=SBS 방송캡쳐
(사진; 조선닷컴)

하지만, 이 아름다운 두 배우의 무조건적 사랑의 환타지에 의한 정신과 질환의 극복은, 비록 현실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은 허구일지라도, 많은 소득을 낳는다. 현지인이 듣기에 어설펐던 영화가 그 영화를 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찡한 감동을 남기듯이, 정신과 의사가 보기에 전혀 전문적이지 않았던 내용의 <괜찮아 사랑이야>는, 정신과 의사처럼 실질적으로 환자를 고치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혹은 심지어 정신과 질환에 대한 오해나 착각을 불러일으킬 지도 모르지만, 대신, 우리가 그 질환에 대해 사로잡혔던 '편견'을 한 겹 덜어내고, 정신과 질환을 우리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정신과 질환이라면, 우리 시대 대표적 개그맨 이경규의 고백으로, '공황장애'가  우리 안으로 들어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스키조는, 그 전문적 용어보다는, '정신분열'이라는 천형의 이름으로 낙인 찍힌 채, 생명이 오가는 암보다도 두려운 우리 사회의 '타자'로 자리잡아왔다. 
일찌기 '빨갱이'를 시작으로, 각종 사회적 역사를 트라우마를 다종다양하게 겪은 우리 사회만큼, 나와 '타자'를 겪하게 구분하는 사회도 없을 것이다. '전염병'처럼 내가 아닌 타자에 대해, 몰인정하다 싶게 외면하는 사회가 바로 한구 사회라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 '빨갱이'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레드 컴플렉스가 사라지는가 싶었는데도, 여전히, 아직도 좌파 콤플렉스가 만능인 양 우리 사회에 드리우고 있듯이, 우리 안의 '타자'는 낙인만 찍히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지경인 것이다. 
하물며, 정신적으로 분열이 된다는 질환임에랴. 사회는 나날이 원좌화된 개인을 옥죄어, 사회 구성원 중 열 명에 한 명 꼴로, 정신적 질환을 겪는, 말 그대로 '정신 분열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공황 장애' 정도가 조금 이해가 될 뿐, 기타 정신과 질환은 음지에 숨어, 그 누군가와 그 가족의 고통만으로 치부되는 세상에서, <괜찮아 사랑이야>는, 그렇게 음지의 고통을 가장 아름다운 주인공들의 사랑을 매개로 세상 속으로 끌어올렸다. 이 정도면, 그 내용이 조금 과장되거나, 환타지스럽더라도 큰 성과가 아닐까. 평생 만날 일도 없을 뿐더러, 야곰야곰 그들로 인해 내 삶이 좀 먹어가는 재벌과 만나, 사랑과 화해를 이루는 환타지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 아닌가 말이다. 내가 좀 아는데, 하지 마지고, 너그럽게 <괜찮아 사랑이야>가 이룬 성취에 박수를 보내주시길 바란다. 

그러고 보면, 노희경 작가는 언제나 그랬다. 우리 밖에 있는, 우리가 외면했던, 타자였던 것들을, 그녀의 드라마들을 통해 하나씩 끌어 들여 오는게 그녀의 장기였다. <꽃보다 아름다워>에서는 치매를, <슬픈 유혹>에서는 동성간의 사랑이 그녀의 화두였다. 꼭 어떤 제재만이 아니다. 가족의 이름으로 대신 살아오던 주부도, 깡패도, 창녀도, 가난이 지긋지긋한 청년도 그녀의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드러낸다. 때로는 유부남, 유부녀의 사랑도, 몇 십년의 차이를 둔 연상녀와 연하남의 사랑도, 그녀의 드라마에선 있을 수 있는 일로 재조명된다. 세상에, 우리가 아니라고, 나는 아니라고 외면할 그런 일이 노희경의 드라마에선 없다. 

되돌아 보면 <괜찮아 사랑이야>는 참 희한한 드라마다. 가족내 갈등은 있지만, 그것이 출생의 비밀도 아니요, 돈때문에 이전투구를 벌일 일도 아니다. 사랑으로 인한 갈등은 있지만, 점찍고 복수할 일도 아니요, 더 많은 것을 쟁취하거나, 얻어내기 위한 이합집산도 없다. 아버지의 투병으로 인한 가난이 원망스러워 엄마에게 외도를 종요했던 딸의 아집이 트라우마요, 폭행에 시달리던 엄마의 범죄를 외면했던 아들의 자기 학대와 죄책감이 주인공의 주된 고뇌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극진하지만, 그 사연들이 그간 우리 드라마를 구성해 왔던 뻔한 사연이 아니라, 우리 사회 누군가가 가질 법한 저마다의 짐이요, 그래서, 드라마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괜찮아' 라고 말해주고 싶은 사연들이다. 노희경 드라마의 주인공들의 사연은 도발적이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이다. <괜찮아 사랑이야> 역시, 예외없이 가장 인간적인 주인공들이 이제 2014년에 와서, 그 상처로 인해 정신병까지 앓게 된, 인간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병적인 증후들에 대해, 드라마처럼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스런 인내로, 관심을 가져보고 이겨내자고 말한다. 내가 아니라고 밀어내지 말고, 지켜봐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가고 말한다. 


by meditator 2014. 9. 12. 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