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인터뷰에서 배우 윤여정은 자신이 tvn의 열혈 시청자라며 그 이유를 새로운 것을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비단 윤여정씨만이 아니다. 주변에서는 아예 tvn에 채널을 고정해 놓는 사람들도 있다. <시그널>이 tvn에서 방영했으니 망정이지, 공중파에서 했다면 아마도 '러브 라인'에 치중했을 것이라는 우스개처럼 공중파 드라마하면, '사랑 이야기'라는 공식이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얼마 전 조기 종영한 <뷰티플 마인드>의 경우 애청자들은 차라리 ocn이나 tvn으로 갔다면 드라마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라 안타까워 했으니. '신선한 시도'로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tvn 을 비롯한 케이블 드라마의 성공은 곧 공중파의 위기가 되었다. 주중 미니 시리즈가 20%를 넘기는 경우가 가물에 콩나듯 쉽지 않은 상황, 안되면 심지어 케이블보다 낮은 3%의 수모를 겪는 상황에서, 그 위기를 타파하고자 공중파가 꺼내든 칼은 바로, 케이블의 인기 작가들의 공중파 유입이다. 




<W>의 송재정 작가 
그 대표적 작가가 바로 얼마전 종영한 <W>의 송재정 작가다. 송재정 작가는 1998년 <순풍산부인과>를 시작으로 <똑바로 살아라(2002)>, <거침없이 하이킥(2007)>, <크크섬의 비밀(2008)> 등 공중파에서 시트콤을 주로 집필해왔다. 그러던 중 2012년 <인현왕후의 남자>를 시작으로 TVN으로 자리를 옮겨 미니 시리즈를 전환을 한다. <인현왕후의 남자>,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 시대의 인연이 현대에 다시 만나 이어지는 '운명적 사랑'을 통해 방영 당시는 물론, 종영이 된 현재까지도 대표적인 TVN의 작품으로 언급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늘의 송재정을 있게 한 것은 표절 시비에도 불구하고 2013년 방영된 <나인; 아홉 번의 시간 여행>이다. 향 9개로 20년전 과거로 돌아가 미스터리한 인연의 끈을 풀어가는 이 드라마는 '시간'을 매개로 삼는다는 점에선 <인현왕후의 남자>의 바통을 이어받지만, 흔한 역사적 시간과 현재의 타임워프물 대신, 주인공의 주변 인물과 얽힌 20년이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얽히고 설킨 '인연'과 '운명'이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이후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왕세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활약을 다룬 <삼총사>의 부진을 딛고, 송재정 작가는 2016년 MBC로 자리를 옮겨 <W>를 인기몰이를 한다. 

<인현왕후의 남자>에서 '역사적 인물의 타임 워프를  다뤘던 송재정 작가는 <나인>을 통해 주인공 가정사의 비밀이 벌어진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한다. 그렇게 '시간'을 자유자재로 활용한 송재정 작가가 <W>에선 시간 대신, 현실과 웹툰이라는 '공간'적 상황을 등장시켜 다시 한번 젊은 시청자들을 열광케 한다. 2016년 서울이라는 공간은 같지만 만화 속 등장인물인 강철(이종석 분)과, 그의 열혈 독자 오연주(한효주 분)가 가상과 현실을 오가며 사랑과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이렇듯 송재정 작가의 작품에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미스터리와 운명적 사랑이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나인>에서 미스터리한 운명을 풀기 위해 진력했던 주인공은 이제 공중파로 오면, '사랑'에 좀 더 방점을 두고 웹툰과 현실 세계를 오간다. 덕분에 <나인>의 치밀한 전개를 기대했던 전작의 시청자들은 <W>의 전개가 어설프다는 평가를 내리는 반면, 다양한 연령대를 흡인할 수 있는 복잡하지 않은 전개와 스타 배우들의 러브 스토리가 <나인>과 다른 <W>의 장점이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간 공중파에서 접할 수 없었던 이야기라는 점에서 송재정 작가의 공중파 재입성은 의미있다. 엉성하던 혹은 단순하든 <W>는 일부 매니아 층을 거느렸던 <나인>과 달리, 최고 시청률 13.8(7회 닐슨 코리아 기준)를 찍으며 동시간대 1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마지막 회에 가서 9.3%(16회)까지 하락한 시청률은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이는 송재정 작가의 차기작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캐리어를 끄는 여자>의 권음미 작가
송재정 작가의 바통을 이어받은 건 역시나 MBC 월화 드라마로 돌아온 권음미 작가이다. 권음미 작가는 화성 연쇄살인을 <시그널>에 앞서 다루어 화제를 일으켰던 <갑동이>의 작가이다. <살인의 추억>을 잊게 만들 정도로, 갑동이, 그 진범과 카피캣의 물고 물리는 흥미진진한 스릴러는 TVN 장르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 하지만 권음미 작가 역시 송재정 작가처럼 공중파 출신이다. 2008년 <종합병원>으로 첫 발을 내딛은 권작가는 이후 이제는 범사가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재벌가의 이면을 파헤친 <로열 패밀리(2011)>를 집필했다. <로열 패밀리>에서 크리에이터로서 박상연, 김영현 작가의 도움을 받았던 권작가는 이후 TVN으로 이적하여 드디어 자신의 색채가 듬뿍 담긴 <갑동이>를 통해 권음미라는 작가의 세계를 펼쳐보인다. 이렇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연 권음미 작가는 역시나 공중파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9월 26일부터 <캐리어를 끄는 여자>를 시작했다. 



독특하게도 사법 시험에 매번 미끄러져 사무장이 된 여자 차금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권작가는 앞서 <갑동이>처럼 잡히지 않는 연쇄 살인마를 최종 보스로 선정한다. 경찰의 손아귀를 비웃듯 그 뒤편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주인공을 지켜보며 그의 목을 죄어오는 설정은 <갑동이>에서 <캐리어를 끄는 여자>로 이어진다. 하지만 좀 더 장르물의 색채가 강했던 <갑동이>와 달리, 역시나 공중파라는 다중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캐리어을 끄는 여자>는 그보다는 말랑말랑하게 로맨틱 코미디와 법정 드라마, 그리고 스릴러의 절묘한 배합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이혼녀가 된 차금주(최지우 분)와 그를 스카웃하여 함께 미지의 범죄를 해결하고자 하는 파파라치 언론 대표 함복거(주진모 분), 그리고 풋내기 변호사 마석우(이준 분)의 삼각 관계와 협업이 이 드라마의 묘미이다. <원티드> 등의 스릴러 드라마들이 고전했던 것과 달리,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그런 미스터리물의 단점을 로코라는 당의정을 통해 해소하고자 하고, 이제 3회에 불과하지만 압도적 <구르미 그린 달빛>을 제치지는 못하지만 동시간대 2위까지 치고 오르는 성과를 보건대 어느 정도 그 전략이 성공하고 있는 듯보인다. 


이에 앞서 TVN에서 <로맨스가 필요해>시즌을 썼던 정현정 작가가 이미 KBS2로 넘어와 <연애의 발견>에 이어 주말극 <아이가 다섯(2016)>을 선보이는가 하면, 일찌기 JTBC를 통해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를 통해 호평을 받았던 하명희 작가는 그 이후 <따뜻한 말 한 마디>, <상류 사회>, <닥터스>까지 공중파의 인기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정현정 작가나 하명희 작가가 특유의 '사랑 이야기'로 케이블에서 공중파로 재진입에 성공했다면, 위의 송재정 작가나, 권음미 작가의 경우는 그간 공중파가 시도하지 않았던 신선한 이야기를 통해 공중파 드라마의 경직된 영역을 뚫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이들 작가들이 애초에 그 시작이 대부분 공중파였고, 자신만의 특별한 서사를 케이블을 통해 드러냈듯이, 그 반대의 경우로 그간 공중파에서 작업을 하다, 편성이 여의치 않자 케이블로 가서 빛을 발하는 경우도 있다. <청춘시대>의 박연선 작가가 그 대표적인 경우가 할 수 있다. 

by meditator 2016. 10. 4. 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