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그저 평범한 여자들이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김미영(장나라 분)과, <연애 말고 결혼>의 주장미 말이다. 
우리 주변 어디엔가 있을 법한 그런 여자들 말이다. 어디 내놓을 것없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손벌리고 살 정도는 아닌 멸치 쌈밥집에, 치킨집을 하는 부모에, 내로라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 밥벌이 정도는 할 줄 아는, 로펌 계약직 직원에, 백화점 판매원의 직업을 가진 그녀들이다. 거기에 우리 시대를 사는 여성들이 겪었을 법한 경험 한 가지씩은 장착하고 있다. 마음이 약해서 자신이 부탁을 거절한 그 누군가의 낙담을 견뎌내지 못하는 김미영은 거절불능 증후군을 가졌고, <마녀 사냥>에 나올 법한 연애사를 겪은 주장미는 그 덕분에 즉결 재판 처분까지 받는다. 사회에서 대인 관계에 취약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평번한 생각들이 그녀들을 곤란한 처지에 이르게 만드는 그 묘한 기시감도, 우리 시대 젊은 여성들의 트라우마에 닿아있다. 

(사진; OSEN)

그렇게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그녀들에게  뜻밖의 사건들이 닥쳐온다. 
운좋게 뽑힌 마카오 행에서 그녀와 함께 동행했던 로펌 변호사가 그녀를 이용했던 것과 달리, 우연히 아니, 불행하게 하룻밤을 보내게 된 해프닝을 통해 재벌가의 이건(장혁 분)을 만나, 그와의 결혼 소동에 꼬이게 된 것이다. 
주장미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결혼하겠다고 마음 먹은 이훈동 때문에 스토커로 몰렸지만, 그 과정에서 훈동의 친구였던 역시나 교수집 자제에, 현재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인 공기태(연우진)을 만나 결혼 소동을 벌이게 된다. 

공교롭게도, <연애 말고 결혼>과,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두 여주인공은, 가장 평범한 여성들이지만, 드라마틱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주장미가 자신의 부모님이 잠시 꿈이라도 꾸실 수 있는게 어디냐며 자위하듯이 평소라면 어울릴 수 없는 상류층 남자와 어우러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연애 말고 결혼>과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새로운 해프닝과, 그 해프닝을 그려내는 실험적 양식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통한 계층 이전이라는, 전통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가진 전형적 구조에 맞닿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덕분에, 결국은 주장미와 공기태의, 그리고 김미영과 이건의 사랑 찾기로 결론이 나겠지만, 대부분의 스토리는 '결혼'을 매개로 이어진다.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 공기태, 하지만 그가 머무는 집이 주인은 어머니이고, 집을 담보로 어머니와 공기태 사이에 결혼에 관한 밀땅이 생겨나고, 그 과정에서, 결혼을 원하는 어머니와 달리 결혼에 회의적인 공기태는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주장미를 이용한다. 
이씨 문중의 9대 종손 이건 역시 처지가 당장 1년 안에 결혼을 하지 않으면 문중이 중요한 권한을 행사하는 회사 대표직 조차 위태로운 상황에서, 하룻밤을 보낸 김미영의 원치않는 임신은, 그에게 닥쳐온 위기를 모면하고, 인간적 책임을 다할 묘수로서의 결혼을 부른다. 

드라마의 배경은 2014년 서울이지만, 트렌디한 드라마의 주인공들의 갈등을 부추키는 건, 전통적인 제도 결혼이다.
그리고 이 난센스 결혼이 의미하는 바는 상징적이다. 성형외과 의사, 기업 대표라는 그럴 듯한 사회적 지위의 남자 주인공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모의 인큐베이팅 시스템에서 완벽하지 벗어나지 못한 채, 하지만, 벗어나고 싶어하면서, 결혼을 이용한다. 부모들이 제시한 전통적 제도를 당당하게 벗어날 의지도, 능력도 없는 그들은, 대신 결혼할 상대방 여성들에게 '협잡'을 요구한다. 물론,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원작이 2008년 대만 드라마라는 점도 있지만, 2014년에 여전히 일정한 공감을 얻고 있는 이 드라마의 설정은, 또한, 집에서 쫓겨나기 싫어서 결혼할 여자가 있는 척하는 공기태의 상황은, 결국은 부모의 힘에 의존하여, 부와 지위를 거머쥔 이 시대의 능력남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부산일보)

어른들의 눈을 피해, 여주인공과 결혼 해프닝을 벌이자고 하는 남자 주인공들에, 김미영과 주장미는 한결같이 순응적이다. 
물론 김미영에게는 원치않던 하룻밤으로 인한 뜻하지 않은 임신이란 변수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혼율 세계 수위의 대한민국에서, 생면부지의 남자와 원나잇을 통해 임신을 했다고 주변 어른들의 강권(?)에 못이기는 척 결혼부터 하고 보는 김미영은 거절하지 못하는 그녀의 캐릭터을 일관성있게 구현한 것이지만, 수동적이다. 
주장미 역시 다르지 않다. 어머니의 오해에서부터 시작하여, 결혼을 기대하는 어머니의 환상을 깨뜨릴 진상녀가 필요했던 공기태의 얕은 수에서 시작된 주장미-공기태의 연합 작전은, 매번 그로 인해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말로는 열번도 더 아니다 하면서도, 10회에 이르는 동안 대부분의 에피소드를 부모님에 대항한 결혼 밀땅 작전으로 허비한다.
 
그리고, 이런 김미영의 원치않는 결혼, 하지만 그 상대가 재벌남인 상황과, 마지못한 계약 약혼, 하지만 역시나 그 상대는 성형 외과 의사인 상황이, 어쩌면, 지극히 쿨해 보이는, 하지만 알고 보면 이제는 내 부모에게서도, 계약직이거나, 판매직인 내 직업에서도 위로를 얻기 힘든, 이 시대 여성들의 흔들리는 속내를 유혹하는 달콤한 환타지가 아닐까. 즉, 2014년, 흔들리는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들에게 필요한 건, 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쟁취하는 진정한 사랑보다도, 어거지로 시작되었어도, 지내고 보니 내 가족이나 '도찐개찐' 그저 사람사는 곳이면 다 비슷한 혹은 그보다도 못한 견딜만한 시가에, ''재수 옴붙은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살살 정도 드는 괜찮은 능력남이 아닐까. 즉, 불안한 사랑보다는, 지금의 불안정한 존재를 잡아줄, '취집'말이다. 


by meditator 2014. 8. 7. 1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