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작가 한스 올라브 랄룸의 범죄 스릴러 시리즈의 첫 권의 제목은 [파리인간]이다. 왜 하필 파리일까? 작품 중에서 크리스티안센 경감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파트리시아는 파리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즉, 파리가 쓰레기더미에서 벗어나지 못하듯, 인간들 중에는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평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그런 사람들을 파리인간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정의에 걸맞게 책 중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누군가를 협박하고, 무엇인가를 없애려 하며 범죄의 용의자가 된다. 그리고 그 중 살인범은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과거의 사건을 지우려 살인에 살인을 거듭하고 만다.

그런 한스 올라브 랄룸의 파리인간처럼, <갑동이>의 주인공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처한 상황과 입장은 다르지만 저마다 20여년 전 일탄에서 벌어진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의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사건에 사로잡혀 오늘을 살아가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위의 책에서 굳이 저자가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사는 사는 사람들을 하고 많은 생물 들 중에 굳이 별로 좋지 않은 느낌의 파리에 비유한 것은, 바로 그 과거가 결국 그 사람의 현재를 사로잡고 파멸에 이르게 만든다는 주제 의식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갑동이>의 주인공들도 파리인간이다. 과거의 기억이 그들의 현재를 파먹어 가고 있으니까. 

과거 갑동이의 사건과 흡사한 사건이 다시 20여 년만에 일탄에서 벌어지는 <갑동이>의 이야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캐릭터는, 바로 과장으로 영전했음에도 결국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사건에 대한 집착으로 일탄으로 돌아온 성동일이 분한 양철곤이다.

하지만,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달리, 그를 지배하는 것은, 과거 자신이 과거 사건의 범인으로 하무염(윤상현 분)의 아버지를 염두에 두었던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그 사건 당시 어린 하무염이 아버지의 결정적 증거였던 윗옷을 태워버렸던 일로 인해, 결정적 증거를 놓치게 되었다는 생각이, 결국 자신이 하무염의 아버지를 범인으로 포착했던 그 생각이 옳았을 것이라는 데 대한 신념이, 현재의 하무염을 또 한 사람의 연쇄 살인범으로 몰고가는 집착으로 이어진다. 

(사진; 뉴스엔)

그런 의미에선 하무염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공소 시효가 지난 날, 살 의미조차 잃어버린 듯하던 그가, 다시 과거와 같은 살인이 일어나자, 양철곤이 말하듯, 짐승같은 본능이 되살아 나는 모습은, 그래서 홀로 사건을 해결하려다, 결국 3회 마지막에, 그 자신이 살인범으로 몰려가는 모습은 그 맹목성에 있어 양철곤과 다르지 않다.

또한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면서도, 범인을 찾기 위해 전과자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불사하고, 범행이 예정된 날 가장 범인의 먹이가 될 만한 빨간 색으로 온 몸을 치장한 채 범행 장소에 나타나는, 과거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오마리아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범인을 놓친 자, 아버지가 범인으로 몰린 자, 그리고 범인의 유일한 목격자, 그들은, 입장은 다르지만, 20년 전의 기억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놓여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 윤색된 기억 속에서 헤맨다. 

흔히 범죄 스릴러 물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쉽사리 피해자와 범인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협조하는 것과 달리, <갑동이>는 과거 사건에 매어 있으되, 그 사건이 가져다 준 상흔으로 인해, 결국에 있어서는 범인을 잡겠다는 목적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있어서, 극과 극의 처지에서 대립하는 인물들을 묘사한다. 양철곤의 손가락과 하무염의 사지가 걸린 얼토당토 않은 두 사람의 대결은,  두 사람이 매어있는 과거의 기억의 대결이요, 자신들이 믿어 온, 믿고 싶은 신념의 대결이다. 불편할 정도로 맹목적으로 하무염을 옭아매려고 하는 양철곤의 집착을 보며, 그것이 불편하면서도, 기실 그것이 우리 사회 어디선가 만나게 되는, 대화도 통하지 않았던 절벽같은 누군가의 민낯 같아 더 섬뜩해진다. 또한 하무염의 맹목성 역시 다르지 않다. 틀리지 않았지만, 스스로을 옭아매고 마는 그의 행보 역시 낯설지 않다. 

인간의 기억이란 것이, 또 인간의 사고라는 것이, 얼마만큼 자기 중심적이며, 그로 인해 또 다른 현실의 고통들이 파생되며, 비합리적 결과를 낳을 수 있는가를,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 군상을 스케치하는데  드라마 <갑동이>는 골몰한다. 그런 면에서 <갑동이>가 포착한 캐릭터들은 예리하며 현실적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이 이 드라마의 주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스릴러 <갑동이>의 위상은 그저 단순히 과거의 연쇄 살인범을 잡는 수사 드라마에서, 보다 한 발 더 나아가,  그 함께 할 수 없을 것같은 다른 인간들의 조우에 촛점을 맞추며 인간의 존재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드라마가 되어 갈 듯하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나아갈 방향은, 그저 과거의 연쇄 살인범을 잡는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서로 조우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만나지고, 해소해야 하는 인간사의 과제가 더 화두가 되지 않을까도 섣부르게 예측을 해본다. 


by meditator 2014. 4. 26. 0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