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에도 단막극이 있었구나 싶다.4월 30일과 5월 1일에 걸쳐 방영된 <엑시트>에 대한 첫 소감이다. 지난 주 종영한 <키스 먼저 할까요?>와 다음 주 첫 선을 보일 <기름진 멜로> 사이의 한 주, 그게 sbs 특집극에 허용된 시간이다. 4회 4.6%, 단막극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해야 하나, 아님 단막극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 허긴 그래도 고전하고 있는 mbc의 주중 미니 시리즈에 비하면 선방했다고 봐야 할까? 하지만 조촐한 시청률과 달리, <엑시트>는 그간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았던, 아니 다루기 버거웠던 '가상 현실'을 소재로 하여 sf 장르물이라는 신선한 시도를 선보였다. 




당신....행복해지고 싶나요? 
4부작, (일반 드라마 분량으로 하면 2부작)의 드라마 <엑시트>를 연 건, 희망, 행복 등의 단어는 찾아볼 수 없는 청년 사채 일수꾼 도강수(최태준 분)의 나날이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가져오라는 가족 사진을 그는 가져갈 수 없었다. 아버지(우현 분)의 폭력에 못견딘 어머니(남기애 분)가 집을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때리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사라지자 대신 강수를 때렸다. 그에게는 그 시절 '폭력'의 흔적이 흉터로 남겨져 있다. 술로 나날을 보내던 아버지가 자식을 제대로 키웠을 리 만무했다. 결국 강수는 사채 일수꾼이 되어 황태복 사장(박호산 분)의 수하로 살아간다. 그의 마음을 설레이게 했던 선영(전수진 분)은 황사장의 애인, 도대체 그의 삶에서 '행복'의 기미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그렇게 '암울한 삶'을 살던 그의 눈 앞에 '당신....행복해지고 싶나요?' 전단지가 붙어있다. 그 전단지를 들고 찾아가니, 그곳은 '가상 현실'의 과학을 이용하여 '행복'한 삶을 제공해준다는 연구소이다. 그러나 애증인지, 연민이지 그에겐 폭력의 기억으로 남았지만, 여전히 그의 옆에 있는 아버지, 심지어 이제는 건강마저 좋지 않아 그의 짐이 되는 아버지가 행복으로 가는 그의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아버지'를 생각해서 돌아온 집에서 그를 맞이하는 건 등돌린 채 그가 사온 '족발'마저 외면하는 아버지이다. 결국 다시 '행복'을 찾아 연구소로 향한 그, 그런데 뜻밖에도 이번에는 '행복해 지기 위한 3억을 요구한다. 결국 모든 것이 '돈'으로 회귀하느냐며 발길을 돌린다. 



그렇게 <엑시트>는 '가상 현실'을 통한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가장 최악의 수를 풀어놓는다. 주사위의 그 어느 수가 나와도 늘 '행복'이랑은 거리가 먼 도강수의 삶, 경제적으로도, 가족도, 심지어 사랑도 그 어느 것하나 그에게 '행복'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어찌 보면 현실의 삶 대신 '가상 현실의 행복'을 취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 그렇게 선택에 의한 가상 현실의 개연성을 부풀리던 드라마는 뜬금없이 그 '행복'을 위한 자금 '3억'이 등장하며 의아함을 심어준다. 그리고 그 '의아함'은 과연, 지금 이 진행되는 드라마가 '드라마 속 현실'인지, 아니면, 드라마 속 도강수의 가상 현실'인지 모호한 경계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그 모호한 경계는 황태복의 돈을 빼돌린 채 도망치던 강수를 황태복에게 쫓기다, '제발 죽어버려'란 강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차에 황태복이 치이며, 강수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 '가상 현실의 행복'이 실감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며 멋들어진 양복에 근사한 사무실, 그보다 더 널찍한 집,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선영과 친절한 아버지, 그리고 한 눈에 그를 알아보는 30년만에 만난 어머니가 그에게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를 실감케 해준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건가? 
그 '행복'을 선물한 건 아버지였다.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강수는 사경을 헤매고 평생 행복이라고는 느껴보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할 지도 모를 강수가 불쌍했던 아버지가 강수를 그 연구소의 실험 대상으로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약물에 의한 '행복 회로'를 돌리기 시작한 강수는 이적의 노래 처럼 '말하는 대로', 행복해지는 삶을 만끽하게 된다. 

하지만 가상 현실의 행복에는 딜레마가 있었다. 불행하기만 했던 삶, 그래서 비록 연구실 실험대 위에 누워 맛보는 가상의 행복이지만, 그 선택이 개연성이 있었던 강수의 '행복 회로', 하지만 그 '행복'의 부작용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목격한 아버지는 연구소를 찾아가 읍소한다. 자신의 아들이 이렇게 죽어서는 안된다고. 그런 아버지의 읍소에 연구소 직원은, 실험에서 나올 수 있는 여부는 결국 '강수의 의지'만이 가능한 것이라 외면당한다. 

하지만 정작 진짜 딜레마는 행복을 만끽하던 가상 현실 속에서 등장한다. 순간 순간 과거의 어두운 기억에 시달리던 강수, 차츰 지금 자신이 느끼는 행복을 의심하게 된다. 그의 말 한 마디에 자신을 쫓던 황태복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걸 상기해낸 강수는, 그의 말 한 마디에 만남과 이별에 순응하는 선영의 태도에 '행복한 상태'를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맛보는 이 '행복'이 '인스턴트'임을 자각하게 절망하게 되는데. 

약물을 강화해도 여전히 흔들리는 강수에게 우재희(배해선 분) 박사가 선택한 강수는 '행복'을 멈추는 것, '행복한 상태'에서 깨어난 강수를 기다리는 것 황태복과 그 수하들의 추격과 죽어가는 아버지, 그리고 자신 따위는 아랑곳없는 선영이다. 결국 남은 건 강수의 선택, '개똥밭'보다도 못한 암울한 현실인가, 그게 아니면 언제라도 너의 곁에서 행복하다는 가족들이 있는 가상 현실의 행복인가. 



드라마는 애원하는 가족들을 남긴 채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가상 현실의 EXIT'을 나와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그리워하는 아버지를 찾는 강수의 꽉 닫힌 결말로 마무리된다. '가상 현실'이라는 sf적 설정을 차용했지만, 외려 보다 근원적이며 원론적인 '행복'에의 질문에 도달한다. 즉, 흔히 '행복'이라 하면 경제적이든, 관계에서든 모든 것이 충족되고 만족된 상태라는 사람들의 고정 관념에 드라마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아프고 힘들 망정 지금까지 당신이 살아온 역사, 당신이 부등켜 안고 있는 그 질곡의 삶이 주는 찐득한 그 감정이 진짜 행복은 아닐까 라고. 하지만 드라마가 도달한 명쾌한 결론에 시청자의 손이 선뜻 들어질까? 각자가 헤매이고 있는 현실이 아득할테니 말이다. 외려 불안정한 가상 현실의 행복이 아쉽지 않을까. 

드라마 속 인스턴트 적인 가상 현실이 주는 행복의 맛은 흡사 얼마 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 속 가상 현실 오아시스를 연상케 한다. 그곳에서도 슬럼가의 희망없는 청년들은 가상현실의 오아시스에 탐닉했다. 영화가 '가상 현실'을 매개로 청년들의 진취적인 도전에의 용기를 북돋았다면, <엑시트>는 부자 간의 인정이라는 우리네 정서에 천착하여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영화 속 가상 현실이, 극복되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유용한 장치였다면 드라마 속 가상 현실은 '부정되어야 할' 문제적 장치이다. 성큼 다가온 '과학의 미래'에 대한 '온도 차'가 분명하다.  

by meditator 2018. 5. 2. 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