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던 날, 평양냉면을 먹으로 간 이들이 많았다. 2018년 '평양 냉면'은 그저 냉면 중에 한 종류가 아니다. '어렵사리 평양으로부터 랭면을 가져 왔습니다.'의 그 '남과 북'의 가교이다. 남북 정상 회담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평양 옥류관에서 평양 냉면을 맛본 이들의 '동정'이 화제가 되었다. 어느덧 시대의 상징이 된 음식, '평양 냉면' 그에 대해 mbc 다큐가 이야기를 풀어낸다. 

평양 냉면, '덜덜이'라고 했단다. 황교익 평론가에 따르면 찰기가 없어 뜨거운 국물에 넣으면 풀어져 버리는 이 '메밀'을 국수로 만들어 먹기 위해 김치 국물 등의 찬 물에 담갔고, 특히 추운 겨울 밤 덜덜 떨면서 먹던 그 '밤참'의 매력 덕분에 '덜덜이'라 불리던 음식, 벼농사가 흔했던 남쪽과 달리, 척박한 밭 농사의 지역에서 흔히 수확할 수 있었던 특산물에서 비롯된 음식, '냉면'이다. 




냉면으로 하나된 민족
냉면 집에 가면 홍해 바다 갈리듯 나뉘는 취향, 함흥과 평양, 비빔과 물이라는 냉면을 마는 방식, 하지만 남과 북의 두 정상이 만나, 그 상징적 음식으로 '옥류관의 평양 냉면이 등장하면서, 이 시대 어느새 냉면의 대명사는 '평양 냉면'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 '평양 냉면'의 성지로 '옥류관'이 떠올랐다. 꼭 먹어봐야 하는 맛, 먹고 싶은 맛, 옥류관의 평양 냉면을 먹고싶어서라도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하는 맛, 그게 '먹방'의 시대 떠오르는 아이콘 '평양 냉면'이다. 

다큐는 당연히 '성지', '옥류관'으로 부터 시작된다. 냉면 집이라기엔 어마어마한 규모, 1,2층 합쳐서 1,2800㎡, 장충 체육관보다 넓은 옥류관, 이곳에선  한번에 2000 명이 냉면을 먹을 수 있다.  하루에 팔리는 냉면의 양만 만 그릇이 넘는 곳. '육수물이 제일 맛있다'는 평양 냉면, 순 메밀로 만든 사리에, 김치, 무김치, 소, 돼지, 닭고기, 실지단, 달걀 반 알, 잣 세알을 띄운 음식, 꼭 사리에 식초를 쳐서 먹어야 하는 '비법'까지 곁들여지는 김일성의 지시로 1961년 평양 대동강변에 만들어진 '부심' 짱짱한 옥류관의 대표 메뉴이다. 

하지만, 냉면을 그저 '옥류관'에 가두는 건 아쉽다. 다큐는 냉면을 타고 흐르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추적한다.  북한에 옥류관이 있다면, 남한에도 '옥류관' 못지 않은 전통을 자랑하는 '냉면'집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1.4 후퇴 당시 남한으로 피난 내려온 실향민 박근성 씨의 '평양 모란봉 냉면집'.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냉면집을 하시던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아, 대전의 피난민들이 많은 숯골에서 냉면을 말아 팔기 시작했다던 그 냉면집이 이제 아들의 대까지 이은 대전의 냉면 맛집이 되었다. 초가집 앞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 먹던 냉면이 이제 한 해 무 만개, 배추 7천 포기의 소문난 맛집이 될 동안에도 부모님이 하시던 방식 그대로 메밀의 겉 껍질을 살린 거무죽죽한 면발에, 겨울 무로 담근 동치미의 전통은 변하지 않는다. 방송이 나가기 얼마 전 결국 고향을 그리워 한 채 눈을 감고 만 박근성 씨, 박근성 씨처럼 남한의 전통있는 냉면 집은 '실향'의 다른 이름인 경우가 많다.

냉면으로 이어진 '민족'은 한반도에 머물지 않는다. 미국 교포인데도 워낙 냉면을 좋아해 어느 덧 냉면하면 떠오르는 가수가 된 존박과 함께 찾아간 일본 효고현 고베시, 그곳에 옥류관보다도 몇 십년 앞선 1039년에 문을 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냉면집이 있다. 일제 강점기 평양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이주한 장모란 부부, 그들의 자손들이 여전히 '조선'의 국적, 아니 남도, 북도 아닌 무국적인 채 이곳에서 '냉면'의 가업을 잇고 있다. 어릴 적 아버님이 뽑던 전래의 냉면 틀을 기억하는 부부의 자손, 오늘도 평양식 물김치를 담그고, 손반죽으로 냉면을 뽑아내며 숙연한 전통의 맛을 살려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서울에서도 옥류관 평양 냉면을 맛보는 게 가능하다. 고난의 행군 시절 혹독한 북한 사회를 견디지 못했던 옥류관 요리사 윤종철 씨는 딸을 북한에 남겨두고 서울로 내려와 옥류관 시절의 맛을 되살린다. 그에게 냉면은 낯선 서울 땅에서의 안착이자, 두고 온 딸에 대한 다할 수 없는 미안함이다. 

2018년에 되살린 평양 냉면 '팝업 스토어'까지, 다큐는 냉면을 통해 남과 북을 잇고, 민족을 되살린다. 단 250그릇 한정으로 만들어진 옥류관 서울 1호점에 냉면을 먹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하나의 음식으로 대동단결된 민족이다. 

정말 평양 냉면이 맛있을까? 
그런데, 평양 냉면이 정말 맛있을까? 이 글을 쓰는 이도 그 유명하다던 평양 냉면들을 먹어봤다. 인터넷에 농담처럼 '걸레빤 물'이라는 말도 있듯이, 솔직히 호불호가 갈리는 '밍밍한 맛'이다. 비빔과 물의 취향 차이만큼이나 또 하나의 '취존'이 필요한 분야라는 것이다. 필자는 그 '밍밍한 맛'이 남기는 묘한 여운으로 인해 또 먹고 싶지만, 함께 갔던 이들이 다시 '이름값'을 넘어 '평양 냉면'의 마니아가 될 지는 미지수다. 



심지어 북한 옥류관의 냉면도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2000년대, 2010년대, 2018년에 먹은 옥류관 냉면은 맛이 달랐다고 한다. 순 메밀이라 자부했던 면에는 찰기를 살리기 위해 전분이 더해지고, 심지어 2018년의 옥류관 냉면에는 붉은 다다기까지 제공됐다고 하니, 남한의 우리가 생각하는 그 '밍밍한' 평양 냉면이 정작 그곳엔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결국, 평양 냉면이라는 남한의 우리가 생각하는 '그 냉면의 맛', 혹은 '이상향'이 어쩌면 또 다른 '냉면'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양 냉면이라 하여, 심심한 물에 담긴 메밀 국수에 길들여지고자 노력할 동안, 정작 본고장 냉면은 세상의 트렌드에 맞춰 간이 진해지고 있으니. 

음식이란 게 시절에 따라, 지역에 따라 변한다. 똑같은 평양 냉면이라도 '대전'의 평양 냉면과 , 고베의 '평양 냉면'이 다르듯이. 애초에 집집마다 긴 밤을 지내기 위해 말아먹던 '덜덜이 ' 국수에 정석이 어디 있으랴. 각 집의 손맛이 다르듯이, 김치 맛이 다를테고, 당연히 재료에 따라 냉면 맛도 달라질 테니. 늘 새로운 시대와 함께 새로운 '음식'들이 트렌드가 된다. 한때는 비빔밥이, 또 한 때는 한식이, 부디 평양 냉면이 그런 호들갑스런 잔칫상에 올려진 품목이 아니길 바란다. 냉면으로 하나된 민족을 확인하는 일은 뜨겁지만, '평양 냉면 제일일세'는 '과찬'이다. 

by meditator 2018. 7. 17. 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