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사전에서 '식구(食口)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같은 집에서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 1인가구 비율이 25.3%인 네 집 중 한 집이 홀로 사는 가구가 차지하는 이 사회에서, 식구는 더 이상, 그 예전에 한 집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으로 존재하기가 힘들다. 
가족과 사별해서, 혹은 이혼을 해서, 그게 아니라도, 직장과 학교 등의 이유로,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아직 홀로 사는 1인 가구들이 늘어나는 세상, 그래서, 이제, 나의 생애에서 언젠가는 홀로 사는 삶이 더 이상 이상할 것이 없어지는 세상에서, 식구, 그리고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ebs 다큐 프라임은 '식구의 탄생'이란 프로그램을 위해 1인 가구의 식사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식사 프로젝트를 알리고, 참가자를 모집하고, 그 결과, 8명의 다양한 연령대, 직업군의 식사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모집되었다. 
일흔이 넘은 1년전 할아버지를 사별한 할머니, 마흔 중후반의 기러기 아빠, 그리고 이혼한 가정의 싱글남, 삼십대의 공무원, 프리렌서, 그리고 외국인 강사, 이십대의 회사원과 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여덞 명의 참가자들의 생활 면면과 건강 상태를 우선 점검했다. 아예 밥을 하는 밥통 자체가 없는 집에서 부터, 7첩 반상을 정갈하게 차려놓고 식사를 하는 집까지,다양한 삶의 양상이 보여졌다. 하지만, 오랜 1인 가구 생활로 홀로 밥을 하고 반찬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집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그저, '한 끼를 때운다'는 식으로 식사 시간을 보내거나, 외식을 하는 게 식습관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건강에 문제가 많았다. 가족을 외국으로 보낸 외로움을 폭식으로 달래던 기러기 아빠는 가족과 이별하기 전보다 무려 5kg이 넘게 살이 쪘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절에 비해 반찬 가지수가 반 이상 줄은 할머니는 빈혈에 시달렸다. 텅빈 냉장고 대신 강냉이 자루로 허기를 때우는 독거남의 건강 역시 좋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반찬을 잘 차려 먹든, 한 끼를 그냥 때우던 홀로 사는 그들의 식사 시간 동반자는 예외 없이, 핸드폰, 텔레비젼같은 전자 기기들이었다. 이들은, 그들을 쳐다보며, 홀로 식사하는 외로움을 달랬다. 

하지만 홀로 식사 하기에 지쳐있던 사람들이라도 막상 생면부지의 여덟 명과 식사를 하는 건 어색했다. 첫 만남, 할머니와 손자 같은 두 사람을 당번으로 첫 식사가 마련되고, 그래도 밥상 앞에서 조금씩 서로의 말문이 트여갔지만,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대화는 풀려갔을 뿐, 그 사이에서 할머니나, 중년 세대는 눈치만 볼 뿐이었다. 
두 사람이 짝을 이뤄 밥을 준비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옥상에 마련된 텃밭을 가꾸거나, 담소를 나누며 밥을 기다리는, 일주일에 한번씩 이루어진 식사 프로젝트가 몇 회에 걸쳐 진행되어가면서, 서먹하던 서로의 벽이 조금씩 무너져 간다. 캐나다에서 온 외국인 강사와, 캐나다에 아내와 아이들을 보낸 아빠는, 함께 요리를 하며 친구가 되어갔고, 요리 생초보 젊은이들은 이제 서로의 집을 방문할 정도가 되었다. 혼자서도 진수성찬을 차려 밥을 먹으며 홀로 사는 삶에 만족스러움을 보였던 이혼 싱글남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유독 오래도록 프로젝트에 어울리지 못했지만, 결국 그도 그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이혼했음을 밝히는 '커밍아웃'을 하며 자신의 벽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8주에 걸친, 그것도 겨우 일주일에 한번 만나 밥을 해먹는 식사 프로젝트, 외연상으로 보면, 요즘 빈번하게 시도되는, 1인 가구의 '셰어 리빙'의 절충적 형태 같았다. 
하지만, 식사 프로젝트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저 함께 나누는 즐거움, 기쁨을 만끽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기간 동안 그들의 변화에 대해 주목한다. 

8주의 기간 동안, 그거 일주일에 한번 밥을 먹었을 뿐인데, 8명의 사람들은 어느새 가족처럼 가까워져 갔다.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홀로 사시던 할머니도, 서울에 홀로 '유학'와 아는 사람 하나 없던 학생도, 그리고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는 것도 싫고, 또 그래서 누군가 나의 삶에 간여하는 것도 싫었던 이십대의 독거남도, 조금씩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걱정을 해주는 '가족'처럼 되어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할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고, 나오지 않는 멤버를 걱정하고, 또 나오지 않았다고 타박하는 다른 멤버들의 지청구에 거리감을 느꼈던 멤버는 오히려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된다. 홀로 사는 자신을 따스하게 맞이한 젊은 사람들이 고마워 가락시장에서 파를 다듬어 번 돈으로 양말 한 켤레씩을 돌리던 할머니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그런 할머니가 젊은 사람들은 진심으로 고맙고, 걱정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일주일에 밥을 한끼씩 먹는 동안 여덟명에게서 나타난 놀라운 변화이다. 
그들이 함께 살지도 않았는데도, '유사 가족'이 생겨나고, 함께 가끔이라도 밥을 먹게 되면서, 여덟 명 각자의 생활 자체가 변화되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던 할머니는 한결 밝아져, 또래 할머니들과도 만나는 등 삶의 재미를 느끼시게 되었다. 한 동네 살면서 같은 마트를 이용하던 서른의 누나와 이십대의 동생은, 이제 서로의 끼니를 걱정하며, 함께 장을 보는 사이가 되었다. 밥통하나 없던 싱글남의 집에는 밥통이 생기고, 잡곡밥과 반찬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프로젝트 시작 전에 건강 검진 결과 나타났던 콜레스테롤 과다, 우울증 등의 건강 이상 상태가 많이 호조되었다. 그저, 일주일에 한번 함께 모여 밥을 먹었을 뿐인데.

그래서, 이 식사 프로젝트는 1인 가구의 존재를 통해,  이 시대의 가족의 존재와 의미를 묻는다.
식사 프로젝트를 통해 한 집에 모여 살지 않더라도, 그리고 매 끼니를 나누지 않더라도 가끔이라도 끼니를 나누는 존재들이 여전히 우리 삶에 유의미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더 이상 1인 가구가 낯설지 않는 세상, 당신의 평생에 한번쯤은 홀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과연 가족은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할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별한 그 누군가여야 하는지, 이제는 남남이 되어 한 달에 한번 겨우 만나는 누군가여야 하는지, 혹은 지방에 살아 한 계절에 한번 보기 힘든 누군가여야 하는지, 여전히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이 과연 1인 가구가 25%를 넘는 이 사회에서 유일한 대안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고 에둘러 말한다. 
차라리 그게 아니라면, '식사 프로젝트'처럼, 생면부지의 사람이라도,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따스한 밥 한 끼를 나누며 정을 키워가는 누군가가 더 '가족'으로 적합한 것은 아닌지, 나의 행복을 위한 그런 가족을 만들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렇게 다큐 프라임, 가족 쇼크 4부, 식구의 탄생은 반문한다. 


by meditator 2014. 12. 1. 0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