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과 2일 그리고 7일 종합으로 방영된 <다큐 프라임>에는 두 가지의 죽음이 등장한다. 7부 마지막 식사와 8부 청춘, 고독사를 말하다가 그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이 이승과 이별하는 죽음, 하지만, 그 마지막 순간은 그가 살아온 삶에 따라,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가족에 따라 참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7부 '마지막 식사'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앞에서 떠나보내고 싶지 않지만, 환자도, 그리고 환자의 가족에게도, 그 순간은 찾아온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보내기 위해, 가족간의 마지막 교감을 위해 마지막 식사가 준비된다. 


이혼 후 아들과 서로 의지해서 살아오다 암에 걸린 엄마,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놔두고 갈 엄마를 받아들일 수 없는 아들은, 호스피스 요리사가 준비한 식사를 매개로 마지막 교감을 나눈다. 찾아온 다 큰 아들에게 베게춤에 두었던 오만원을 전해주며 맛있는 거 사먹으라며 안쓰러워 했던 엄마도, 그런 엄마를 보낼 수 없었던 아들도 한 시름을 덜고, 이별을 준비할 마음의 자세가 생긴다. 
엄마와, 세 자녀를 두고 갈 40대의 가장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고통보다도, 아버지로서 다해주지 못하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하는 그와, 그의 가족들이 어렵게 결정한 제주도행, 그리고 엄마가 없을 때 아버지랑 함께 해먹던 비빔밥을 다시 해 먹으며 나눈 마지막 식사, 그리고 아이들의 스케치북 사랑 고백까지, 가족이 함께 나눈 시간이, 무거운 가장의 마지막 발걸음을 조금은 홀가분하게 해준다. 
고된 요리사의 길을 반대했던 부모님, 그런 부모님의 뜻을 꺽고 된 요리사의 길, 하지만, 텔레비젼 출연까지 하는 전성기는 찰라의 시간이 되고, 마흔 살의 그녀는 70대 부모 앞에서 죽음의 길을 재촉하고 있는 중이다. 한 집에 살면서도 밥을 같이 먹지 않는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그렇게, 죽음 앞에서도 쉽게 풀리지 않는 서운함이, 모처럼 다시 요리사가 되어 준비한 그녀의 만찬 앞에서 풀어지고, 아버지는 이제 딸을 보낼 수 있다. 

더 이상 이 세상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죽음'은 슬프지만, 그럼에도, 마지막을 함께 하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가족에게 소중하다. 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남겨진 사람들의 무게는 한결 덜어진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보낼 수 있어 행복한 시간, 그것이 '마지막 식사'의 미덕이다. 

그렇게 다시 볼 수 없는 이별이지만, 그 이별을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는 '마지막 식사'와 달리, '가족'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밖에 없는 이야기가, '청춘, 고독사를 말하다'를 통해 전해진다. 국정 감사 기간, 2014 보건 복지부 국가 정책 자료집의 형태로 전달된 내용이, '청춘 고독사'를 통해 풀어진다. 

23개 대학 67명의 학생들이 206명의 무연고 죽음, 고독사를 추적한다. 주변 사람들조차 다시 끄집어내기 싫어하는 홀로 죽어간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추적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저, 동료 학생들보다 더 많은 사연을 알아내어, 좋은 성과를 내야지 하며 시작했던, '청춘'들은, 취재를 하면 할 수록, 무연고 죽음을 통한 질문이 자신들에게로 향해져 고민스러워 한다. 

이 사회에 발 붙이지 못해 홀로 세상을 등진, 하지만 죽음 이후에도 그 누구도 그의 시신조차 인수해 가지 않아, '사체 포기 각서'의 주인공이 되거나, 10년간 찾는 이 없어, 10년이 지나서야 땅에 묻힐 수 있는 고독사의 주인공들, 그들은 어떤 사람일까?

대학생 취재진들이 찾아나선 그들의 과거 행적, 하지만, 종종 취재 과정에 밝혀진 그들의 과거는 놀라움을 안긴다. 
노숙자로 부산 용두산 공원을 배회하다 죽어간 60대의 노숙자, 알고보니 그는 한때 멋쟁이 초등학교 교사였었다. 정년 퇴임후, 아내가 암 투병을 하다 죽고, 퇴직자금마저 날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노숙의 생활이었다. 50대의 최운규씨는 한때 춘천에서 손꼽히는 기술자였다. imf가 그에게서 생활을 빼앗아 갔다. 기역자로 꼬부라진 할머니 같은 외모의 오명희씨에겐 앨범 속에 생기발랄했던 20대가 있다. 
살기 바쁜 세상에서 한번 튕겨져 나온 그들은 쉽게 세상의 수레 바퀴에 엇물려 들어가지 못한 채 때론 술에 짙이겨진 채, 때론 병에 시달리다 홀로 세상을 등졌다. 


백골 상태로, 냄새를 통해 그의 죽음이 알려진 55세의 김영철씨에는 30년째 연락이 두절된 동생이 있긴 하다. 역시나 폐암에 허리 골절로 투병하다 부패 상태로 발견된 마흔 살의 중년 여성에게도 일찌기 소식이 끊긴 오빠가 있다. 서른 한 살에 집 앞에 쓰러져 이송 중 사망한 젊은이게겐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하지만 이제 돌아가버리신 어머님 한 분이 계셨다. 죽은 지 일주일 후 발견된 오십대의 중년에게는 역시나 돌아가신 아버님이 계셨다. 
그들에게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끈이었던 가족은 관계가 끊어지거나, 먼저 세상과 등졌다. 그렇게 세상과 연결된 끈을 잃어버린 그들은 쉽게 세상 속에 편입되지 못했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들의 죽음을 갈무리해줄 지인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봐야, 뒤늦게 2013년 40번째 무연고 사망자라는 의미의, 12/40의 묘비가 있는 가묘를 찾아가 꽃 한 송이를 남겨줄 뿐.
미연고 사망자의 40%가 결혼을 하지 않았고, 노인보다, 50대의 중년이 많았고, 남자가 78% 이상인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의 내막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해마다 이들 무연고 사망자가 증가 추세에 있으며, 그 연령대도 50대에서 40대, 30대로 점점 낮추어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일한 가족의 끈이 끊어진 사람들은, 그 중에서 남자들은 쉽게 다른 관계를 다시 맺지 못한 채 세상에서 멀어져 간다. '눈을 감으면 내일을 걱정하는 삶'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오명희씨의 가계부에 씌여진 글씨들은, 그저 그들이 나태하거나 게을러서 세상에서 벗어난 것만이 아닌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을 취재하던 청춘들은, 막연하게 보았던 고독사에서, 외동이라 크게 다르지 않은 자신의 처지와, 아버지 한 사람에게 짐지워진 가족의 그림자를 느끼며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 본다. 혼자일 수 있는 건, 내 주변의 관계가 유지되기 때문이라며, 가족의 존재를 다시금 되짚어 보고, 주변 사람들이 내게 기댈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취재는 마무리된다.

죽음은 어찌되었든 슬프다. 하지만, 그 죽음의 주변이 어떤가에 따라, 가족의 존재와 상태에 따라, 아픈 죽음이 무게가 때론 조금 덜어질 수도, 혹은 '고독에 몸부림치는' 죽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다큐 프라임> 7,8부가 보여진다. 
가족의 해체를 논해지는 사회, 오히려, 사회적 안전망이 미비한 우리 사회에서, 원자화된 개인을 구제하고 보호해 줄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가족'이란 걸, 죽음을 통해 설명해 내고 있다. 
그래서 2014년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가족은, 유의미하다 못해, '험한 세상의 유일한 다리'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11월 17일부터, 12월 3일까지 총 9부의 '가족 쇼크'가 방영되었다. 
황망하게 아이들을 잃은 세월호 부모님들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우리 속의 이방인인 외국인 노동자들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상처받은 이 시대의 가족들의 이야기로 '가족 쇼크'는 말문을 연다. 
그리고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상의 대안으로, '식구'로서의 대안적 가족을 모색해 보고,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며, 이 시대 부모 자식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 보고자 한다. 
마무리는 가족이면서, 가족이 아니어지는 죽음으로 맺는다. 호스피스 병동의 마지막 식사, 고독사의 사연을 통해, 역설적으로 여전히 우리에겐 가족이 절대적인 존재임을 밝힌다. 
그렇다면 여전히 절대적일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가족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9부, '엄마의 땅, 키리위나'는 파푸아뉴기니의 공동체에서 오늘의 가족의 미래를 찾아보고자 한다. 
대족장의 집 앞 창고에 수확한 얌의 1/3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대비해 놓는 키리위나 부족, 이들에게 가족은, 핵가족이 아니라, 부족 전체의 공동체를 뜻한다. 아이를 함께 키우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홀로 남겨진 노인을 돌보는 것이 당연한 사회, 그것이 키리위나가 말하는 대안적 가족의 형태다. 
문명이 세워진 이래, 남성 중심의 사회를 꾸려왔던 인간 사회가, 이제 가족의 위기와 붕괴 시기를 거치면서, 모계 중심의 원시 공동체에서 그 해법을 찾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남성 중심 사회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계냐, 모계냐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 2세대로 이루어진 허약한 핵가족이 아니라, 확대된 가족, 확산된 형태의 가족, 공동체가, 이 시대 가족 위기의 해법이라는 사실은, 주목할만 하면서도, 1인 가족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이 시점에 환타지 같은 해법같기도 하다. 하지만, 성산 공동체 등, 우리 사회에서도 조금씩 모색되고 있는 공동체적 가족을 보면, 그리 불가능한 일만 같아보지만은 않는다. 한 사회에 살아가는 그 모두가, 가족의 품 안에서 보호받으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공동체, '큰' 가족이, ebs 다큐 프라임의 결론이다. 



by meditator 2014. 12. 7. 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