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방영된 <미세스 캅> 14회, 최영진(김희애 분) 팀장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잃었다고 생각한 강태유(손병호 분) 회장은 최영진을 향해 '빈볼'을 던지기로 한다. 그 방법은 바로 한적한 거리에서 폭력배를 동원하여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것. 하지만, 막상 강태유가 던진 '빈볼'을 강타당한 것은 최영진이 아니라, 신입 팀원 민도영(이다희 분)였다. 


일반적인 드라마였다면 어땠을까? 폭력배에 둘러싸인 민도영, 그녀가 몇 대 맞기도 전에 동료 팀원인 한진우(손호준 분)가 짠~! 하고 등장하여 폭력배들을 무찌르고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 민도영을 구해내고 그녀의 사랑도 얻지 않았을까? 하지만, <미세스 캅>은 달랐다. 백마 탄 왕자님은 오지 않았고, 민도영은 폭력배들이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고소를 해야 할 정도로 4;1의 처지에도 민도영에게 얻어터졌다. <미세스 캅>은 민도영인 폭력배 네 명을 상대로 벌이는 고군분투의 액션씬을 장황하게 보여준다. 폭력배에게 배을 걷어차여도, 칼을 들이밀어도 민도영은 쓰러지지 않는다. 도망가지도 않는다. 오히려 나동그라져도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고, 칼을 휘두르며 다가온 그들에 전혀 주눅들지 않고, 맨 손으로 그들의 팔을 꺽고, 제친다. 결국 무시무시하던 네 명의 폭력배는 길바닥에 나동그라져있고, 민도영은 씩씩거리며 그들을 포박하느라 여념이 없다. 





자기 앞가림 정도는 너끈히 해내는 여성들

민도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친 몸으로 병원을 가라는 동료들의 걱정을 마다하고, 자신을 그렇게 만든 강태유를 잡고자 펄펄 날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기세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신입 형사, 일반적으로 범죄 수사 드라마에서 젊은 남자 배우가 할 캐릭터가 <미세스 캅>에서는 고스란히 민도영의 몫이 되었다. 그런 민도영을 가라앉히는 건 이제 막 그녀를 향해 마음을 열기 시작한 한진우도, 다른 남자 동료들도 아니다. 신입의 열혈 기세를 팀장의 노련함으로 감싸며 치밀한 작전을 지시하는 최영진이다. 때로는 다짜고짜 장태유를 찾아가 큰 소리를 치는 최영진이 이때만큼은 팀장의 내공을 자랑한다. 장태유를 방심하게 하고, 그 사이에 수사 과정을 통해 드러난 폭력배들의 심리 불안을 빌미로, 장태유가 배후임을 드러내고야 만다. 


애엄마 형사임에도 '애엄마'의 고충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평을 받고 있는 <미세스 캅>이 그려내는 여성의 모습은 신선하다. 지금까지 애엄마 형사라고 하면, 일과 육아 그 딜레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여성을 그리는데 치중했다. 하지만, <미세스 캅>은 일하는 여성의 그 딜레마를 전제로 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다. 분명 싱글맘으로서 초등학생인 아이가 엄마의 부재로 인해 '신경질'적이 될 정도로, 겨우 짬이 나서 식구들에게 해주는 게 '인스턴트 짜장면'일 정도로 육아와 가사엔 젬병이지만, 그 딜레마가 그녀의 발목을 잡지는 않는다. 


대신 그녀는 일을 한다. 14회, 딸에게 문제가 생겨서 동료 여경의 경조사에 빠지게 된 최영진, 딸의 친구 아버지가 접근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를 차에 태우느라 벌어진 해프닝에 여동생은 놀란 마음에 지레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그 자리에 간 최영진은 그저 사건의 경과를 보고 받고는 다음 부터는 그러지 마시라 다짐하고 말 뿐이다. 여느 드라마의 엄마들이라면 어땠을까? 대뜸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아이를 붙잡고 울고불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하는 모습이었지 않았을까? 마치 그간 엄마 노릇을 못한 것을 상쇄하기라도 하듯이 그 호들갑의 정도는 더했을 텐데, 최영진은 차분하게 정황을 듣고 충고를 하는 것으로 끝낸다. 이후, 모처럼 모인 최영진과 딸, 그리고 여동생, 아빠가 없어 서운한 딸과, 역시나 아빠가 없어 때론 반항기까지 보냈던 두 사람을 다독이는 최영진의 모습은 말 그대로 '가장'이다. 여기서 보이는 '엄마'이자, '가장'의 모습은, 그간 우리 드라마가 전통적으로 그려왔던 손에 물마를 새 없이 자식들을 진 자리 마른 자리 보살피던 '엄마'로 살아왔던 여성상과는 또 다른, '든든한 울타리'로서의 엄마'이다. 비록 가사 일은 젬병이지만, '일을 통해 자신을 구현하고, 가족들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이 시대에 현실적인 '엄마'로서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식을 살뜰히 보살피지는 않지만, 기껏 해먹이는게 짜장 라면이지만, 가족들의 울타리로 반항해 집을 나선 동생을 때려서라도 집에 들여다 앉히, 그리고 딸이 위험할 때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달려오는 '가장'으로서의 엄마다. 



<미세스 캅>에서 또 한 사람 주목할 캐릭터는 또 다른 여성인 민도영이다. 경찰대 출신의 강력반 초짜, <미세스 캅>은 강력반 팀장 최영진의 활약사이자, 동시에 신참 형사 민도영의 성장기이다. 경찰대 출신의 원리 원칙만 따지던 그녀가 최영진 수하로 들어와 진짜 형사가 되기 위해 겪는 성장통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묘미이다. '깡패' 같아 졌다는 동료 여경의 평가처럼, '깡패' 못지 않게 깡다구를 가지고 사건을 향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그녀의 모습은, <미세스 캅> 속 일하는 여성의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책상 물림이었던 그녀가 경쟁을 넘어 동료를 이해하고, 법 조항을 넘어, 인간을 이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사로서의 원칙을 성숙시켜 가는 과정은, 그저 소모적 러브 스토리의 주체로서의 여성 캐릭터의 발군의 진화이다. 





그저 남성 캐릭터의 역전? 아니 새로운 발견

극중 최영진은 범죄 수사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형사였던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아버지의 길을 걷는, 어디서 많이 보던 설정이다. 단지 기존 드라마에서 아들의 역할을 이젠 딸인 최영진이 대신할 뿐이다. 14회 등장한 강력팀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강력 팀원 조재덕(허정도 분)은 민도영을 앞에 두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예전만 못하지만, 혼자서 신출귀몰하며 폭력배를 때려잡던 최영진 팀장의 무용담을 설파한다. 그런 무용담에 에이 설마 하던 민도영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최영진처럼 혼자서 네 명의 폭력배를 때려 누인다. 그것도 모자라서 파스를 붙인 채 수사 현장을 펄펄 날아 다닌다. 


아버지의 일이었던 형사일이 최영진 대에 와서 여성으로 전화되고, 최영진의 일은 이제 다시 신참 여형사 민도영을 통해 계승되는 이 묘한 직업적 인맥은, 이 시대 여성의 위상과 위계를 드러낸다. 남성의 영역에 자신의 능력을 통해 도전했던 최영진과, 그 일을 일로써 계승하는 후배 민도영의 새로운 '가계도'인 것이다. 그러기에 극중 최영진의 캐릭터와, 민도영의 캐릭터는 그간 범죄 수사 드라마에서 반장 역의 남성 캐릭터와, 신참 형사 남성 캐릭터와 많은 부분 겹친다. 일을 하는 새로운 여성상을 구현하려 하지만, 기존의 여성성의 극복이 그저 '남성화'에 그칠 우려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어찌보면 캐릭터의 딜레마라기 보다는, 남성의 영역에서 자신의 '일'로써 승부를 보아야 했던 여성들의 딜레마일 지도 모른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엄마는 젭병이 되어야 하는, 그저 극중 설정을 넘어, 이 시대 여성들의 현실말이다. 캐릭터의 묘사의 한계가 아니라, 현실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by meditator 2015. 9. 16.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