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의 주말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에서 대가족을 이끄는 89세의 유종철 옹(이순재 분)은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여자를, 그것도 이쁜 여자를 밝힌다. 심지어 여자가 이쁜 건 선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소싯적에 바람 비슷한 걸로 아내 속을 썩인 바 있고, 집안에 이쁜 손녀들이 없으면 잔소리가 칙칙하다며 불평을 터트리고, 틈만 나면 이쁜 아줌마들과 노래방에서 손을 잡고 노래를 한다. 집에서도 주로 시청하는 tv프로그램은 여자 아이돌이 등장하는 음악 방송이다. 하지만 이런 유종철 옹은 여전한 집안의 기둥으로 그 권위에 흔들림이 없다. 백발이 성성한 그의 자식들은 여전히 그를 존경한다. 그 나이 되도록 해로한 아내는 어떨까? 뻔히 남편이 여자를 만나러 가는 줄 알면서도 추위에 감기나 걸릴까 노심초사하며 옷을 챙겨준다. 심지어 아들은 노래방으로 아버지를 데리러 가서 아줌마들과 손잡고 노래부르는 아버지를 기다려준다. 


이 '콩가루'같은 상황을 김수현 작가는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노년의 사랑, 그 단면으로 그려낸다. 우리네 결혼 생활을 설명하는 단어로 흔히 '정'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그 시작은 남녀의 결합이었지만, 함께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다 보니, 남녀간의 사랑보다, 함께 살아가는 동거인으로서의 의리가 강조되면서 부각되는 단어다. 아마도 지금도 대놓고 이쁜 여자랑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는 유종철씨의 바람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장으로 여전한 존경과 신뢰를 받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경제적 의무를 충실히 해냈다는 점에 덧붙여 남편으로서의 그의 주장처럼 결정적 과실(?)은 없었다는 것이라고 드라마는 그려낸다. 그러나, 김수현이라는 대작가의 작품임에도 동시간대 상대작에 비해 영 힘을 못쓰는 시청률은 김수현 작가가 그려내는 여전한 '가족' 혹은 '부부'에 대한 로망이 동시간대 '이혼'이 겹겹이 등장하는 <가화만사성>에 비해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저 '막장'이 아니라서는 핑계보다는, 김수현 작가가 제시하는 대가족, 혹은 가족에 대한 서사가 '황혼 이혼'이 범사가 된 세상에 이해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 45년에 등장한 남편의 죽은 애인 
그렇다면 <45년후>의 케이트(샬롯 램플링 분)는 어떨까? '황혼 이혼'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세상, 하지만 그 한편에서 여전히 <그래 그런거야> 같은 대가족을 중심으로 한 '가족주의'가 목소리를 꼿꼿이 세우고, 평생 바람을 피며 밖으로 떠돌다 이제 아내가 병이 드니 가정으로 회귀하겠다는 신성일의 이야기가 '사랑'의 미담으로 가정의 달 등장하는 사회에, 남편의 죽은 전 애인(실상 알고보니 전부인)의 등장으로 45년 결혼 생활에 금이가는 케이트와 제프(톰 커트니 분)의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결혼 45주년을 앞둔 케이트와 제프의 가정, 그들 앞에 한 장의 편지가 등장한다. 제프의 옛 애인의 시신이 알프스의 산맥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는 내용의. 그저 흘러간 옛사랑의 에피소드로 지나갈 줄 알았던 이 편지 한 장은, 하지만 그 편지로 인해 변해가는 제프로 인해 케이트-제프 부부의 일상은 균열이 일어난다.

40주년도 아니고 45주년에 '해로'의 파티를 하게 될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래서 아내와 산책도 다니지 못했던 제프가 편지 한 장으로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 예전 그녀와 있었던 시간들을 수시로 심지어 잠자리에서까지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고, 무기력해진 자신을 한탄하며, 팔팔했던 심지어 전투적이기까지 했던 젊은 날을 그리워하고 되돌아 가려 애쓴다. 포기했던 책을 읽고, 그녀와의 추억을 아내 몰라 되돌아보고, 무려 스위스까지 가는 여행편까지 알아보고 다니는 식이다. 

그런 남편의 변화에 놀라고, 당혹스러워하고, 결국은 불편해하다, 불쾌해하던 케이트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는 증명이 되는 결혼 45주년 파티에서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고 아내와 흥겹게 춤을 추는 남편의 손을 뿌리치고 만다. 

케이트의 분노와 좌절이 우리에게 시금석이 되는 이유는? 
이런 케이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래 그런 거야>의 김숙자 할머니(강부자 분)라면 긍휼히 여기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엄앵란 씨라면 그저 또 하나의 스캔들로 치부할 수 있을까? 

<45년후>가 던지는 질문은 45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아니 45년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한 장의 편지를 통해 케이트가 알게 된 것은 그저 남편에게 한 사람의 전 애인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받아든 것은, 자신과 남편의 결혼의 전제에 대한 '신뢰'의 불신이다. 남편은 아름다운 그녀에게 솔직히 말할 수 없었다지만, 그녀에게 말했던 남편의 이야기는, 45년이 지난 후 남편이 전하는 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아니 오히려 45년이 지나서 이제는 무기력해진 노인을 '회춘'하게 만들 정도의 열망에 가득한 '사랑', 그리고 남편의 변명과 다르게 '실질혼'과 그를 둘러싼 남편의 거짓말이 그녀를 절망에 빠드린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케이트의 분노, 고통은, 그저 '씨앗은 부처님도 돌아앉게 만든다'는 우리 속담이 전하는 '시기'나, '질투'의 감정과 다르게, 자신이 45년을 믿어왔던 결혼에 대한 '신뢰'의 궤멸이다. 45년을 살아와 어쩔 수 없지만, 그래서 파티마저 열었지만, 그래서 더 허망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사상누각'이었던 결혼말이다. 

농경 사회의 전제로서의 대가족이, 자본주의 사회의 핵가족 제도로 변화되면서, 그 핵가족의 근저를 이루는 정서는 '자유로운 연애'에 기초한 남녀의 사랑이다. <그래 그런거야>가 여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쉽게도 이제는 '잔재'도 찾기 힘들어지는 농경적 잔재로서, 물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뿌리가 깊게 드리워진 혈연으로 맺어진 대가족 제도이지만, 현실의 '황혼 이혼'들은 그런 제도로서의 가족의 무기력함을 증명한다. 그런 상황에서, <45년후>는 역설적으로, 현재 우리의 '부부'라는 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sbs스페셜에서 남편 들은 자신이 돈을 못벌게 되자 아내가 이혼을 요구한다고 했지만, 아내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대답했던 바로 그 살아온 시간과 무색하게 동등한 남녀의 '신뢰'로 이루어진 '결혼'에 대한 문제제기인 것이다. 그래서 생뚱맞은 케이트-제프 부부의 결혼 45주년을 앞둔 해프닝이 우리의 부부들에게 시금석이 된다. 

*이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인천까지 달려갔다. 정작 우리네 중장년들이 봐야 할 영화는 돌림노래같은 지나간 시절의 유행가같은 영화가 아니라, 숱한 영화제의 후보가 된 이런 영화들이다. 이런 영화가 많이 상영되어야 한다는 말은 이제 말하기도 입이 아프다. 

by meditator 2016. 5. 10.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