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각 방송사들은 저마다 상반기 예능전쟁에서 선점하기 위해 고심의 흔적을 쌓은 예능 파일럿을 선보였다. 하지만, 2월 9일 하루동안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보다, 안정환이라는 한 사람이었다. 2월 8일 8시 30분 mbc에서 파일럿으로 선보인 <미래 일기>를 통해 여든 살의 노인으로 '미래 여행'을 다녀온 안정환은 그 프로그램이 미처 끝마치기도 전에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자리를 비운 정형돈을 대신한 예능 '노망주'로의 모습을 선보였다. 하루에 두 편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요한 비중으로 자리를 한다는 건, 이건 웬만한 예능인이 아니고서는 주어지지 않는 역할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자리가 전문 예능인도 아닌, 안정환에게 주어졌다. 그런가 하면, <무한도전> 예능 총회에 한 자리를 떠억하니 차지하고 앉아 김구라의 다그침에 '예능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고만 서장훈의 '포스트 김구라'식의 은근한 행보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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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그 인간적 매력으로 대세가 되다. 
2월 8일 첫 선을 보인 <미래 일기>는 mbc가 야심차게 준비한 또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 연예인들이 몇 십년 후의 미래로 여행을 떠난다는 프로그램의 사전 설명은 막연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런 <미래 일기>보다는 요즘 대세의 아이돌 하니나 트와이스의 유정연, 그리고 이미 <안녕하세요> 등에서 화제가 되었던 유민상 등이 출연한다는 <우리는 형제입니다>가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막상 뚜겅을 연 두 프로그램, 제 아무리 대세 걸그룹이 민낯을 보여주는 등 털털한 모습으로 어필해도, 여든 삶의 분장을 한 소회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위트'와 '유머'를 놓치지 않는 안정환의 매력엔 역부족이었다. 

제 아무리 대세 걸그룹이 와도, 사연많은 개그맨이라도 그저 분장만으로 모녀와 부부의 상봉을 눈물 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시간'의 절묘함을 잡아 챈 <미래 일기>의 기획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자칫하면 눈물로 흐드러져 버릴 프로그램에서 여든의 독거 노인으로 돌아온 안정환은 나이듬의 쓸쓸한 소회와 고독을 충분히 피력하면서도, 결코 그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넉넉한 인간적 매력으로, <미래 일기>라는 프로그램의 예능적 성격을 한껏 살려냈다. 홀로 지하철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한 축구장에서도 안정환은 때론 그 자리에 없는 박지성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가 하면, 그 누구를 붙여놔도 여유롭게 상황을 만들어 가는 여유로운 리액션으로 그 어떤 예능인보다도 충분한 재미를 보여주었다. 

그러던 그가, <미래 일기>가 끝나기 기도 전에 <냉장고를 부탁해>의 mc로 등장한다. 낯부끄러운 망토를 뒤집어 쓰고 '예능 노망주'라는 수식어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오래 호흡을 맞춰왔던 <냉장고를 부탁해>의 팀웍 안에 자리 포지션을 꿰어차버린다. 이전 객원 mc들이 김성주와의 호흡을 맞추기 위해, 유려한 진행을 해내기 위해 동분서주 했던 반면, 안정환은 시간에 쫓기는 홍석천을 놀림으로써 오히려 그에게 예능적 여유를 부여하고, 김성주의 부탁성 멘트 조차 피곤해 하며 제칠 정도로, 자신만의 분위기로 판을 장악함으로써, 정형돈이 했던 바 독자적인 흐름을 안정환식으로 재해석하여 고정의 자리를 꿰어차버렸다. 

예능인으로서 안정환의 매력은, 예능이라는 방점을 띄어낼 때 오히려 빛을 낸다. 그에 앞서 예능 유망주로 선을 보였던 송종국이 방송이라는 프레임에 자신을 맞추고자 애쓴 반면, 축구 해설에서 보여준 그의 '막말'해설에서 부터 드러난, 솔직하면서도 여유로운 인간적 매력이 예능인 안정환을 규정한다. 그래서 예능에서 첫 선을 보인 <정글의 법칙>에서 아직 몸이 덜 풀린 그가 그저 거친 가부장적 남자로서의 모습만 보였다면, 몇 번의 예능을 경험하면서 그 거친 모습 속에 숨겨진 '인간적 매력'을 드러내는 여유를 지니게 된 것이다. <가이드>를 통해 아줌마들 군단을 어르고 달래며 네덜란드 여행도 거뜬히 해내고, 버려진 축구 유망주를 길어 올려 다시금 꿈을 꾸게 만들었던 <청춘 fc헝그리 일레븐>에서는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예능인으로서의 안정환보다는, 인간 안정환이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가던 그의 인간적 매력은 한국 축구 경기 홍보를 목적으로 했다는 <마이 리틀 텔레비젼>을 통해 대중적 확인을 얻고, 설날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세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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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훈, 분석적인 좌뇌로 예능에 한 자리를 차지하다. 
이렇게 안정환이 그의 '인간적'인 매력을 내세워 예능 유망주로 거듭나고 있는 반면, 그와 마찬가지로 스포츠 선수 출신인 서장훈의 행보는 안정환과 극에 서있다. '국보 센터'였던 그는 예능에서 전혀 몸을 쓰지 않는다. 그가 예능에서 자신의 주무기로 등장한 것은 오로지 그의 세치 혀, 그중에서도 '좌뇌'의 지령을 받은 이성적인 입놀림이다. 김구라의 지인으로 적극적 추천을 받아 예능에 등장한 그는 '김구라'를 벤치 마킹이라도 한 듯, 그의 방식을 이어받는다. 

<힐링 캠프>는 이경규를 대신해 독한 멘트를 담당하는가 하면, <썰전>2부에서는 김구라와 설왕설래를 벌이며, 시사 경제 분석에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런 예능 포지션에 바탕이 되는 것은 일찌기 농구 선수 시절부터 독서를 바탕으로 한 그의 지식이적 풍모이다. 2월 7일 <아는 형님> 상식 퀴즈에서 연승행진에서 보듯, 그의 언급들은 그저 웃기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살아온 경험, 혹은 그가 지녀온 지식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예능에서는 드문 캐릭터이다. 아마도 언젠가 김구라를 대신해 <썰전>을 맡을 사람이 필요하다면 서장훈이라면 가능할 정도로. 
 
처음 김구라와 함께 <사남일녀>를 통해 리얼 버라이어티에 도전하는가 싶더니, <썰전>에서 시사경제 분석자로 한 자리를 꿰어차고, 리얼버라이어티 <아는 형님>에서도 웬만하면 몸을 쓰는 대신, 한 마디의 촌절살인으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려 애쓴다. 덕분에, 그의 때로는 독한 멘트로 인해 예능에서의 호불호가 갈리고, 그 지분이 쉽게 늘어가지는 않지만, 김구라 이후에 쉽게 드러나지 않은 김구라의 대체재로서 그의 영역은 분명해 지고 있다. 

by meditator 2016. 2. 9.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