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출간된 <가시고기>는 대번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헌신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는 그 후로 영화로, 만화로 만들어 지며 여전한 '아버지'의 자리를 확인시켰다. 소설 속 아버지는 아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돈을 위해 자신의 신장을 팔고자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 자신이 말기암이라는 걸 알게된다. 그리고 어언 십여년, 2018년, 아내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위해 그 무엇하나 누린 적이 없었던 아버지, 그러나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켜내지 못했던 아버지도 '암'에 걸리고 말았다. 아니 '암'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병원에서는 '암'이 아니란다. 2000년에 자식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다 암에 걸린 아버지와 2018년에 상상암에 걸린 아버지, 2018년의 아버지는 진짜 '암'이 아니니 괜찮은 걸까? 진짜 '암'과 상상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다 커버린 자식들이 떠나버리면 홀로 남아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아빠 가시고기처럼, 소설 속 아버지는 말기암의 판정을 받고서도 자신의 각막마저 아들의 치료를 위해 팔고자 했고, 끝까지 아들에게 아버지의 병을 알리지 않은 채 홀로 남아 죽음을 맞이한다. 2000년, 21세기의 서막이 열렸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순애보'적인 아버지의 사랑에 감흥했다. 이제는 아니다 했지만, imf를 경과하며 이 나라의 아버지들은 스러져 갔고, 가정은 해체되어 갔으며, 가장의 존재는 유명무실해 졌다 했지만, 여전히 아직도 '아버지'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시대였다. 하지만 <가시고기> 단 한 편으로 베스트 작가가 된 조창인 작가가 그 이후에도 여전히 '가족'을 화두로 한 작품을 출간했지만, 그의 다른 작품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듯,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는 서서히 아니 급격하게 지는 태양이었다. 아니, 아버지란 이름은 이제 지더라도 세상을 밝히려 애쓰는 태양이기는 커녕 우리 사회에서는 '기성 세대'가 되어가면서, '꼰대'가 되었고, '적폐'의 상징으로 젊은 세대의 걸림돌이 되었다. 



2018년, 초라한 아버지의 자리
바로 그런 시대에 <황금빛 내 인생>의 아버지 서태수(천호진 분)와 최재성(이 있다. 그들은 아버지이지만 무기력하다. 이제 40회에 들어선 드라마에서 그들은 '가장'이라지만, 도대체 가장다운 무언가를 한 일이 없다. 무역맨 출신의 그는 한때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딸 서지안의 친구 혁은 동아리 모임을 하는 서지안의 친구들을 위해 호탕하게 간식거리를 사주던 서지안의 능력있는 아버지를 기억한다. 하지만, 그렇게 능력있고 가정적이었던 아버지는 그의 사업 실패와 함께 사라졌다. 경제적으로 여유를 즐기며 맘껏 미대의 꿈에 부풀었던 딸 지안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일반고로 전학을 가야했듯 6식구는 단칸방 신세가 되었고, 거기에 업친데 덥친 격으로 어머니는 암에 걸리셔서 가족을 경제적으로 더욱 쪼달리게 했다. 평생 그의 그림자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왔던 아내와 가족들은 하루 아침에 닥친 경제적 위기에 힘들어 하며 가장인 그를 원망했다. 

큰 아들은 무능력한 아버지의 삶을 보며 결혼을 안한다 하고, 아내는 고생하는 자식을 보다못해 딸을 바꿔치기까지 한다. 대학 준비를 하는 줄 알았던 막내 아들은 알고보니 돈을 벌겠다고 하고, 이제 자신들이 뒤바뀐 걸 알게 된 딸들은 그 충격으로 아버지를, 가정을 외면하다. 비로 경제적 능력은 상실했지만 그럼에도 가장으로 어떻게든 가족들의 구심력이 되고자 했던 그는 이제야 비로소 처절하게 깨닫는다. '돈'이 아니고서는 이 사회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보장받을 수 없음을, 돈이 없는 아버지는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님을, 그런데 그 '아버지'의 자격인 돈을 위해 한 평생을 달려왔고 노력했지만 그건 '신기루'처럼 날라갔다. 자신의 인생과 목표와 함께. 그리고 가족도 함께. 그는 살아있지만 이미 그 누구도 그를 살아있는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는다. 어머니처럼 자신에게도 '암'의 증상이 나타난 날 그래서 서태수는 기꺼이 그걸 '하늘의 선물'이라 생각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그렇다면 돈이 있다면 다를까? 최재성은 남들이 보기엔 그 대단하다던 재벌가 해성의 부회장이다. 강원도 태백 탄광 지대 출신으로 그 비상한 머리 하나로 대기업 해성에 들어갔고, 회장 딸 노명희와의 사랑으로 해성가의 사위로 '입지전적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59세 그 남부러울 것 없는 그이지만, 그는 해성가의 꼭두각시이다. 불같이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와는 사업상 혹은 가족 이야기라도 절차상 필요한 이야기 외에는 나누지 않은 지 오래됐다. 한 방을 쓴다지만, 냉기가 흐른다. 집안의 모든 대소사는 모두 해성가의 수장인 회장의 의중에 따라 결정된다. 그는 이제 환갑을 바라보지만 여전히 두 딸을 놓고 저울질 하는 장인 어른 덕택에 '간택'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아이들과 관련해서도 그의 의견은 아예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집을 나간 큰 아들 도경처럼, 아이들에게 역시 아버지의 존재는 유명 무실하다. 그래서일까 대기업 부회장이나 된 그가 정신과 의사 앞에서 허탈하게 눈물을 흘린다. 



암이 아니면, 죽지 않으면 괜찮은 걸까? 
38회 엔딩, 서태수의 상상암은 무리수였을까? 아니 오히려 그간 가족간의 서사를 <가시고기>에서 보여지듯이 병력을 활용하여 '신파'적 설정으로 넘어갔던 기존의 가족 서사에 대한 작가 소현경의 야심참 도발이 아닐까? 여기서 원론적인 반문이 필요하다. 서태수는 암이 아니다. 심지어 상상에 의해 암이 걸렸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엄마가 상상으로 아이를 가지듯이, 서태수는 그렇게 '암'을 '고소원'하다 못해 '상상'으로 암에 걸리고 만다. 

그럼 암아니면 그래서 조만간 죽게 생기지 않으면 괜찮은 것일까? 바로 여기 작가의 질문이 있다. 아니 반문이 있다. 오죽 서태수에게 삶이 의미가 없었다면 그는 죽기를 소원했을까? 여기서 스스로 암에 걸렸다고 확신한 서태수에게 온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이 조만간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변화한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굴레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늙수그레했던 외모도 염색을 하며 변모시켰고, 하고 싶었던 기타도 다시 들었고,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짐을 벗어던졌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용기를 낼 수 있는 아버지이다. 

그런 아버지의 변화에 자식들은 당황해 한다. 아버지 왜 그러시냐고, 아버지 아프시면 병원에 가셔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서태수는 그런 가족들에게 냉랭하다 못한 반발한다. 왜 너희들은 '가족'에서 벗어나 지 멋대로 하고 살면서, 여전히 아버지에겐 자신의 자리를 구차하게 지키라고 하냐고?

소현경 작가가 서태수, 최재성 이 시대의 아버지, 그러난 허울만 아버지일뿐, 이제는 그 예전의 '가부장'도, 심지어 '가장'도 아닌, 구차하고 무기력하게 늙어가는 남자들의 존재론을 묻는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어느새 이 시대에 걸림돌이 되어버린 '아버지' 세대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그 예전 아버지들처럼 혹은 여전히 가족극이 즐겨 쓰는 '화합'의 소재가 되는 육체적인 병이 아니라, 정신적 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가족이라는 집단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만을 배우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아야 했던, 하지만 그 조차도 여의치 않았던 우리의 아버지 세대, 그들은 이 시대 아버지는 증상만 다를 뿐 어쩌면 모두 서태수, 최재성처럼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38회 '상상암'은 웃픈 해프닝이 아니라, 가장 이 시대의 아버지를 잘 표현한 설정이다. 그 상황에 실소를 자아내는 우리들은 어쩌면 여전히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 서태수의 자식들 중 한 사람일 지도 모른다. 

by meditator 2018. 1. 15. 1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