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라인'이 하나도 없네"

<학교2013>의 종영 자막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 아들녀석이 던진 말이다.

"아쉽지. 뭐 그래도, 러브라인은 아니라도, 이상하게 학교는 그냥 어울림만으로도 좋은 커플은 많았어. 정인재, 강세찬 선생님 커플처럼"

그렇다. 장장 16부작이라는 긴 시간동안 학교2013은 유일무이하게 사랑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 드라마였다. 하지만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가 없을 뿐, 이 드라마 올 겨울 그 어느 드라마보다 또 다른 '사랑'으로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었다.

 

 

 

 

1. 놓는 것과 놓치는 것이 무엇이 다른거죠?

선생님이 되고 나서 처음 맞이한 제자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언제나 냉정하게 아이들과의 거기를 유지하려던 강세찬 선생은 이미 자기도 모르게 선뜻 아이들과 가까워진 그 무게에 짓눌려 사직서를 쓴다. 그런 강세찬 선생에게 찾아간 정인재 선생이 말한다.

'아이들의 손을 놓는 것과 놓치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고.

2013년 현재 대한민국의 냉엄한 학교의 현실을 조명하는 것으로 시작한 이 드라마는 16부작 종영에 이를 때까지 그 무엇도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학교는 성적 지상주의에, 무슨 일만 생기면 학교 폭력 위원회나 여는 관료적이고, 속물적 가치관에 의해 지배되는 곳이다. 정인재 선생이 아이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해도, 강세찬 선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도 현실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 마치 돌아오지 않는, 돌아올 수 없는 오정호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16부작을 차근차근 밟아 온 <학교2013>은 현실의 우리가 무기력하게 좌절하고 마는 그 제도라는 벽을 다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처럼, 다시 한번 살아볼까? 하며 서로 손을 맞잡게 하는 힘을 주었다.

16부 마지막회, 종례를 마친 아이들은 '러브라인'은 아니지만, 서로 서로 손을 맞잡고, 혹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교실을 나선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였던 고남순과 박흥수는 다시 그 예전의 불알친구 모드로 회귀했고, 도둑질을 한 계나리는 도둑을 당한 신혜선과 손을 꼭 잡았다. 일진 그룹이었던 이지훈은 한영우에게 사과를 하고, 그 사과를 한영우는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물론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결론이다. 현실의 학교에서는 쉽사리 일어나지 않을. 오히려 현실의 학교에서는 저런 원인들로 인해, 아이들이 옥상으로 올라가고, 학교 교문을 나서고, 마음에 상처를 입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닥달하는 부모가, 이 사회가 달라지지 않고, 그들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버거운 학교 라는 제도는 달라지지, 혹은 달라질 수 없는 상황에서, 16부작의 마지막회는 여전히 환타지에 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쯤은 생각해 보게 된다. '손을 내미는 것'에 대해.

<학교 2013>의 장점은 일방적으로 선생님에 의한 학생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그들이 겉으로 보기에 제 아무리 싸가지 없고, 회생불가능해 보여도, 여전히 아직은 '개과천선'이 가능한, 아니 그 이상, 상처받은 자신을 그저 감싸기에도 버거운 청소년이란 사실을 짚는다. 거기에, 여전히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인간답게 지켜나갈 자생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비록 오정호가 학교를 떠나려고 하지만, 그의 나직한 말, '이젠 나쁘게는 안살아요'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 것은 강세찬, 정인재 선생님만이 아니다. 그의 똘마니라고 치부했던 '친구'들이 그를 버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머리를 조아리며 애를 쓰는 그 마음때문이다.

친구 계나리를 왕따로 부터 구원한 건, 계나리의 도발을 이해한 친구 신혜선의 따스한 마음인 것처럼.

<학교 2013>이 굳세게 밀고 나간 것은 '성선설'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차가운 학교라는 제도 조차도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구제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2. 주목할만한 이현주의 세계관

작가 이현주가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미니 시리즈 사이에 살포시 '땜방'으로 들어간 '보통의 연애' 로 인해서 였다.

<보통의 연애> 역시 풀기 어려운 아니 애초에 풀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두 남녀를 마주 세웠다. 살인자의 딸과, 그 살인자로 인해 죽음을 당한 형을 가진 남자를,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당연하게도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에 갇혀 서로를 헐뜯고 미워한다. 하지만 작가 이현주는 그 미움 속에 싹트는 '사랑' 에 주목하고, 거기에 작가의 따스한 시선으로 물을 주며 그들의 사랑을 완성한다. 그저 '보통'의 사랑 얘기라고 하지만, 그 사랑에 이르기까지 인간으로서의 딜레마를 극복한 인간 승리까지 덤으로 얹으며.

학교도 마찬가지다.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해 보이는 박흥수의 다리를, 박흥수의 미래를 망가뜨린 고남순이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불구가 된 다리나, 절단된 미래처럼. 하지만, 작가 이현주는 나지막하게 말을 건넨다. 사람이 사는 게 그게 다가 아니지 않냐고. 너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가 된다면, 어쩌면 불가능해 보이는 관계도, 다시 이어 붙일 수 있찌 않겠냐고,

사람이 사는 거 그까이꺼, 서로 진심으로 손을 맞잡으면 다 넘어설 수 있다고.

이 상식적이고 어찌보면 진부한 원칙을 작가 이현주는 <보통의 연애>4부작을 통해, <학교 2013>의 16부작을 통해, 마치 벽돌을 쌓아가듯 하나씩 차분하게 자신의 주장을 쌓아올린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수미일관'하게 주제 의식을 성공적으로 완성도 있게 그려낸 작품으로. 그러기에 드라마의 마지막 그 상투적이지만 인간적인 결론에 어느 새 시청자들은 동화 되어 버린다.

다음 작품의 또 다른 따스한 온기를 기대해 보게 만드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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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3. 1. 29. 1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