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닥터> 후속으로 첫 선을 보인 <피고인>, 1회 14.5%, 2회 14.9%(닐슨 코리아 기준)로 순조롭게 동시간대 1위의 자리로 안착했다. 30%를 육박했던 전작의 수혜였을까? <낭만 닥터> 시청자들을 흡인할 타 채널 드라마들의 매력이 약하거나, 이질적 장르라 이동이 용의치 않은 면도 있다. <낭만 닥터>의 시청자들 중 강동주& 윤서정의 달달한 사랑 이야기에 더 집중했던 사람들은 <화랑>으로 시선을 옮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거대 병원을 상대로 한 돌담 병원 팀의 통쾌한 한 판 승의 귀추에 주목했던 사람들이라면 <피고인>으로 한번쯤은 관심을 기울일 듯하다. 하지만 재미를 주지 못한다면 가차없이 리모컨을 눌러버리는 시청자들의 특성 상 전작의 의리라고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보다는 <피고인>은 장르물이지만, 그간 장르물 가운데서 인기를 끌었던 <추적자 The chaser(이하 추적자)(2012)>, <리멤버(2015)>의 계보를 이어 가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물로써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라 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또 한 명의 전무후무한 악인, 차민호 
<별에서 온 그대>의 이재경(신성록 분), <리멤버>의 남규만(남궁민 분), 그리고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 분), <기억>의 신영진(이기우 분)를 넘어서는 사이코패스 재벌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역시 섣부른 예단은 하는 게 아니었다. 단 한 회만에 다시 전무후무한 악인이 또 한 사람 등장했다. 바로 엄기준이 연기한 <피고인>의 차민호다. 

엄기준에서 악역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kbs2의 <골든 크로스>에서 '식인 상어'라 불리는 미구계 헤지펀드 대표로 '악'의 테이프를 끊은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호연이었지만, 이제 햇수로 3년만에 다시 돌아온 그의 악역은 피를 나눈, 심지어 이름조차 민호, 선호 헷갈리는  자신과 같은 dna를 가진 쌍둥이 형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기는 커녕, 미소를 띠는 사이코패스로 단박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렇게 <피고인>은 극중 주인공인 박정우(지성 분)의 서사와 거의 비슷하게 차민호의 악행을 나열하며 드라마의 동력을 당긴다. 이런 방식은 극 초반에 뺑소니 사고와 살인 사건을 등장시키며, 그 사건을 일으킨 '악'을 제시하고, 그들의 악행에 대한 분노를 드라마의 추동력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추적자>와 <리멤버>와 다르지 않다. 특히나, <별에서 온 그대>나, <리멈버>, 그리고 <기억> 등에서 주인공만큼이나 시선을 집중시켰던 전무후무해 보이는 악인, 거기에 재벌이라는 '공분'의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악의 축'을 확고하게 구축시킨다는 점에서 최근 인기를 끈 재벌 악인의 스토리를 재연한다. 이런 어찌보면 익숙한 재벌가 사이코패스의 서사에 있어 결국 관건이 되는 건 얼마만큼 충격적인가인데, 그 점에서 첫 회에 야구 방망이로 여성을 죽이는 것에 더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수를 권하는 쌍둥이 형을 죽인 차민호는 그 '악행'에 있어 전례에 한 수를 더한다. 

거기에 <피고인>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를 제시한다. 바로 그 자신의 형을 죽인 차민호가 그와 달리 모범적으로 그룹의 대표 역할을 맡아왔던 형 행세를 한다는 지점이다. 바로 그의 거짓된 행세와 그런 그의 거짓을 눈치채고 파고드는 박정우와 갈등이 <피고인>의 또 하나의 흥미 유발 지점이 된다.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 박정우 
그런 재벌가의 상대가 된 주인공은 검사 박정우다. '법피아'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세상에, 박정우는 우리가 정치 사회면을 통해 만나는 그런 검사가 아니다. 로펌의 스카웃 제의를 가볍게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검사, 불의를 보면 양말 바람으로 홀로 뛰어들어서라도 진실을 파헤치겠다는 검사, 바로 그런 정의로운 인물이 주인공 박정우다. 

하지만 그런 그의 꼿꼿함이 부딪힌 곳은 당연히 형을 죽이고 자신의 존재를 숨긴 차민호, 첫 눈에 차민호의 거짓말을 알아챈 그의 집요한 추적은 잠에서 깬 그가 눈을 뜬 곳이 교도소라는 극한으로 그를 몰아붙인다. 마치 뺑소니를 당한 딸의 죽음을 파헤치려던 형사가 거지꼴이 되어 쫓기듯, 영재 소년이 하루 아침에 아버지를 잃고 그의 절대 기억으로 로펌 변호사가 되는가 싶더니 역시나 쫓기는 신세가 된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단지 다르다면, 직계 존비속의 죽음을 쫓는 형사와 변호사에서, 이제 아내와 딸을 죽인 범인이 되어 교도소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신세랄까? 물론 시청자들은 첫 회만에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차민호를 보았기에, 그가 누명을 썼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 알지만 마치 크레타의 미궁처럼 그 누명을 풀 길은 요원해 보인다는 것이 비슷한 처지임에도 다른 <피고인>의 묘미이다, 



그렇게 누명이지만 미궁같은 처지의 박정우에게는 안타깝게도 또 하나의 딜레마가 있으니 그건 바로 <리멤버>의 서진우의 발목을 잡은 기억이다. <리멤버>의 서진우가 천재적인 기억을 가지고 대번에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입지전적 능력, 하지만 그 기억이 아버지처럼 '치매'를 불러오는 불리한 조건이라면, 박정우는 그와 반대로, 어떤 이유에선지 주기적으로 기억을 잃는다. 정신과 의사는 사건 당시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하는 그의 범죄 심리로 인한 것이라 하지만, 거기엔 또한 어떤 음모론이 존재치않겠는가란 의심이 <피고인>의 또 더해진 관전 포인트다.

그리고 이런 박정우에게 마치 <리멤버> 이인아(박민영 분)의 현신인 듯한 정의롭지만 열정이 넘치는 서은혜(유리 분)까지 등장하면 마치 맞춤 세트처럼 조합이 완성된다. 올가미에 갇힌 주인공, 그의 곁에서 정의롭게 그를 지키는 여주인공, 그런 그들을 돈에 기반한 권력을 가지고 옭죄어 오는 사이코패스 재벌, 이 익숙하지만 여전히 솔깃한 구도를 <피고인>은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처럼 교도소라는 공간을 더해 이야기의 각을 벌려간다. 
by meditator 2017. 1. 25. 1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