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에 이르른 <풍문으로 들었소>의 일련의 사건은 마치 한 마리 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을 만들어 내는 '카오스 이론'의 시험장과도 같다. 


서봄과 결혼한 인상이 그를 마음에 두고 있던 장현수(정유진 분)을 외면하자, 장현수는 좌절에 빠진다.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던 딸을 보던 현수의 엄마 지영라(백지현 분)는 약이 오르고, 그런 고까운 마음을 결혼 전 자신을 사랑하던 한정호(유준상 분)의 마음을 다시 한번 흔드는 것으로 보복하고자 한다. 하지만 드라마 제목에서도 보여지듯이, 중년의 불장난과도 같은 두 사람의 만남은 곧 주변 측근들을 시작으로, 한정호네 집안 가솔, 이어 한정호네 가족들에게까지 빠짐없이 전달된다. 안그래도 서봄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세상을 알아가며 '정의감'을 키우던 인상은 부도덕한 아버지의 실체에 몸서리치며 서봄의 작은 아버지 서철식이 몸담았던 대산 노조 사건을 들고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대든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아버지 편을 드는 어머니 최연희에게 모멸감을 준다. 그런 상황에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식음을 전폐하던 연희는 의연하게 집안의 안주인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전의 고상한 취미 생활이나 하던 한정호의 안사람이 아니다. 바람기 잘날 없던 한정호의 아버지를 쥐고 호령하던 시어머니처럼, 한정호마저 쥐락펴락하는 '섭정 여제'로 등극한 것이다. 



섭정왕후가 되려하는 최연희
그렇게 실질적 권한을 행세하겠다고 마음 먹은 최연희가 행사한 첫 번째 '섭정'의 권한은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가 완화시켰던 집안의 모든 형식적 제도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다. 
자녀들은 이제 아침 일찍 일어나 옷을 갖춰입고 부모님께 '문후'를 들인다. 자유로운 복장이었던 일하던 사람들도, 상자에 묻어 두었던 '메이드' 복장을 다시 꺼내입고, 한정호네 식구들이 밥을 먹는 뒤에 '시립'해 서있어야 한다. 심지어 작은 딸에게는 몸무게를 10kg을 빼는 것이 과제로 던져졌다. 공식적인 위신이 무너진 가족을 되돌리기 위해, 최연희가 선택한 방법은 가장 사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이다. 옷을 갖춰입고, 규범을 엄격하게 하고, 심지어 살을 빼란다. 

남의 유부녀와 바람을 필 뻔한 아버지,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노조원들이 폐인이 될 정도로 몰아붙이며 노조 투쟁에 개입하여 사측의 승리를 이끌어 낸 한송의 실체, 그렇게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부모의 실체가 낱낱이 까발려지고, 그런 부모에게 대든 아들에게, 부모가 할 수 있는 '절대적 권력' '집을 나가라' 조차, 명민한 법학도인 인상에 의해 무력화되었을 때, 뜻밖에도 모멸감을 느낀 어머니 최연희가 선택한 수단이, 집안의 기강을 세우고자 한 것은, <풍문으로 들었소>가 그저 상위 1%의 '블랙 코미디'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을 상징하는 풍자극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섭정의 공식'이 주는 기시감
최연희가 펼친 '섭정'의 공식, 어디서 많이 보던 것들이 아닌가?
유신 시대의 말기,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는 해프닝과도 같은 정치적 헛발질이 계속되고, 그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분출되던 시절, 그 시절은 마치 한 왕조의 창건과도 같은 '대통령의 신격화'와 '국믾 교육 헌장' 등의 정신 교육, 그리고 '교련' 등의 군사적 문화로 대변된다. 정권의 존립 근거가 부실해지고, 취약해 질 수록,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한 정신적 쇄뇌의 수준은 강고해 졌다. 대학의 복도 곳곳에 사복 형사들이 암약했고, 노동 현장의 시위는 폭력적으로 진압되었으며, 거리에서 의심가는 사람들의 가방은 이유불문하고 뒤집혀 지는 상황에서, 문화적으로는 '용비어천가'가 울려 퍼졌다. '효'와 '충'이 우리가 계승해야 할 가장 숭고한 문화적 유산이 되었고, 무장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광화문 한 복판에 세워졌다. 학생들은 오로지 검은 색과 흰색 등 무채색의 학창 시절을 보냈고, 입시 지옥 속에서 허우적 거렸다. 음악이나 영상 등, 심심치 않게 '금지곡'이나, 가위로 잘리는 것이 예사인 세상이었다. 


정치권의 정당성이 희박할 수록,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일들이 잦아질 수록,  그 반대 급부로, 마치 '신성한 존재'라도 되는 양 정권의 요식 행위는 거창해 진다. 최근, 각종 국내의 시급한 사회적 정치적 사안들을 외면한 채, 심지어 아시아 각국 정상들이 모인 자리조차 피한 채, 저 멀리 중남미로 외유를 떠난 대통령, 그 순방의 일정은 링거를 맞으면서 강행군을 펼친 지도자의 미담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매번 임기를 채우지 못하거나, 임기를 맞지도 못하는 공직 인사들의 정치적 스캔들에, 주어가 없는 '엄단'과 '정풍'만이 반복되는 건, 마치 섭정 군주의 단면을 보는 것과도 같다. 거기에, 시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나선 광장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어버이'들의 분노는 왕조의 흔적과도 같다. '검열'을 떠올리게 만드는, 야곰야곰 등장하는 문화적 폐습들의 복귀 시도는, 그 시절의 놀라운 복기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여전히 누군가를 누군가의 딸로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그 딸의 공과가 재단되는 것은 현실의 성과다. 70년대와 같은 '다같이 잘 살자'는 약속을 믿었던 사람들에게 돌아온 것은 가중되는 '빈익빈 부익부'에, 첨예화된 계층 갈등이요, 가진 자들의 폭리일 뿐이다. 그렇듯, <풍문으로 들었소> 속 최연희의 섭정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에게 반기를 든 자식들을 조련하기 위해, 최연희와 한정호가 불러 온 '집안의 군기' 역시, 그 옛날 섭정 시절의 그것과 같지 않다. 인상의 손을 떠난 서철식의 사건은 서철식 단독 소송으로 구체화되었고, 메이드 복장을 꺼내든 가솔들은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나 보다'라며 섭섭해 한다. 아버지와, 그 아버지에 동조하는 어머니의 '섭정'에 대해 '공포'스러워 하지만, 작은 딸의 대거리 처럼 그 역시 '윤리적 도덕적' 설득력이 없는 권위에선 취약함을 노정할 뿐이다. 

웃픈 '블랙 코미디'로 시작된 <풍문으로 들었소>, 이제 2/3를 넘어선 시점, 서철식의 소송과 함께, 섭정 왕후로 등극하려 하는 연희의 시도로, '한송'으로 대변되는 상위 1% 중의 1%와, '벌레'들의 전면전이 예상된다. 과연 '벌레 한 마리'가 다시 한번 짓밟힐 지, 최연희의 '섭정'은 원하는 바의 '통제'로 이어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5. 4. 29. 11:15